집안의 공기를 가볍게 해주는 해법

1일 1 아재개그, 유머 수준은 낮아지지만 공기는 가벼워집니다.

by 연두

“여기 막국수가 몹시 진부하네” 막국수를 맛있게 먹고 나와서는 남편이 한마디 한다. 출입구쪽 벽에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이라고 쓰여 있다. 여지없이 그 다운 아재개그다. 언어유희로 유머를 했냐며 한바탕 웃는데 옆에 있던 아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이들은 아빠의 아재개그라면 질색 팔색을 한다.


남편은 나의 반응에 벙글벙글 웃는다. 오늘도 리액션팀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웃음 포인트는 따로 없다. 아재개그를 할 때 무조건 큰 소리로 웃으면 된다. 집에 오면서 말재간둥이가 따로 없다고 하니 남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남편은 아재개그 담당, 나는 리액션 팀장, 애들은 평가단이다. 평가단은 그야말로 냉철하다. 이건 아니다, 조금 낫다, 절대 하지 말아라 등등의 평을 해준다. 그 평가가 반영될 때는 거의 없어서 지금까지도 업그레이드되지 못하고 늘 비슷한 수준이긴 하다.


우리 가족이 처음부터 이렇게 화기애매, 티키티키(티키타카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음)가 잘 되었던 것은 아니다. 아재개그가 재미없다고 그만하라고 사정할 때도 있었다. 아빠가 아재개그를 할 때면 집안 분위기가 얼어붙었지만 아이들의 냉소 속에도 아재개그는 시들지 않았다.


3-4년 전 아이들이 사춘기의 정점을 찍을 무렵이었다. 집 안 분위기가 냉랭하다 못해 냉동고가 되어가고 있었다. 뭐라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암병동에 웃음치료사가 환자들이 웃도록 도와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큰 소리로 웃으면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치료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암에도 효과가 있다는데 못할게 뭐란 말인가. 억지로라도 웃어보기로 했다.


가식적으로라도 웃어보자고 마음은 먹었는데 웃을 포인트가 없었다. 그때 등장한 구원투수가 남편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날리던 아재개그는 이때를 위한 재능이었나 보다. 그의 잠자던 개그 본능을 깨우며 나는 우리 집에 적막을 깨뜨리기 위해 어색한 박장대소를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해도 일단 웃자, 웃고 보자라고 시작했는데 자꾸 웃다 보니 정말 웃긴 것이 아닌가. 별말 아닌데 웃음이 나온다. 특별한 동작이 아닌데 웃겼다. 처음에는 영혼 없이 웃다가 나중에는 진심으로 웃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아빠 한데 반응을 해주니까 더 심해지는 것 같다고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때부터 이 웃음은 집안의 공기를 가볍게 만들었다.


며칠 전 남편이 퇴근하고 왔는데 지금은 대학생이 된 딸이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방문을 향해 “거기 끝방 하숙생, 인사 안 할 거면 당장 방 빼세요~~ 우리 집은 인사가 기본이에요, 내일까지 방 빼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억지로 방에서 나와 쭈뼛하게 인사를 하고 들어간다.


다음날 아침 남편이 출근할 때 “하숙생~”하고 부르니 방에서 아이가 어제보다 빠른 속도로 나온다. 그리고 인사를 한다. 효과가 있나 보다. 잔소리하고 싶을 때마다 뭐든 재밌게 웃기게, 가볍게 라는 말을 속으로 되뇐다.


아이들 키울 때 매사에 진지하고 고달팠는데 살아보니 그렇게 심각한 일도, 큰 일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답답할수록 아재개그로 돌아가고, 복잡할수록 웃어넘겨 보자. 아재개그를 좋아하면 유치해 보여도 웃음이 많아지고 삶이 가벼워진다.

작가의 이전글3대의 동대문시장 나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