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괜찮은데?”
“자세히 봐봐”
공연한 실랑이가 이어졌다. 눈을 크게 떴다가 위로 치켜떴다가, 이경규 아저씨처럼 눈을 굴려보기도 했지만, 떨리던 눈이 갑자기 멀쩡해졌다. 해가 바뀌고 난 뒤로 하루에도 몇 번씩 왼쪽 눈 밑이 떨려왔다. 눈 밑이 좌우로 왔다 갔다 한다고 느낄 정도로 큰 폭으로 움직였다. 거의 해가 바뀌고 증상이 시작됐다. 더 정확하게는 작년 말 어떤 날을 기점으로 내 일상에 조금씩 얼룩이 생겼다.
작년 늦가을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내 연차에는 경험할 수 없는 꽤 큰 일을 맡게 되었다. 확실하게 해두고 가자. 나의 능력 때문이 아닌 아주 우연한 계기로 그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일은 하나의 팀 차원으로 굴릴 수 있는 일이 애초에 아니었다. 작은 눈 뭉치를 굴려오던 이들이 있었고, 나는 그 일을 넘겨받아 이젠 눈사람 몸뚱이만 한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처음 쓰게 된 말 중에 ‘미결업무’라는, 투명하게 직역이 가능한 말이 있다. 꽤 큰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많은 미결업무가 줄을 서 있었다.
그중에서도 지금까지도 해결이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하나 있다. 당시에도 해결을 해보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나를 돕는 누구도 쉽게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고, ‘일단 알아보겠다’는 어른의 관용구로 나 또한 느슨하게 매듭을 지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앞서서 눈을 굴리던 A에게서 전화가 왔다. 굳이 말하자면 실제로 볼 일이 없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그러한, 협력사의 직원이라고 해두는 게 편할 것 같다. “그걸 아직 해결 못 한거예요? 전화 한 통이면 될걸. 잠깐 있어봐요.” A는 반말에 가까운 존댓말로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더니 전화를 끊었다. 험한 말을 내뱉으며 차에 오르자 다시 전화가 왔다. “해결해 뒀으니, 주임님이 연락해서 마무리하면 돼요. 거봐, 쉽잖아. 왜 일을 진작에 안 해서.” 화가 났다. 적당히 ‘흐흐’ 웃고 전화를 먼저 끊는 행동으로써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분노를 표출한 뒤 핸들을 몇 번 내려쳤다. 당신이 해서 쉬운 거였다. 아니, 당신이 능력을 난 모르겠지만, 10년을 넘게 그 회사에 다닌 당신이 말하니 먹힐 만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쉬운 일을 진작에 했으면 당신을 미워할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릴없이 후속 업무를 하는 중에도 A는 문자를 툭툭 남기며 성질을 돋웠다. 그래서 해결이 잘 됐으면 모르지, 그 방식은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작은 불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되었다.
내 일이 미워지기 시작한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처음에는 내 일을 꽤 좋아했다. 그러고 싶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점점 그럴 수 없게 상황이 변해갔다. 그래, 좋아서 하는 일은 없다는 말의 참뜻을 이젠 알았다. 그렇게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마음 편하게 쉬었던 날이 몇 없었다. 퇴근하고 나서 집이나 스터디카페에 박혀서 못다 한 일을 마저 해야만 했고 주말에도 일 걱정을 해야만 했다. 몇 시간을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다 현기증을 느낀 적도 있었다. 업무 자체의 난이도도 높았지만, 일차적으로는 내가 서툴기 때문이었다. 힘닿는 데까지 무작정 일을 하면서도 힘을 빼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도 좋을 대목을 짚어내는 요령도 없었고. 일이 많아지는 것도 모자라, 일이 나 자체로 변하는 느낌이 싫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24년의 마지막 날, 그날 저녁도 어김없이 남은 일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우울했다. 이런 날까지 일이나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처량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추모와 위로의 기도로 한 해가 비교적 차분하게 저물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그 감정을 글로 옮기고 싶었다. 내 식으로 그 마음을 정리하고, 곱게 접힌 감정을 받는 이 없이 부치고만 싶었다. 하던 일을 옆으로 치워두고, 회사 노트북과 함께 가져온 내 노트북을 열어 금세 글 한 편을 적어 올렸다.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리고는 ‘2025년에는 책 한 권을 읽겠다’는 이월된 목표에 두 줄을 긋고 매월 글 한 편을 마친다는 계획을 즉흥적으로 세웠다.
그렇게 한 달에 브런치에 올릴 한 편의 글을 완성해야 했고, 또 한 달에 한 번은 ‘듣는영화’ 녹음을 위해 방송 원고를 써야만 했다. 내가 스스로 정한 규칙 때문에 때론 오히려 일보다 더 촉박한 마감 일정에 쫓겨야 했지만, 오히려 그때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먹구름이 꼈던 머릿속도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일로 대표되는, 나를 옥죄는 것들을 내 삶에서 분리하기로 했다. 그게 어렵다면 탈착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거리를 두는 것, 그게 내가 최근에야 깨달은 옳게 된 삶의 방식이다. 어떤 일을 해도 어색하고 서툴러 실수를 연발하면 또 어떤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 일로써 나를 달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불과 며칠 전부터 심하던 눈 떨림이 조금은 잡혔다. 질 좋은 마그네슘보다 뛰어난 영양제는 어쩌면 내 안에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