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군용 담요 어디 있어요?” 설날 오후 거실에 펴 놓았던 상을 옆으로 밀면서 엄마에게 물었다. 몇 년 전부터 설날에 부모님 댁에 가기 전에 보드게임을 챙긴다. 어릴 때야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잘 따랐지만 커 갈수록 손주들과 부모님이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오랜만에 만나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공감대를 형성할만한 것이 없었다. 아이들이랑 하던 보드게임을 시도해 본 것이다. 7 순이 넘는 부모님이 과연 보드게임을 하실 수 있을까 싶었지만 기우였다. 하나씩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고 게임을 반복하다 보니 감을 잡으셨다.
명절 당일 오후면 시댁에 갔던 언니네와 우리 가족은 친정으로 모인다. 새배가 끝나면 거실한쪽에 윷놀이방과 보드게임방이 열린다. 50년은 족히 된 국방색 군용 담요가 깔리면 12명의 가족들은 동그랗게 모여 앉는다. 앉은자리대로 팀이 정해진다. 옆에 앉은 사람이 상대팀이 된다.
작년에는 각 가정의 막내 손주들의 맹활약을 펼쳤다. 두 막내가 연속 모나 윷을 던져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말 3개를 업고 골인지점까지 갔는데 바로 앞에 있던 상대팀에서 빽도를 던져서 막판에 뒤집힌 스토리는 가족들이 모일 때마다 이야깃거리가 됐다. 윷놀이에 반전 포인트는 낙과 빽도에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낙과 빽도가 나오면 거의 이기던 게임도 뒤집히는 대반전의 스토리가 된다.
작년 드라마의 주인공, 막내들을 영입하기 위한 신경전을 뒤로하고 윷놀이가 시작되었다. 각 팀은 파이팅 구호를 외치면 기선을 제압하는 시늉을 한다. 진 팀은 10분 거리의 상가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오기로 했다. 같은 팀원이 윷을 던질 때면 “너는 할 수 있어. 믿는다. 윷 하고 걸을 치면 돼” 부담인지 응원인지 알 수 없는 파이팅을 외친다. 원한다고 나와준 적도 없는데 매번 기대와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다.
올해 윷놀이에 큰 반전은 없었다. 승리의 주역은 두 딸에게로 돌아갔다. 모와 윷이 벌 갈아 나오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진 팀에 있던 남편과 손주들은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 배스킨라빈스 패밀리 사이즈에 신상 메뉴를 담아왔다. 12명의 가족은 둘러앉아서 순식간에 아이스크림을 해치우고 다음 순서인 보드게임방을 열었다.
보드게임방은 4명씩 두 팀으로 나뉘었다. 한 팀은 숫자를 활용하는 루미큐브팀, 한 팀은 스릴 팡이라는 순발력 게임팀이다. 루미큐브팀에는 할아버지와 딸, 손녀 두 명, 스릴 팔에는 할머니와 남편과 이모와 손녀, 손자 조합이다. 할아버지가 1년 동안 루미큐브 게임방법을 잊어버려서 손녀가 도우미를 하면서 게임을 했다. 조용하지만 강한 둘째 손녀의 승리로 끝났다.
순발력 게임방은 목소리 큰 남편의 중계방송으로 왁자지껄하다. 누가 몇 점을 땄고, 누가 몇 점을 잃었는지 실시간 방송으로 루미큐브방에도 게임 상황이 공유되었다. 동시에 두 게임을 하는 하는 혼돈 속에서도 루미큐브를 두 판이나 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할아버지는 루미큐브 게임 룰을 확실히 익히셨다.
숫자와 색을 조합해서 자신의 카드를 줄여나가다가 완전히 없애는 게임이 쉽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매 년 배워서 참여하시는 부모님과 게임 룰을 가르쳐 드리는 손주들의 모습, 온 가족이 윷놀이를 하면서 엉덩이가 들썩거리도록 환호했다가 좌절했다가, 말을 잘 못 놓았다고 후회했다가, 잘 던졌다고 하이파이브하는 장면들이 이번 명절의 추억으로 소복소복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