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의 관계
내가 많이 받았던 사람 즉 나에게 무언가 계속적으로 많이 주었던 사람이 생각난다.
나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베풀었던 사람이 갑이다.
나에게 주었던 사람이 갑이 되는 거다.
내가 잘 못해주었더라면 나는 어느 순간 을이 되어 미련이 남는다.
미련이 남게 된다는 건 내가 그에게 잘 못해주어서 그렇다.
내 모든 걸 다 해주었더라면 나는 더 이상 그 사람에게서 미련이 없다. 오히려 그 사람 앞에서 기세등등 자신만만할 뿐이다.
한마디로 관계에서는 잘해준 사람이 이기는 거다.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 잘해주었던 사람, 내가 짜증 낼 때도 받아주며 나를 사랑해 주었던 사람, 내 편이 되어서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려고 노력했던 사람, 나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존재로 여겼던 사람은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승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관계에서는 지금은 모르지만, 잘해주었던 사람이 상대의 기억 속에 평생 남아 존재한다.
그것도 "멋진 사람"으로 평생 남아 기억 속에서 맴돈다.
그래서 주위 사람한테 잘해야 한다.
지금은 몰라도 세월이 10년이 흘러서든 20년이 흘러서든 문득 그 사람이 기억 속에 떠오르는 순간부터는 그는 내 인생의 갑이 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참으로 값진 일이다.
그만큼 누군가를 쉽게 사랑할 수 없다.
너를 그만큼 좋아했다면 너는 축복받은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더라면 불행일지 모르나.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본다.
이제는 깨달았으니 꼭 그 사람에게가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더없이 잘해주면 된다.
너를 좋아하기는 힘들다. 한 사람을 좋아할 수 있다는 건 인연이다.
사랑을 받기는 힘이 드는 거다. 어떤 누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데 쉽게 잘 대해주겠는가.
그럴 일은 절대 없다. 그만큼 흔하지 않다 이 말이다.
좋아하는 누군가 있다면 너의 모든 정성을 다해서 잘해주자.
지금은 너의 마음을 모를지라도 나중에는 반드시 알게 된다.
그 사람 마음속에 너는 갑으로 존재하는 날이 오고야 만다.
그러니 계속 원 없이 잘해주자.
후회 없이 말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Risk is better than regret"처럼 후회하는 것보다는 일단 잡고 보자는 마음에 무조건 직진하는 건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굉장한 위험을 감수해야 할 거다.
그런 생각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위험이 따른다. 왜냐하면 상대는 바라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베풀어라" "잘해주어라" "이해해 주어라" 하는 건 Only 상대방도 괜찮아할 때를 말하는 거다.
사귀고 있는 커플이라든지 친구든 이웃이든 가족 친척이든 어떤 지인이든지 말이다.
살아가면서 인간관계란 건 영원히 남는다.
한때 사이좋았어도 영원할 수는 없을지언정 영원히 기억 속에 남아 좋은 사람으로 기억된다.
한번 손절한 관계는 다시는 어울리지 않는 법이다.
그만큼 손절했다는 것은 상대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을 만들지 말라는 이야기다.
어떤 이유더라도 상대가 자기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면 무조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하는 게 현명하다.
"난 잘못한 게 없어 너 혼자 오해한 거야 그러니 사과할 필요가 없어"하면서 도리어 기분 나쁘게 끝을 맺는 사람은 참으로 모자란 사람이다.
인간은 다시는 안 부딪힐 것 같아도 알게 모르게 부딪힐 일이 생긴다.
그때 나에게 고마웠던 인연이었으면 좀 더 신경 써주는 건 인간으로서 어찌 보면 당연한 처사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는 건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는 거다.
반면에 나한테 심하게 상처 주었던 사람과 관계된 사람을 알게 되면 인간이기에 사람이기에 좋게 보게 되지 않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예전에 나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었으면서 자기 생각하기에 별것 아닌 것 같으니 오히려 안 좋게 마무리 한 막돼먹은 사람이 있었다.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그녀의 아들이 의대 들어갔다고 온갖 자랑을 했었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남편의 제자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학교는 공정하기에 별 탈은 없을 수 있다.
딱 한마디만 했다. 삐딱한 사람의 아들이라고.
첫인상이 썩 좋지는 않을 수 있다는 거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쁜 사람 같으면 그걸 끄집어내서 사건화 시킬 수도 있겠지만 나도 학교에 있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그러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람의 생각이라는 게 아무래도 전달이 되지 않을까.
내가 그 일에 대해 말할 때 나의 심장 소리와 나의 눈썹 하나하나에 전달되는 "기"의 흐름 말이다.
말하면서 흘러나오는 "기" 전류는 무시할 수 없이 어마어마하게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분위기를 잘 파악하는 사람이 좋다.
보통, 사람들은 다 자기가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나쁘다고 무례하다고 모자라다고 분위기 파악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보통 본인은 모르고 주위 사람들은 안다.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는 것도 괜찮다.
분위기가 좋게 흘러가고 있는 데 갑자기 자기가 못한 말이 있다고 다 해버려서 그 좋았던 분위기가 금세 험악해지는 경우가 있다.
상황 파악이 안 되고 눈치가 없는 사람들이 난 정말로 싫다.
