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
어디를 가든 예쁨 받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살펴보면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들이다.
웃으면서 인사성이 밝고 분위기 파악을 잘한다.
가끔 상황파악 못하고 오버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디를 가도 환영받지 못한다.
사람이 들었을 때 기분 나빠할 말은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미인대회 나가는 사람 앞에서 "나는 이제껏 살면서 미인대회 나간 사람 중에서 단 한 번도 예쁜 사람 본 적 없어. 다들 키만 크지 얼굴은 안 예뻐, 정말 평범하지. 본인들도 알아. 안 예쁘다는 거. 요즘은 안 예쁜 애들이 나가더라. 화장하면 정말 달라질 뿐이지, 사실은 못생겼어. 맨얼굴 보면 징그럽게 성형수술을 과도하게 했어. 근데 또 그런 사람들이 화장을 잘해서 화장 후에는 완전 다른 사람 되어 있어. 안 예쁜 애들이 1등 하더라, 그러니 예쁜 애들이 안 나가지."
이렇게 말하면 아무리 그게 사실이라 해도 기분이 좋지 않을 거다.
솔직한 게 좋은 거라면서 상대에게 기분 나쁜 말도 쑥쑥 내뱉는 사람은 자랑한다.
상대에게 기분 좋으라고 없는 말로 괜히 띄어주는 거 싫고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말하는 거라고 한다.
물론 안 예쁜 데 예쁘다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겠다. 무조건 띄어주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없는 칭찬을 한다든가, 너무 오버하는 칭찬을 하게 되면 상대도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적절히 예쁜 말로 칭찬하라는 거다.
"잘 준비해서 좋을 결과 있기를 바래" 웃는 얼굴로 이 정도만 하면 좋겠다.
한마디로 상대가 누가 됐든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거다.
가까워졌다고 연장자한테 "야"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태도만 봐도 못 배운 사람이 확실하다는 걸 여지없이 보여준다.
없는 사람 욕을 실컷 하고서는 "개랑 어울리면 너도 쓰레기 된다"
듣는 사람은 싸다구 날릴 준비 할지 모른다.
말을 함부로 하기에 괘씸하다.
험악한 말과 상대를 연결시키면 상당히 불쾌하다.
그런 경우는 이렇게 말하면 된다.
"개랑 어울리면 너도 이미지 안 좋아질 거야"
또한 배려와 감사함과 공감능력이 있다.
여행 후 SNS에 보란 듯이 다 같이 찍은 사진을 올리고 싶다면 모두에게 허락을 구하고 동의를 얻은 후에 올려야 한다. 사진 공유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당사자에게는 민감할 수 있다.
공개하는 걸 꺼려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기억하자.
작은 배려가 큰 관계와 미래를 지켜준다.
누군가에게 옷을 빌렸다면 드라이클리닝을 한 후 더 나은 상태로 되돌려 주어야 한다.
입에 댄 젓가락으로 다같이 먹는 음식을 비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 기겁한다.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는다면 반드시 상대에게 알려야 한다. 특히 다른 사람과 동행하면서 운전할 경우 내비게이션 활동 중 전화 오면 블루투스로 연결되는 데 받자마자 알리는 게 상대에게 예의다. 상대의 말은 보호되어야 할 권리가 있다. "사람 태우고 운전 중이라 블루투스야" 한마디면 된다. 안 그럴 경우 무안해진다.
작은 상황에서 신뢰가 쌓이거나 금방 무너지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
타인의 메시지는 (사진, 이메일, 문자, 카톡) 보여줄 수 없는 사생활이다.
허락 없는 공개는 신뢰를 파괴한다.
원수지간이 아니라면 지금 만나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당신이기에 당신을 믿고 말했을, 사적인 것들을 공유하지 말자.
한때 지내면서 알게 된 사람의 사적인 걸 공유하는 순간 신뢰가 깨진다. 한번 깨진 신뢰는 다시는 얻기 힘들다. 말이란건 늦게라도 떠돌아 전해지기 마련이다.
책임질 행동을 했다면 반드시 책임을 지려고 해야 한다.
같이 일하자고 사람들을 끌어 모았으면 잘돼든 안 되든, 일이 끝났을 때에는 상대가 수고한 것에 대한 감사함을 전달해야 하고
생각보다 안 좋은 결과로 상대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이유 불문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정성 어린 보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뒷말 나오지 않게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 짓는 것도 책임감에서 나온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마무리도 후하게 처리할 줄 안다.
공공장소에서 함부로 소리 지르거나 화가 나도 감정을 통제할 줄 안다.
회사는 개인의 놀이터도 집도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데로 마구 행동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화가 나는 일이 있다면 조용히 불러 둘이 얘기하고 해결 본다.
자꾸 가르치려고 하는 스승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을 뽐내려고 한다.
자신의 가르침을 받고 "그게 옳은 말이었구나" 상대가 안후, 칭찬받고 싶으니 자꾸 참견하고 훈계한다.
상대가 멘토 역할을 자처하며 상황을 깊숙히 물어보거나 조언해주려고 할때, 반응을 안보이면 이사람은 내속안이 아니구나 깨닫고 체념한다. 만약 고민있다고 멘토 역할을 받아주게 되면 자기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때부터 함부로 지적비판을 해댄다.
"다 너를 위해서야"
"네가 감성적인 사람이라서 그래"
"네가 예민한 거야"
"개인적인 감정은 없어"
이런 말은 듣기만 해도 대충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된다.
그런 말을 자꾸 한다는 건 누군가에게 싫어하는 행동을 한 게 틀림없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자신도 틀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상대에게 어떤 이성이 좋냐고 물으면, 성품이 좋은 사람이 좋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는 너는 성품이 좋으냐? 네가 좋아야지 좋은 성품을 만나는 거지, 다 끼리끼리 만나는 거야"
묻는 말에 대답한 것뿐인데 지적 비판이 들어간다.
성품이 좋은 사람이 좋다고 하면 "그렇구나" 하고 고개만 끄덕이면 된다. 굳이 거기서 꼬을 필요가 없다.
무슨 말을 하면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몇 번씩 꼬아서 듣는 사람이 있다.
자꾸 의심하려 하고 뒷조사하고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인다면 상당히 기분 나쁘다.
가정 교욱을 잘 받은 사람 즉 가정이 화목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인다.
예쁨 받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고 있다.
자신의 인생이 소중하기에 타인의 인생도 소중하다는 걸 잘 안다.
결국 가정교육이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보여주기에, 집에서 배운 자그마한 습관들이 쌓여 사회에서 빛나는 품격이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