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왜 늘 죄스러울까? 내 기억이 허락하는, 누군가의 최후의 순간을 떠올려본다. 곡소리와 한스러운 사과가 찬 공기를 울렸다. 망자는 답이 없다. 무거운 슬픔은 남은 이들만이 나누어 가진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대부분은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장면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엄마 에블린의 일생, 그의 것이었을지도 모르는 무수한 현재들과 그 안의 수많은 딸 조의 모습. 온전한 이해와 화해를 위해서 다중 우주를 유영하는 둘의 모습은 때론 명랑하고 또 감동적으로 그려졌다. 그와 동시에 인물들이 아가페적인 사랑을 품은 엄마나, 천덕꾸러기 딸과 같은 평면적인 인물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또 좋았다. 더불어 돌고 돌아도 곁에 있는 가족들의 모습에서는 필연적 인연의 애틋함도 묻어 나왔다.
‘이거 내 이야기인데?’라는 감상이 떠오를 때가 많았는데, 내 이야기를 꺼내 소개할 틈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2시간이 넘도록 다른 환경에 놓은 둘의 관계를 따라가기에도 벅차다는 생각이다. ‘남 얘기’ 같지는 않다며 따라갔으니 그거대로 옳게 된 셈이다. 내내 강하게 내리치던 고삐를 거두어들이며 도착 지점을 향해 나아갔지만, 왠지 이 영화가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크레딧이 올라가고 담담한 음악이 흐르자 눈물이 많이 났다. 극장을 나서면서도 느끼며 울었다.
‘사는 게 다 그렇다.’, ‘뭐 같아도 네가 견뎌라.’ 하는 말은 현실적인 위로일까, 무책임한 조언일까. 하나 확실한 건 누구도 듣고 싶지 않은 말일 것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사회적, 상황적 요소에 대해 굴복이나 타협을 강요하지도, 권유하지도 않는다. 다만 어디에서 어떤 곤경에 처하더라도, 한달음에 달려와 줄 내 편이 있다는 건 퍽 든든하다는 사실만을 힘주어 강조한다. 몇 번이고 무모해지겠노라고 자신하는 내 사람들이 있다고.
이렇다 할 이유 없이 미안하고 죄지은 느낌이 든다는 것, 이 기분에서 평생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사실에 가끔 먹먹해지곤 한다. 눈감는 날까지도 아마 그럴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이유 없이 미안한 만큼 기쁨을 나눌 일도 많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기. 우연히 같은 우주를 부유하며 만난 내 사람들과 미안함과 애정 나누기. 크고 작은 풍파에도 좀처럼 내색하지 않는 당신에게 힘껏 표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