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더 급해요 이마랑 미간에 주름 좀 보세요. 애들만 신경 쓰지 마시고 더 늦기 전에 본인에게도 투자하세요 “
둘째 여드름이 심해져서 찾은 피부과에서 대뜸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몇 마디를 하셨다. 얼마 전부터 이마와 눈가의 주름이 눈 밑을 내려와 광대뼈 주변에 생기는 게 신경 쓰이긴 했다. 조만간 하회탈 되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몇 마디에 팔자주름 더 깊어지는 웃음을 짓고 말았다. 갱년기 증상으로 뼈마디며 어깨며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아우성을 막아내느라 미간주름까지는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어쩌다 나도 모르는 사이 생긴 내천자를 여기서 발견하게 된 건지.
주름이 깊어지기 전에 보톡스를 맞아야 한다며 선생님은 아이에게 엄마가 주사 맞으시도록 잘 말해보라고 당부까지 하셨다. 당부하시는 선생님의 얼굴을 보니 이마에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하다. 피부는 다리미로 다려 놓은 것처럼 매끈하고 광택이 난다. 어떻게 모공도 안 보일까 신기해하면서 여기서 시술을 받으면 저런 이마가 되겠구나 싶었다. 다른 곳보다 실력이 좋으신 건가. 했는데 시선이 얼굴에서 목으로 내려오다 나도 모르게 아이고 소리가 나올뻔했다.
선생님의 팽팽한 얼굴 밑에 목주름이 가득하다. 세월이 시술의 힘으로 얼굴에서 잘 통과하다가 목에서는 삐끗했나 보다. 결승선까지 가지 못하고 나동그라졌다. 자글자글한 목주름과 팽팽한 이마가 왠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선생님의 말에 당장 보톡스를 맞아야 하나라고 흔들렸던 마음은 어느새 평정심을 되찾았다.
며칠 전에 염색을 안 하고 흰머리를 길러보겠다고 6개월을 버티다가 결국 미용실에 갔다. 단골손님이 오셨는지 사장님과 손님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사장님은 마스크 낀 손님에게 “얼굴에 뭐 하셨어요?”라고 물었다. “리쥬란 하셨어요?”“응 얼굴이 영 주름도 많고 아니어서” “저도 사장님이 마지막손님이에요 영업 끝나고 엄마랑 피부과 갈 거예요”라고 하신다. 미용실에 온 손님도 사장님도 피부관리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화기애애하다. 손님도 사장님도 팽팽한 피부로 둘 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일이 있으면 왠지 시술이든 뭐든 해봐야 할 것은 같은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머리로는 ‘자연스럽게 나이 드는 게 좋은 거야. 배우들을 봐봐, 보톡스 주사를 맞고 주름을 펴고, 안면 거상을 한 배우와 하지 않은 배우의 표정을 좀 보라고’를 외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누군가 십 년은 젊어진 모습으로 나타나기라도 하면 어디서 얼마를 들여서 했을까 하고 궁금해지는 것이다. 노화에 대한 마음은 연예인을 볼 때와 나를 볼 때 왜 다른 잣대를 가지게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코로나가 시작할 무렵이었다. 감금되다시피 집에 갇혀있을 때 넷플릭스에서 빨강머리 앤 드라마를 발견했다. 가족이 함께 매주 토요일마다 연달아 2회씩 봤다. 주연, 조연을 가릴 것 없이 싱크로율 200프로 배우들의 연기 보는 재미로 매주 토요일을 기다렸다. 특히 매튜아저씨와 마릴라 아줌마가 앤과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른다. 그들의 연기에 더 몰입되었던 것은 세월을 담은 깊은 주름과 외모, 풍부한 표정연기 때문이었으리라.
주름은 자기 관리 안 함이라는 공식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언제부터인가 중년이 되기 전부터 피부며 주름관리가 유행이다.잡티는 없애야 할 존재가 되었다. 누군가의 눈가 주름은 살아온 기쁨, 입가 주름은 삶의 생생함, 미간 주름은 풍랑을 이겨내려던 애씀 , 흰머리는 살아오고 견뎌낸 시간이라고 번역기를 돌려서 생각할 수 있다면 나이 든 흔적을 애써 지우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제삼자 까지도 노화를 거스르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세월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는마음과 나이 들어 보이고 싶지 않은 이중적인 마음의 소리가 해결되면 흰머리의 반짝임과 얼굴에 생기는 시간의 결을 웃으며 맞이 할수 있지 않을까. 세월의 흔적을 다시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