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버지와의 통화

by 연두

오전에 며칠 동안 미뤄왔던 일을 했다. 친정아버지와 시아버님과 통화를 하는 일이다. 다이어리에 적어 놓고 바쁜 일이 있어서 며칠을 넘기다가 오늘 마음을 먹고 전화를 드렸다. 친정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니 여러 번 울리는데도 받지를 않으신다. TV 볼륨을 크게 틀어 놓으셨나 싶어서 기다리다가 끊었다. 몇 분 뒤에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기원에 계시다고 한다. 바둑 다 두시면 통화를 하자고 말씀을 드렸다. “응, 그래, 나중에 통화하자.”라고 하시는데 목소리는 작지만 예전에 느끼지 못하던 말랑함이 묻어 난다.


작년에 아버지에 대한 글을 보여드리고 나서 작은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무뚝뚝하시고 지나온 얘기를 많이 하시는 편인데 내 글을 읽은 이후에 생각이 많으신 것 같았다. 요즘 들어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부쩍 많이 하신다. 아버지가 연세가 들수록 점점 대화가 어려워지는 때가 올 텐데 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싶다고, 아버지의 마음과 내 마음이 어떤지 나누고 싶다는 바람을 조금씩 내비쳤다. 그 마음이 통했던 걸까. 요즘은 지식 전달과 지난 얘기가 아닌 마음을 얘기하신다.


친정아버지와 전화를 끊고 나서 시아버님께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서너 번 울리니 받으신다. “그래 oo야.” 시아버님은 언제나 목소리에 힘이 있으신데 웬일인지 먹먹한 소리가 들렸다. 별일 없으신지 물으니 감기가 걸렸는데 낫지를 않다가 요즘 괜찮아졌다고 하신다. 자식들에게 절대 힘든 기색이나 어려운 얘기를 하지 않으시는 분이 요즘에는 아픈 얘기도 넌지시 하시기도 하고, 속상한 표현을 하실 때도 있다. 이제 며느리를 편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시아버님은 뭐든 혼자 해결하시고 알아서 하신다. 자녀들을 의지하지 않으신다. 몇 년 전부터 자동차를 처분하고 자전거를 타신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몇 년 전에는 요철에서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헬멧을 쓰고 계셔서 치아가 부러지고 얼굴 다친 것으로 끝이 났지만 큰 사고로 이어질뻔했다. 자전거를 타지 마시라고 해도 요지부동이시다.


며칠 감기로 한참 고생하셨는데 그걸 몰랐구나 싶어 죄송한 마음에 기침이 심하신지, 병원은 가보셨는지 여쭤보았다. 약을 드시다가 괜찮으면 다시 심해지고 약을 다시 드시고 몇 번 그러셨다고 한다. 아무래도 자전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자전거 타실 때 찬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마스크를 하고 타시라고, 감기가 얼른 나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아버님과 전화를 끊고 나서 오후에 일을 보고 들어오니 친정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그냥 안부전화 드렸다고 했다. 별일은 없는데 몸이 여기저기 안 좋다고 하신다. 그 얘기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잠깐 망설였다. “몸이 아파서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그래도 잘 드시고 걷기 운동도 꼭 하셔야 해요 ”라고 말하고 화제를 바꾸었다. 엄마는 계신지, 저녁은 드셨는지 여쭤보고 큰 조카가 유럽여행 갔는데 아시는 지도 물어보고는 전화를 끊었다.


친정아버지와 시아버님과 통화하면서 문뜩 두 분이 달라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분은 목소리의 톤에 따뜻한 색이 입혀졌고 한 분은 감기에 걸렸다. 이런 일은 어떡하냐라는 구체적인 내용이 생겼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던가. 이 분들을 보면서 꼭 그렇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삶이라는 나이테에 굳은살이 배긴 분들이지만 온기가 생겨나기도 하고 연약함을 인정하는 변화가 있기도 한 것이다.


두 분과 통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통화가 끝날 때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전화해 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하신다. 휴대폰을 타고 두 분의 고맙다는 말이 들려오면 마음 한편이 저리다. 전화 한 통화에 고맙다고 하시는 분들인데 왜 망설였을까 죄송한 마음에 다음엔 자주 전화를 해야겠다는 다짐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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