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 갈 수도 있었던 사람

by 지종근

좋으냐 물으셨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네 방이 있었다면 서울대라도 갈 수 있었던 거 아니니?"

그럴 수도 있었다고 짓궂게 답했다.

평생 살아온 집을 떠나 이사를 한다.


내가 나라는 자각도 없던 갓난쟁이 때 이 집에 담겨 30년 가까이 살았다. 방 하나는 안방, 동생과 쓰던 방은 어느덧 작아져 한 명은 방을 양보해야만 했다. 그러고 보면 몇 년째 거실을 방처럼 쓰고 있는 내 생활에 특별한 계기는 없긴 하다. 그래도 '왜 나지?'하는 생각보단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포기라면 포기, 거창하게 말하자면 어떤 구도자의 마음으로 지내왔다고 말해도 좋겠다. 조금 억지스러워도 그렇게 몇 년 간의 거실 생활을 군말 없이 해낸 나의 노력을 치하하고 싶기도 하다.


카페에서 글을 쓰다가 집으로 향하던 길에 마중 나와 있던 엄마를 만났다. 엄마가 여기까지 나와 있는 일은 드물기도 한 데다가, 어쩐 일인지 엄마는 아이처럼 들뜬 모습이었다. 엄마가 원하던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삶에 있어서 이렇다 할 변화보다는 정적인 관성에 몸을 맡겨온 나로서는 이사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타성에 젖는다고 하던가? 현재에 안주하다 보니 커진 몸을 담기엔 집이 좁아졌다. 이렇게 변해왔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내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고. 그래도 내 방이 생긴다는 것은 꽤 설레는 일이다. "네 방이 생기면 서울대라도 갈 수 있었던 거 아니니?" 엄마의 물음에 그럴 수도 있었다고 짓궂게 답했다. 크게 웃던 엄마는 이내 한숨을 내뱉으며 자조하듯 중얼거렸다. 진작에 갔어야 한다며. "이만큼 모았으니 여유롭게 가는 거죠" 한 마디, "명문대 나와도 취업난 앞에 장사 없던걸요" 두 마디. 대형마트가 가깝고 극장이 가깝다느니, 실없는 몇 마디를 보태며 새로운 보금자리에서의 삶을 낙관하며 집으로 향했다.


"아빠가 너한테 미안했다더라" 뜻밖의 말이었다. 아빠는 고맙든 미안하든 그런 표현에 매우 인색하니까. 서른인데 방 없이 불편하게 지내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여자친구도 데려오고 싶었을 텐데'하는 아빠답지 않은 엉뚱하고도 세심한 마음을 한 다리 건너서라도 전해 들으니 마음 구석구석 조금씩 비어 있던 마음의 빈틈이 모두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뜻 모를 설움도 싹 가시는 그런 기분.


"넌 사춘기도 없던 착한 아들이었어" 엄마가 버릇처럼 하는 예쁜 말이다.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아주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고3 때였을 것이다. 대학 진학 문제로 아빠와 다툼이 있었다. 좋지 않은 성적의 이유를 내 실력보다 환경 탓으로 돌리고 싶었던 것이 열아홉 내가 택했던 얄팍한 방식이었다. 아빠는 등 돌려 안방으로 들어가셨고 난 돌연 맨발로 집을 박차고 나갔다. 비가 제법 오는 여름밤이었다. ‘언제 한 번 빗속을 맨발로 걷고 싶긴 했어’ 정말 그런 생각을 했는지, 뜻 모를 행동의 이유를 찾고 싶었던 것인지 모를 일이다.


고작 이사 한 번에 기억에 묵은 먼지가 날려 눈이 따가워진다. 좋든 싫든 삶은 흘러가고 어떤 기억은 평생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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