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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소리 Dec 05. 2020

모임을 정리했다.

- 인간관계 간소화 프로젝트 2

술자리 모임이 있는 날에는 나는 오감을 총동원해서 아내의 기분을 살핀다. 그리고 강속구 투수가 온 힘을 다해 공을 뿌리듯 짧고 강렬하게 모임 이야기를 꺼내고 이내 아내의 반응을 살핀다. 투수가 타자의 배트를 마비시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타이밍이 중요하듯 아내의 부정적인 반응을 무력화하는 데도 적절한 타이밍이 필수적이다. 아내의 기분이 좋은 순간을 포착하는 매 같은 눈이 필요하다.

"저기, 오늘 예전 학교 선생님들 모임 있어."

그럴 때 아내의 반응은 당일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기분이 좋을 때는,

"그래? 대신 술 조금만 먹고 빨리 들어와."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아니, 어제도 술 마시고 오늘 또 술타령이야? 안 돼."

이럴 때는 그래도 협상의 여지가 충분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공률도 높아진다. 그러나, 기분이 좀 더 안 좋을 때는,

"........."

대답이 없다. 그냥 출근해 버린다. 이런 비관적인 날은 분주하다. 모임 참석이 힘드니 이제 모임원들에게 들이밀 불참 핑계를 찾아야 한다. 중년 남자라면 "아내가 허락을 안 해서 못 가겠어."라는 핑계가 "내일 조용히 책 읽고 싶어서 과장님 혼사에는 못 가겠어요."라는 핑계만큼 꺼내기 어려운 말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모임에 대한 아내의 반응이 일관적이었다면 나는 모임 달인이 되었거나 모임 문외한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모임에 대한 아내의 반응은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달랐다. 그러니 아내의 허락을 받기 위한 나의 지략만 늘어가서 이 분야에서 만큼은 제갈량을 능가한다는 자평을 하기에 이르렀다.


가령 이런 것이다. 모임 이야기는 최대한 모임 시간에 가까울 때, 바쁠 때 한다. 둘 다 출근 준비로 분주한 아침 시간이 제격이다. 정신없는 사이에 묵직한 직구를 던지고 서둘러 내빼는  것이다. 아침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퇴근이 가까운 시간도 괜찮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누구나 마음이 오리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워진다. 포근한 오리털 이불속에서 평화로울 때가 아내가 삼진을 당할 확률, 즉 내 투구가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타이밍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임 대상에 대한 아내의 신뢰도를 높이는 일이다. 아내가 신뢰하는 사람과의 모임은 비교적 성공률이 높다. 아내가 싫어하는 사람과의 모임도 안 할 수는 없으므로 모임을 위해 엉뚱한 대타가 등장하기도 한다. 순진하고 결백한 대타들. 그들에게 좀 미안하기도 하지만 투수들도 직구로 승부가 안 되면 변화구를 던지지 않는가? 그들 역시 나를 종종 희생양 삼았을 것이므로 서로 비긴 것으로 치면 된다. 가장 성공률이 높은 모임은 직장 상사와의 모임이다.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아내도 상사와의 모임은 싫어도 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떨 때는 내가 상사와의 잦은 모임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드는지 양심에 찔리게도 애잔한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나의 직장 상사들 역시 간혹 희생양이 되었다.


직장생활이 바빴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열 개를 훨씬 상회하는 정기 모임에 꾸준히 참석했다. 출석률로 따지면 개근상을 열 개 이상 받아도 무방했다. 직장 동기 모임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는 모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발적인 모임이었다. 고등학교 동기 모임, 대학교 동기 모임, 대학원 석사과정 동기 모임, 대학원 박사과정 동기 모임, 문학 연구회 모임처럼 학연으로 맺어진 모임들, 이전 근무지 동료 모임, 지금 근무지 동료 모임처럼 사회생활 속에서 맺어진 모임들, 논술교육으로 만난 선생님들과의 모임, 문항 출제를 함께 했던 선생님들과의 모임, 해외연수를 함께 다녀온 선생님들과의 모임 등 고생을 함께 해서 결성된 동지애적 모임, 등산 모임과 같은 취미 관련 모임 등 다양한 이유와 핑계가 씨줄과 날줄이 되어 나의 일상을 얽어맸다. 심지어는 무슨 이유에서 만들어진 모임인지 모를 모임도 있었다.