누구는 좋아서 네가 마음에 들어서 앉아 있는 가.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마음속 깊은 곳 까지 꾹꾹 누르면서 이번 모임만 지나면 다시는 볼일 없을 거니 상대가 그동안 추태를 부렸어도 분위기 맞춰주려고 앉아 있는 거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 끝까지 마지막 시간인데도 계속 반복되는 짜증과 불만 잔소리를 해대면 어떤 사람은 폭발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화내기 싫으니 진짜 끝까지 참자 하고 이 시간 이후로 차단해 버린다.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다. 하고 싶은 말도 때를 가려서 안 하는 게 낫지 싶을 때는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매 시간마다 싫은 소리를 해대는 사람은 잘 못 배워먹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사는 가정도 알만하다.
부부끼리 얼마나 싸울까.
자녀들은 또 얼마나 힘들어할까.
듣기 싫은 비판을 계속한다는 건 똑똑한 게 아니라 불필요한 말인 경우가 훨씬 많다.
오늘이 마지막 시간이라면 비판보다는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게 사회생활 많이 해본 사람으로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처사일 거다.
주위 사람들이 착한 걸 알고 계속 깐죽 깐죽 나불대는 사람은 언젠간 큰 코를 다치고야 만다.
사회생활을 오랫동안 해본 나는 그런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한마디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일이다.
사자가 얌전한 것 같으니 코털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말이 많다. 즉 심기를 건드린다.
참다 참다못한 사자는 크게 "어흥"하며 손이 날아간다.
웬만하면 작은 것들과 싸우고 싶지 않은 것이기에 느긋하게 인내를 하며 분위기를 맞춰주는 데 결코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은 꼭 화를 당한다.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다.
나의 성질을 돋구는 사람은 내 인연이 아니다.
반면에 나를 애견녀로 만들어 주는 사람, 같이 있으면 저절로 나는 애견녀가 된다.
그 사람이 나의 똑똑한 인연이다.
인간관계는 차분하고 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멀리 할 수밖에 없다.
자기가 한 번이라도 차단을 당해본 사람은 한 번쯤은 자신을 생각해봐야 한다.
자신은 해야 할 말을 한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보통 본인만의 생각일 때가 많다.
필요하지 않은 자신만의 생각의 비판적인 언어다.
자격증 반을 들은 수강생들한테 강사는 겨우 3번 교육하고 실습하라고 하면 당연히 학생들은 어떻게 하냐고 못한다고 말하는 게 정상이다. 거기다 대고 왜 못하냐 다른 반은 잘한다 왜 너네만 못하냐 한다면 프로 강사가 아니다.
사람은 다 다르다. 다른 반에 100명도 아닌 겨우 2명과 이 반 2명을 비교질 하며 다그치는 건 자질이 없는 강사다.
어디까지나 강사가 못 가르쳐서 못하는 거다.
학생은 다 다르기에 학생이 할 수 있게끔 이끌어주는 게 강사의 역할이다.
교과서대로 다 함께 읽었는 데 저 반은 그대로 잘하는 데 왜 이 반은 못하냐는, 말이 되지를 않는다.
필요한 게 무엇인지 파악해서 할 수 있게끔 인도하는 것까지가 리더의 역할이다.
똑같이 가르쳤는 데 두 명은 잘하는 데 또 다른 두 명을 못한다고 한심해하고 바보 취급한다는 건 하등급 강사일 뿐이다.
그러면서 마지막 수업날까지 "하여튼 이반은 아주 이상해"하며 짜증 낸다는 건 학생들을 아주 질릴 때로 질리게 만드는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강사다.
마지막 날까지 강사가 저런 태도라면 그동안 학생들은 얼마나 힘들었을 까.
마지막까지 기분 나쁨을 표현한다면 학생들이 그 시간에 달라질까, 변화될 수 없는 건 어느정도 선에서 마무리 해야 한다.
강사가 지녀야 할 그 어떤 티칭실력과 태도, 학생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전혀 없으니 그런 곳에는 사람이 붐빌 수가 없는 게 당연하다.
많은 경험을 해 본 후 노하우를 쌓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기는 잘 가르쳤는데 학생들이 이상하다고 우긴다면 그건 정말로 잘못된 리더다.
강사는 학생들의 실력으로 증명되는 거지, 학생들이 이상해서 못한다는 거는 말이 되지를 않는다.
리더도 잘 만나야 한다. 그래서 줄을 잘 서야 하는 건 엄청난 운이다.
사랑도 능력도 단순히 감정 노동이 아니란 얘기다.
사랑을 할 수 있게끔, 실력을 가질 수 있게끔 실제적인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연인이든 친구든 강사와 수강생 사이든 말이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다면 뒤돌아 가야 하는 것도 인간관계의 도리다.
후회보다는 위험을 감수하겠다란 생각으로 무조건 직진하기만 한다면 크나큰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모든 관계는 이같은 요소를 갖추어야 건강한 관계로 성장할 수 있다.
배려가 주어져야 한다.
상대가 행복할 수 있도록 돌봐주어야 한다.
책임이 주어져야 한다.
상대의 미래를 위해 안전하게 돌봐야 한다.
존경이 주어져야 하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어야 관계가 성립된다.
이해심이 있어야 한다.
상대를 내 맘과 몸같이 깊이 알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사랑은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상대의 연약함을 배려해 주고 함께 할 수 있도록 책임감 있게 이끄는 관계가 아니고서는 그 어떤 관계도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없다.
그렇게 하기까지는 상대에게 집중하려는 의지와 인내와 겸손 그리고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그릇의 수양이 필수적이다.
자신이 성장하지 못하면 너무나도 당연히 상대를 이끌고 배려하고 사랑할 수 없다.
그렇게 무책임한 관계는 결국 파멸로 끝을 맺는다.
어떠한 관계든 줄 수 있어야만 성장한다.
받기만 한다면 결국 행복하지 않다.
사랑의 완성은 "줄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