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걸 어머님의 명절

변화의 바람이 2배속으로 와주기를

by 연두


구정 전날, 여느 명절과 다름없이 시댁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부모님 댁으로 직진이 아닌 반찬가게를 경유했다는 것이다. 지난주에 예약해 놓은 녹두전과 동그랑땡, 동태 전을 찾으러 갔다. 이미 가게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바구니마다 전이 종류별로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사람들은 손에 1회용 접시를 들고 전을 담고 있었다.


가게 주인아주머니께 이름을 말했다. 미리 포장해 놓은 봉지를 주신다. 정갈하게 담긴 녹두전과 동그랑땡을 받고 계산을 했다. 그리고 서둘러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반찬가게에서 전을 사가지고 가다니. 23년 만의 불어온 변화다. 유교적 색이 짙은 시댁은 1년에 두 번의 제사와 두 번의 명절을 풍성하고 거하게 지낸다.


명절과 제사 때는 작은 아버님 내외가 오시고 그 장남의 가족이 참석을 한다. 고모님과 그 자녀들이 올 때도 있다. 남편 형제인 3남매의 가족과 자녀들은 기본이다. 참석 인원은 기본 17명에서 20명을 넘기기도 한다. 20여 명의 사람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서 제사음식에 요리가 3-4가지 추가된다. 갈비찜이나 잡채, 샐러드와 색다른 요리 두어가지다.


명절과 제사 때가 되면 어머님은 일주일 전부터 장을 보신다. 그리고 물김치와 배추김치를 담그신다. 며칠 전부터 재료를 손질하시고 전전날쯤 식혜를 만들어 놓으신다. 추석이면 송편을, 설날이면 만두를 빚는다. 어머님은 추석 때는 송편 반죽과 소를, 설날에는 만두소를 만들어 놓으신다. 우리가 전날 도착하기 전 어머님이 미리 해 놓으시는 일이 20-30가지는 될 것 같다.


어머님의 일을 쓰기만 해도 진이 빠지는 느낌이다. 적어 놓은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보이지 않는 일이 더 많다. 어머님이 진이 빠져갈 즈음 며느리들이 도착해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된다.


3가지 나물을 씻고 다듬고 양념해서 볶는다. 산적과 가족들이 먹을 고기를 양념에 재어 놓는다. 생선을 굽고, 두부를 부친다. 떡국이나 고깃국을 끓이기 위해서 육수를 만든다. 고기와 김치와 숙주를 섞어 놓은 만두소로 만두를 만든다. 올해는 우리가 도착하기 전 이미 만두를 다 만들어 놓으셨다. 이럴 때면 어머님께 한소리를 해야 한다. 요즘 등이 아프다고 하시는데 이렇게 해 놓으신 걸 보면 또 속이 상한다.


오전부터 여자들은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남자들은 거실소파에서 티브이를 보거나, 잠을 자거나 몇몇 이서 스크린 골프를 치러 갔다. 저녁이 될 때까지 이 그림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일하는 중간에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잠깐 쉬기도 하지만 내일 아침에도 새벽같이 와야 하기 때문에 빨리 끝내고 조금이라도 일찍 집에 가는 것이 낫다.


이번 설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머님은 여전히 일을 많이 하셨고, 여자들은 전날과 당일 새벽 일찍 움직였다. 차례 상을 차리고 끝나면 바로 가족들의 식사가 차려져야 해서 부엌 밖으로 나올 틈이 없다. 정신없이 식사가 끝나면 후식을 준비하고 산처럼 쌓여있는 그릇을 설거지 하기 시작한다. 20인분 정도의 한식 설거지는 두 사람이 끊임없이 움직여야 30-40분 내에 끝낼 수 있다. 한 사람은 세제로 닦고 한 사람은 헹구고 또 한 사람은 그릇을 정리한다. 설거지와 뒷정리가 끝나면 명절이 끝나간다.


다음날 전날의 피로가 풀리지 않은 상태로 sns에 들어갔다.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지인들 업데이트된 사진을 보니 명절 아침에 브런치 카페에 가고 커피를 마시고 외식을 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딴 세상 이야기가 펼쳐졌다. 제사 음식을 하고, 차례를 지낸 것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여행을 하고 온 느낌이다. 명절 당일에 가족들과 외식을 하려고 하는데 식당마다 대기가 많아서 여기저기 찾아다녔다고 한다. 도수치료 선생님도 큰집 가족들과 펜션 가서 족구를 했다고 한다.


우리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드문드문 들렸다면 이제는 고개만 돌려도 보이고 들린다. 세상이 많이 달라지긴 했나 보다. 0.2배속으로 더디긴 하지만 이번 설날 전을 사 오는 것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긴 했다. 이 바람이 훈풍에서 강품이 되는데 얼마나 걸릴까. 졸병 며느리의 바람은 어머님이 더 나이 드시기 전에 점차 음식의 가짓수가 줄어들다가 어느 순간 밖에서 외식을 하고 차를 마시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으면 한다. 명절과 제사 때마다 어머님의 어깨 위에 씌워지는 노동이라는 무거운 짐이 벗겨지고 어머님의 마음에 해방가가 흘러나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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