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미셀 바스키아’ 지인으로부터 처음 이 이름을 들었을 때 누군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익숙한 그림과 얼굴이 나온다. 그래피티 아티스트 장 미셀 바스키아. 그의 대표적인 작품을 보니 기억이 났다. 국내 최대 규모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지인 덕분에 전시회가 끝나기 전에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피티 예술가라고 하면 뱅크시가 유명하지만 장 미셀 바스키아는 그래피티 예술계의 1세대라고 한다. 뱅크시가 철저히 무명의 작품활동을 추구한다면 장 미셀 바스티아는 유명세를 즐기고, 유명해지기를 추구하는 예술가였다. 자신의 초기 작품을 명함처럼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인정받고 싶어 했다.
뱅크시와는 다른 결의 예술가에 대한 호기심을 안고 전시회를 갔다. 입구에서부터 장미셀 바스키아가 자신의 작품 앞에 있는 전신사진과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작품만큼이나 화가의 이미지가 강하게 다가온다. 그는 27살 생을 마칠 때까지 3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너무 젊은 나이에 자신의 삶을 불태우고는 완전히 연소해 버린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초기의 작품은 알 디아스라는 친구와 함께 samo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다. 이후에 두 사람은 의견 차이로 해체된다. samo는 죽었다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장 미셀 바스키아는 자신의 이름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의 작품에는 그의 삶에 많은 영향을 준 경험과 시대상과 문화가 담겨있다.
작품전반에 오렌지색과 베이지색, 검정색상이 많이 사용되었다. 인테리어 분야에서 일하는 지인이 이 색감이 세련되고 잘 어울리는 조화라고 한다. 여백을 이용한 단순하고 간략한 그림이 있기도 하고 여백 없이 색으로 채운 그림이 보이기도 한다.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단순한 그림도 있다. 어떤 작품이든 본인이 남기고 자하는 메시지와 이미지를 반복해서 표현했다.
그냥 볼 때는 안 보이지만 블랙 라이트를 비치면 뒷배경 속에 감춰진 그림이 보이는 작품도 있었다. 존경하는 인물이 주인공인 그림이 많았다. 동료 화가를 왕으로 표현하고 존경의 뜻으로 왕관을 씌워주기도 했다.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천재예술가라는 평가가 크게 와닿지 않다가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거르지 않은 거침없는 자유로움, 활자와 기호 독특한 방식의 그림은 대중에게 대리만족과 쾌감을 느끼게 하는 것일까 생각을 해본다. 왜 흑인은 어디서든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지, 고통은 왜 생기는 것인지,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자 날 것 그대로의 메시지가 보는 사람의 마음에 강렬하게 남는 것이 아닐까라고 나름의 해석을 내린다.
너무 일찍 만개해 버린 27살 천재화가 장 미셀 바스키아. 조금 천천히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는 어려운 세상의 무게와 고뇌를 함께 해줄 성숙한 동료와 어른이 있었으면 그의 삶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장미셀 바스키아 덕분에 접하게 된 그래피트 아트의 세계로 한발 내디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