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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소리 Aug 27. 2020

개선하고 싶으면 나서라.

- 토론은 이렇게 1

우리나라 대부분의 중고등학생들은 교복을 입는다. 그런데 일부 학생들은 교복 착용에 불만이 많다. 옷을 통해 한창 멋스러움을 뽐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불만이 쌓이는 것이다. 일부 학부모들도 불만이다. 아이들이 너무 빨리 자라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적어도 세 벌 이상은 교복을 구입해야 한다. 요즘 교복은 성인 정장만큼 비싸기 때문에 생활비 부담도 크다. 


교복 착용에 불만이 많은 김 군은 반 친구들과 교복 착용에 대해 찬반토론을 벌이기로 했다. 이때 논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교복을 착용하자.’와 ‘교복을 착용하지 말자.’ 중에서 무엇을 논제로 설정해야 하는가?


토론(주로 정책 논제 토론)은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고 싶은 사람들이 먼저 제안한다. 위의 사례에서는 교복 착용에 반대하는 김 군이 토론을 제안했으므로 ‘교복을 착용하지 말자.’가 적절한 논제이다. 당연히 제안자가 찬성 측이 되어 토론을 시작한다. 찬성 측은 먼저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고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를 신빙성 있게 거론해야 한다. 반대 측은 현재 상황을 고수하고 싶다. 따라서 찬성 측을 적절한 이유로 공격해야 한다. 이때 공격의 대상은 상대방이 제기한 근거의 타당성이나 신뢰성이다. 즉 찬성 측이 ‘교복을 착용하지 말자.’는 주장의 근거로 교복이 개성을 말살한다는 점을 들었다면 교복이 개성을 말살하는 정확한 이유를 대라고 따지거나 교복과 개성은 무관하다고 강변할 수 있다. 교복 착용의 장점을 이야기하면서 상대방 주장을 약화시킬 수도 있지만 이는 변칙적인 토론 기술이다. 원칙은 상대방 주장의 근거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여름철 해수욕장에서 모래탑을 쌓아 놓고 위에 성냥개비를 꽂은 후 모래를 조금씩 덜어내면서 성냥을 먼저 무너뜨리는 쪽이 지는 게임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주장이 성냥개비라면 근거는 모래다. 모래와 같은 근거를 조금씩 허물면 결국 성냥개비와 같은 주장이 무너진다.


이렇게 보면 토론은 진보 진영의 산물이다. ‘진보(進步)’는 말 그대로 변화와 혁신을 기본 가치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의 상대적인 용어인 ‘보수(保守)’가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 역시 변화를 수용한다. 다만 진보가 혁신적인 변화를 선호하는 반면 보수는 점진적인 변화를 선호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진보’의 반대는 ‘보수’가 아니라 ‘수구(守舊)’다. 


정책 토론이 아닌 가치 토론의 경우는 어떨까? ‘심청은 효녀이다.’와 ‘이몽룡에 대한 성춘향의 사랑은 순수하다.’는 ‘교복 착용’과는 논제의 성격이 다르다. ‘교복 착용’은 정책 논제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심청과 성춘향은 가치 논제의 성격이 강하다. 정책 논제가 현 상황을 개선하는 내용으로 논제를 제시해야 한다면, 가치 논제는 일반적인 생각(사회 통념)을 거스르는 내용으로 논제를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심청을 효녀라고 생각하고 춘향이의 사랑을 순수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통념이다. 하지만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심청이는 효녀가 아닌 것 같은데?’라든지, ‘춘향이의 사랑이 순수한 것 같지는 않은데?’라고 생각하는 삐딱한 사람들 말이다.(이런 삐딱한 사람들 덕분에 우리 사회가 훨씬 다채로워진다.) 이런 사람들이 토론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들이 찬성 측을 맡고 찬성 측이 먼저 말문을 연다. 그렇다면 논제는 어떻게 제시되어야 하는가? ‘심청이는 효녀가 아니다.’, ‘춘향이의 사랑은 순수하지 않다.’로 제시해야 토론 진행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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