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졸업한 육아서를 다시 집어 들었습니다

by 연두


도서관에서 지나영 교수의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책을 빌려왔다. 초등학생 하원 돌봄을 시작하면서 졸업했다고 생각한 육아가 다시 시작된 느낌이다. 집안에 성인이 4명이니 성인들과의 대화만은 하다가 어린아이의 언어를 들으니 버퍼링이 생긴다. 아이의 언어와 감정, 표현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육아서를 다시 읽어 보기로 했다.


돌봄 3주 차가 되다 보니 아이와 적응단계를 넘어 익숙한 단계가 되었다. 아이는 어느 날은 참관 수업에 오면 좋겠다고 하다가도 어느 날은 “선생님과 빨리 헤어지면 좋겠어요”라고 한다. 선생님과 놀아주기 힘들다는 말로 나를 들었다 놨다 한다. 아이의 이런 태도에 웃기도 하다가 놀라기도 한다.


아이는 묵찌빠를 좋아한다. 매일 한 번씩은 하는데 꼭 누군가 5번을 이길 때까지 하자고 한다. 아이는 영민해서 묵찌빠를 꽤나 잘한다. 나의 심리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 잘 이긴다. 아이에게 번번이 지다가 오늘은 어쩐 일인지 내가 이겼다. 아이는 방방 뛰면서 버럭 화를 낸다. 아니라고 잘못되었다고 자신이 5번을 이겼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얼마나 예민한지를 보여주겠다고 하는데 그런 모습에 웃음이 났다. 이번에는 웃었다고 싫다고 한다.


아직 어린아이는 아이구나 싶다. 내 아이였다면 이런 아이의 모습에 양육자로써의 책임과 무게를 한껏 안고 네가 진 걸 인정하는 게 멋진 거라고 한소리 늘어놓았을 것이다. 안 봐도 뻔하다. 양육이라는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서 예의와 사회성을 가르치는 눈으로 아이를 바라봤을 올 것이다.


왜 자기가 진 것을 인정을 못하나. 자기중심적이냐며 걱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양육자아 아닌 삼자로 한 걸음 떨어져서 보니 그저 아이일 뿐이었다. 본인의 생각을 똑 부러지게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강점인가. 강점 뒤에 다른 얼굴로 나타나는 약점의 모습을 이제는 조금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지기 싫다는 것은 요즘 같은 세상에 얼마나 필요한 성향인가. 무한 경쟁사회에서는 승부욕이 있는 사람들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어쩌면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성향을 타고난 것이기도 하다. 욕심이 많다는 것은 욕구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욕구가 많다는 것은 성취하고 싶은 게 많다는 뜻이다. 욕심이 많다는 것을 무조건 나쁘게만 볼 것도 아니다. 지나고 보니 욕심과 성취는 어떤 면에서 세트처럼 따라다기도 한다.


아이가 어릴 때 엄마들은 욕심이 없으면 욕심이 없어서 자기 몫은 챙길 수 있겠냐며 걱정, 욕심이 많으면 자기밖에 모른다고 걱정, 자기주장이 강하면 혼자 튄다고 걱정, 주장이 없으면 자기 얘기도 못한다고 걱정이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의 시기, 초등 학년은 그런 시절이었다.


돌봄 아이의 모습에서 웃음이 나오면서 야물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도 만만하게 보이거나 지지는 않겠다 싶다. 공부도 그렇고 커서도 암팡지게 잘 살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진다. 아무래도 아이들에 대한 걱정인형을 한 트럭 만들었다가 내다 버렸다를 수도 없이 반복하던 그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아이와 묵찌빠를 한바탕 하고서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빌려온 육아서를 읽어보았다. 아이의 행동을 지적하고 탓하기보다 가치를 알려주는 표현을 하라고 한다. 하원 돌봄이라는 짧은 시간에 아이 양육과 관련된 무언가를 하기는 어렵겠지만 나의 마음에 이 책의 내용을 담아 두는 것과 아닌 것은 차이가 있지 싶다. 오늘부터 정독모드 돌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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