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정리, 마음 정리

by 연두

아침부터 책상 서랍을 열었다. 며칠 전부터 뭔가 알 수 없는 싱숭생숭한 마음에 영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던터였다. 이럴 때면 책상과 책꽂이를 유심히 본다. 그리고 곤도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말을 떠올리며 책꽂이의 책과 서랍의 물건을 하나하나에 생존입니다! 탈락입니다! 를 정하기 시작한다.


책상 옆쪽에 있는 3칸짜리 서랍에는 자질구레한 살림이 가득하다. 큰 딸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책상 세트를 바꿔주면서 사 준 서랍장이다. 위치가 마땅치 않아서 집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몇 년 전부터 내 방에 정착했다. 책상은 원목색인데 서랍은 회색빛과 아이보리색이 도는 mdf 가구이다.


첫 번째 칸에는 문구류가 있다. 알록달록한 포스트잇과 떡메모지에서부터 스테이플러, 원색 집게. 지우개와 테이프, 딱풀, 마카펜과 리필 볼펜심까지 없는 게 없이 웬만한 게 다 있다. 책상 옆 작은 문구가게다. 다이어리 꾸미기와 소품 만들기에서부터 캘리그래피 글씨도 쓸 수 있다.


애정하는 서랍이지만 근래에 사용하지 않는 문구류를 골라냈다. 잘 나오지 않는 하늘색 펜과 메모지, 오래돼서 접착력이 떨어진 포스트잍을 꺼냈다. 사용하지 않는 마스킹 테이프와 리필하려고 놔두었던 빈 수정테이프를 꺼냈다. 그리고는 책상 끝쪽에 올려놓았다. 이제 여기는 오늘의 탈락 대상자들이 모일 장소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 서랍을 매의 눈으로 보았다. usb와 문진, 북밴드와 멀티탭, 보조배터리와 각종영수증, 마그네틱과 손거울, 수료증등, 물건들을 보다 보니 미니멀리스트 탈을 쓴 맥시멀리스트였다. 영수증 묶음에서 오래된 영수증을 정리하고 최근의 것만 남겨놓았다. 보조 배터리도 작은 것만 남겨 놓고 큰 사이즈는 처분대상이다. 사용기한 지난 프로그램 이용권도 탈락자의 자리로 보냈다.


서랍칸마다 사용하지 않고 쓸모도 없는 물건이 구석구석 쌓여 있었다. 설레지 않으면 사용빈도가 낮아지고 더 이상 쓸 일이 없어진다는 뜻이니 떠나보내는 것이 맞다. 마지막 칸에는 좋아하는 기념엽서와 그동안 받은 편지와 카드가 있다. 그동안 받은 편지를 하나씩 보자니 고민이 된다. 더 이상은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사람의 카드를 어떻게 할까. 편지를 받을 때는 서로 가까웠고 마음을 나누던 사이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으면 보관해야 할까 정리해야 할까. 몇 개는 사진으로 남겨 놓고 나머지는 보류하기로 했다. 한 번씩 보면서 이럴 때가 있었지라고 추억하다가 그런 추억마저도 잊혀도 괜찮다고 여겨지면 그때 없애면 덜 미안해질 것 같다.


마지막 서랍에서 편지와 카드를 읽고 고민하느라 시간이 걸렸지만 마지막 서랍까지 덜어내고 나니 한결 가벼워졌다. 집안 물건을 정리하면서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구별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도 무엇을 버려야 할지, 남겨야 할지가 보인다.


집을 정리하면서 꼭 필요한 물건만 남듯이 마음도 비워내다 보면 남겨야 할 관계와 마음만 남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침 댓바람부터 시작한 서랍정리로 쓸모없는 물건과 함께 마음에서 떠나보내야 할 것들을 잘 비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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