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서울행 좌석버스를 탔다. 다른 지역에 사시는 엄마와 동대문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난달에 구입한 소파에 반려견이 발톱으로 동양화 난을 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 달이 못되어 빈티지 소파가 될 운명이다.
동대문에 커버를 제작해 주는 곳이 있을 거 같아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친정엄마는 이 분야에 전문가시다. 결혼 전 한복을 만드셨던 경험으로 온갖 제품을 만드신다. 장바구니, 숄더백, 토트백, 빅백, 여행용 크로스백을 만드셔서 엄마의 지인들의 물욕을 채워주신다. 가족들은 엄마를 가방공장 공장장이라고 부른다.
엄마의 취미생활을 위해 참새가 방앗갓을 드나들듯 오시는 곳이 동대문 종합시장이다. 엄마에게 동대문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여쭤보니 그냥 동대문에서 만나자고 하신다. 팔순이 다 되어 동대문을 좋아하시는 것을 보니 소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와 동대문시장에 가기로 했다고 말했더니 둘째 딸이 자기도 가겠다고 한다. 이 또한 유전인가 싶다. 할머니를 닮아서 손으로 꼼지락 거리면서 만들기를 좋아한다. 액세서리니 키링 같은 것을 뚝딱뚝딱 잘도 만든다. 몇 시간 조용해서 보면 팔찌랑 목걸이를 잔뜩 만들어 놓는다.
쇼핑하기 좋아하는 3대가 동대문에서 만났다. 할머니와 반가운 인사를 한 뒤에 곧장 원단가게들이 모여있는 동대문종합시장 지하로 향했다. 올 때마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는 곳이 동대문시장이고 남대문시장이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미로 속에서 한두 시간을 헤맬 각오는 해야 한다.
미로라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손녀와 딸보다 걸음이 빠르시다. 대 여섯 발자국이나 앞서서 걸으시더니 원단들이 켜켜이 세워져 있는 가게가 즐비한 곳에 도착했다. 빽빽한 가게 중에 작은 곳에서 멈췄다. 그리고 베이지색의 광목천을 만져 보고 바로 결정했다.
다음 목적지는 딸의 비즈공예 재료를 파는 곳이다. 5층으로 올라가니 환한 조명아래에 눈부신 비즈와, 알록달록한 리본과 키링과, 보석들이 현란하다 못해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골목마다 채워진 사람들은 예쁘고 귀엽고, 새로운 것을 찾고 있었다.
엄마는 멀찍이서 다른 것을 보고 계시고 딸은 그 틈으로 들어가 자신의 취향에 꼭 맞는 비즈를 찾아내려고 했다. 딸이 고른 것을 보고는 할머니가 지갑을 여신다. 그리고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신다. 딸은 연신 괜찮다고 하지만 할머니가 기어코 계산을 하셨다.
딸이 비즈의 세계에 빠져들 무렵 옆 가게에 엄마가 좋아하실 만한 것을 찾았다. 옷이나 가방에 열을 가해서 붙일 수 있는 패치 스티커 천국이다. 꽃과 요정, 동물, 과일, 캐릭터까지 없는 게 없다. 엄마를 모시고 오니 한참을 둘러보신다. 그리고는 장미와 접시꽃을 고르고 “나는 이게 마음에 들어”라고 하셨다.
이번에는 내가 재빠르게 계산을 했다. 가방을 만드셨는데 허전해서 뭔가 붙이고 싶었다고 하신다. 엄마 마음에 드신 걸 찾아서 다행이었다. 딸이 구경하는 곳에 갔다. 예쁜 색의 핀이 있고, 핀에 달수 있는 참을 팔고 있었다. 나는 감색 코트에 달 핑크색 핀과 참을 3개 골랐다. 이번에는 딸이 계산을 한다.
어찌 된 일인지 셋이서 각자 산 걸 다른 사람이 계산해 주는 모양새가 되었다. 깔끔하게 본인이 계산하면 될 텐데, 우리는 왜 치근덕 치근덕하게 서로 내주고 싶어 하는 건지를 따라가다 보니 정 많은 엄마에게 이 마음을 받아 내가 딸에게 전해 주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금액도 상관없고, 뭐라도 사주고 싶은, 끈적이는 마음은 위에서 흘러오고 있었다. 이 마음이 3대를 이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