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야

무조건 끊어

by belong 빌롱

선 넘는 사람은 한두 번까지 봐줄 수 있지 않을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빨리 손절하는 게 맞다.

봐줄 필요가 없다.

갱생은 안 될까?

다른 데서 갱생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안된다.

한 번 그렇게 만들어진 관계는 바뀌지 않는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그 사람한테 빨리 내 관심과 에너지를 끊어 내는 게 낫다.

나를 보호해야 한다.

그 사람 옆에 있는 게 내 삶에 도움이 된다면 어떨까?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내 삶에 도움이 되면서 마음 상하는 것과 도움은 덜 되어도 내 마음을 내가 지키는 것이다.

결국은 그런 사람한테 도움 받는 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만큼, 내 마음의 상처가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관계는 그다음이고 나를 지키는 게 먼저다.

안 볼 수 없는 관계 예를 들어 직장 상사라든가, 그렇다면 최대한 가까이 가지 않고 무조건 피하는 게 답이다.

업무적으로만 대하자.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그렇게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라 이길 수 없다.

그 사람은 나처럼 사람을 대하지 않고 살아왔기에 피하는 게 답이다.

아무리 좋으려고 해도 새로운 습관과 패턴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모든 사람은 제각기 그전 살아온 습관을 기준으로 갖고 살고 있다.

아무리 좋은 행동을 하려 해도 아무리 좋은 사람으로 내비치려 해도 기존에 살던 자기 패턴이 있기에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

자기의 살던 패턴을 기준으로 살아가기에 자기가 상대의 선을 넘었다는 것 자체를 모를 수 있다.

강력한 삶의 개선 의지가 없는 한 바뀌는 데는 어색하고 두렵다.

지인의 일을 도와주었는 데 오히려 면박당했다고 해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해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꼭 붙잡기를 바란다.

그런 사람은 상대에 대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는 데 사과를 하므로 관계의 평화를 원한 것이다.

은중과 상연이 그런 사이다.

상연은 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부터 가난한 은중을 질투시기했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서 반가웠지만 상연은 더 이상 넉넉한 집안에서 티 없이 자라던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오빠의 죽음 이후 교사였던 어머니는 학교에서 쫓겨나 교직을 그만두었으며, 집은 폭삭 망하고 부모님은 이혼했다. 화장실이 두 개였던 옛집과 다르게 화장실도 없는 집에 세 들어 사는 상연의 모습을 본 은중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상연은 어른이 되어서도 단 한 번도 은중을 이겨보지를 못했다. 심지어 짝사랑하는 선배 상학 오빠까지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상연을 무시하고 은중을 사랑했다. 상연이 은중에게 울부짖으며 말한다. "너는 모든 걸 다 가졌잖아,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어. 제발 상학오빠만은 사귀지 말아 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제발 부탁이야. 상학 오빠 만나지 마 제발"

초등학생 때부터 좋아하지만 미워하는 감정이 있는 그런 얽히고설킨 친구 사이다.

더 나아가서 상연은 은중이 기획한 영화까지도 가로채 버린다.

"네가 멀쩡한 게 싫어"라는 상연의 말은 어쩌면 자신을 향한 처절한 절규일지 모른다.

세월이 흘러 상연은 느닷없이 은중을 찾아와 자기 말기암 걸렸다고 스위스에 안락사 센터에 같이 가주기를 부탁한다. 결혼도 잘하고 크게 성공하고 그런 좋은 일 있을 때는 소식 끊고 살다가 이제 죽을 때가 되니 찾아와 자기에게 그런 잔인한 부탁을 하는 상연이 이해가 안 간다며 거절한다.

"너 남편 있잖아, 왜 갑자기 찾아와 내게 그런 부탁을 하니?"

알고 보니 상연은 남편이랑 이혼하고 엄마도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녀 주위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았다.

다시 예전처럼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상연의 말, 너무 이기적이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년이다.

과연 이 상황이 우정일까?

참되고 진실된 우정? 그동안 도와주려는 은중을 내치고 도리어 나쁜 짓까지 하고 떠났다.

기쁘고 좋은 삶을 살 때는 연락 끊고 살다가 이제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 염치 불고하고 찾아와 다시 친구가 되고 싶다고? 거기다 마지막 생을 마감할 때 함께 있고 싶다는 바램까지..

자신의 죽음을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녀 자신에게는 외롭지 않고 위안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은중에게는 앞으로의 삶에 커다한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크나큰 짐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이 상황을 진한 참된 우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을 때는 소식 끊고 살다가 이제 아쉬우니 자기 죽는다며 소원 들어 달라고 우정을 운운하며 애원한다는 건

끝까지 나쁜 년 맞다.

상연은 빌딩을 은중에게 상속하고자 하는 데 은중은 거절한다. 상연의 남은 가족인 아버지는 평생 빚쟁이한테 시달려 자신을 괴롭혀왔는 데 그런 그한테 남기느니 자신이 못할 짓했던 그동안 미안했던 친구에게 남기는 것이 당연하다.

한 미디로 상연에게 남은 사람은 은중 밖에 없었다.

착한 은중은 끝내 상연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스위스로 떠나 그녀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해주었다.

상연에게는 은중이 소중한 친구지만 은중에게는 어떨까.


이 둘은 어릴 때부터 서로를 야금야금 채워주고 성장시켜 주었던 사이다. 서로를 긁어대기도 하지만, 깊이 위해 주기도 한다. 서로에게서 각자의 결핍을 보며 자신이 가진 것을 초라하게 여긴다. 질투와 부러움..

참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다.


인간적인 건 무엇일까.

은중과 상연.. 둘 다 인간이라서 가능했었던 마지막 선택이었을 까.

잘 살 때는 필요 없는 친구, 아쉬울 때 필요해서 찾은 친구.

상연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평생 찾지 않았을 친구 은중.

나라면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소원은 들어주지 않았으리라는 게 지극히 솔직한 마음이다.




배우자감도 지인도 친구도 누구도, 귀한 손님처럼 자기를 대하지 않는다면 나랑 맞는 사람이 아니기에 손절하는 편이 나의 인생을 위해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나쁜 사람, 끝까지 나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Move on

Not everyone is worth fix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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