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를 쓰고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by 지종근

아홉 살, 그때는 1년에 몇 번씩 시화대회가 열렸다. 말 그대로 시에 맞는 배경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시를 적는, 지금 생각해 보면 품이 꽤 들어가는 종합예술이었다. ‘나무’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차갑고 단단한 전신주보다는 가지를 내려 그늘을 만들고, 몸소 장작이 되는 나무가 되고 싶다는 어린이의 뜻 모를 포부가 담긴 시. 정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 당시에도 좋은 의미이자 비유라는 생각에 많은 생각 없이 글을 써 내려간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내가 연필을 내려놓자, 엄마는 붓을 들었다. 줄기와 뿌리가 두껍고 가지가 쭉쭉 뻗은 한 그루의 나무가 얼른 그려졌다. 내가 써 놓은 시를 큰 글씨로 예쁘게 옮겨 적는 것도 역시 엄마의 몫이었다. 4절지든 커다란 캔버스든 엄마의 손길이 닿으면 늘 멋진 작품이 만들어졌다. 고이 모셔 간 작품들은 복도 끝 이젤에 놓여 전시되곤 했고, 학기를 마치며 학교 차원에서 발간한 책에는 늘 내 글과 엄마의 그림이 실렸다. 이제 보니 내가 되고 싶어 했던 나무 같은 사람이 사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든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어린 날의 기억을 떠올리니 나름의 열정이 기특하면서도 그 서투름에 웃음이 나왔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숙제를 완성하는 것은 일종의 관행처럼 여겨지곤 한다. 엄마가 그린 그림 위에 쓰인 나의 시는 멋진 앙상블을 이루었지만, 이 작품은 엄연히 따지면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각 기여분이 분리될 수 없는 저작물은 ‘공동저작물’로 분류되지만, 각 부분이 독립적 저작물로 분리될 수 있다면 ‘결합저작물’에 해당한다. 대지 위에 홀로 설 수도, 함께할 수도 있다. 하나로 남아도, 둘로 나뉘더라도 오롯이 존재하여 의미를 가진다. 그 의미가 씩씩하고도 퍽 따뜻하다. 저작물로 가득한 세상에서 나는 저작물 그 자체로 서기도 하며 결합저작물의 일부가 되어 왔으리라.


어쩌면 엄마의 손길이 더 많이 닿았을지도 모르는 내 작품들은 그렇게 수년간 만들어져 집에 쌓였다가 2018년에 모조리 버려졌다. 그해 겨울에는 눈 대신 많은 비가 내렸다. 차가운 비가 윗집의 배관을 터트렸고, 빗물인지도 모를 것들이 천장과 벽면으로 흘러내렸다. 휴가를 맞아 전투화를 신고 들어선 집은 이미 수습이 되었는지 부쩍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만사에 미련이 많아서 버리지 못했던 것들은 이미 흔적조차 없었다. 생각보다 아쉽지는 않았다. 결과물은 유한하지만, 그 기억과 열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릴 적 심은 나무는 또다시 땔감이 되고 또 다른 싹을 틔워내는 양분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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