"근데 우리가 언제부터 모임을 하게 됐지?"

"글쎄, 그게 뭐 중요해? 그냥 술이나 마셔."

이런 다양한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일주일에 2~3번은 꼭 술을 마셨다. 나는 흡사 모임 강박증 환자 같았다. 모임에 빠지는 날에는 마치 궁벽한 섬에 위리안치된 벼슬아치처럼 깊은 고립감과 서글픔을 느꼈다. 


이랬던 내가 모임을 정리했다. 우선 이 많은 모임에 다 참석하자니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컸다. 내 정신과 육체는 매일매일 충전과 방전을 거듭했다. 휴대폰 배터리도 오래 쓰면 충전해도 곧 방전되듯이 내 인생도 이런 생활을 하기에는 너무 오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경제적 손실도 무시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한없이 비굴해져 간다는 자괴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와서였다. 아내의 허락을 받기 위해 다양한 변칙 투구를 마다하지 않았던 내 자신이 초라하다 못해 찌질하게 느껴졌다. 아울러 아내의 기억 속에 악인(惡人)으로 아로새겨진 무고한 선인(善人)들에 대한 미안함도 모임 정리에 큰 역할을 했다.


모든 모임이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 모임, 내가 억지로 비위를 맞춰줘야 하는 사람이 있는 모임은 1순위로 정리해고했다. 친구는 내가 참 넉살이 좋다고 말한다. 자기는 단 일 초도 말을 섞기 싫은 오만한 사람 앞에서도 해해 웃으며 비위를 잘 맞춰준다는 칭찬과 경멸의 표현이 넉살 좋다는 말임을 내가 모를 리 없다. 친구는  '배알도 없는 놈'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넉살'의 배다른 형제가 '배알'이라는 것쯤은 눈치껏 알고 있었다. 그렇게 배알 없이 살아온 과거를 정리하고 이제 잃어버린 나의 '배알'을 되찾고 싶었다. 지금까지 나는 모임에 결석은 물론 지각, 조퇴를 잘하지 않는 범생이였다. 제일 먼저 출석해서 1차, 2차 야간 자율학습까지 마치고 교실 문을 잘 잠그고 귀가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즐겁게 했던 모임에서도 과감히 개근을 포기했다. 간혹 병결석하기도 하고 무단조퇴하기도 했다. 내 출석부가 사선으로 지저분해져도 모임원들이 나를 퇴학시키지는 않았다.


모임을 정리하고 나서 어떠한 금단현상도 겪지 않았다. 모임을 떠나보낸 자리에는 오롯이 '내 시간'이 둥지를 틀었다.  술 취한 눈에 비쳤던 욕망의 네온사인이 아름다운 야경으로 다시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야경을 보면서 나는 아내와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함께 산책하고 함께 카페를 찾았다. 그리고 하루 동안의 얘기를 함께 나눴다. 아내의 취침 시간 이후에 들어와서 기상 시간 전에 몰래 출근했던 긴장감 넘치던 삶도 더는 살지 않아도 되었다. 아내가 자고 있을 때 들어와서 깨기 전에 나갔으니 나는 아내를 전혀 괴롭힌 적이 없다는 썰렁한 농담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경제적 여유와 취미 생활은 덤이었다. 모임으로 날아갔던 나의 아까운 지폐들이 고스란히 지갑에 쌓여갔다. 그리고 이렇게 침대에 기대어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적, 정신적인 여유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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