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나는 손재주가 없었다. 학교에선 미술시간이 제일 싫었다. 초등학교 1학년 미술수업 시간이 발단이었다. 스케치를 한 뒤 크레파스로 색을 칠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불호령이 떨어졌다. 왜 이 색으로 칠하느냐고 선생님은 날 꾸짖었다. 색칠을 잘못했다는 이유만으로 혼났던 게 서러웠다. 그때부터 미술시간이 싫어졌다.
끔찍했던 미술시간은 내게 손재주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손재주가 없다는 메타인지는 확실하다. 그러다 보니 살면서 손재주를 요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 도움이 필요하다. 손재주가 없는 내게 손을 내밀어준 구세주는 아내다. 아내는 나와 달리 손이 야무지다. 아내의 손이 생활 집안 곳곳에 닿아있다.
아내는 기본적인 망치질부터 블라인드, 커튼 설치 작업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허드렛일은 수월하게 해낸다. 나 혼자 시도하다가 안 되는 연장질이 있으면 아내가 종종 마무리를 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괜히 머쓱해졌다. 오기로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의욕만 앞섰다. 이제는 수긍했다. 허드렛일은 아내가 나보다 낫다는 사실을.
야무진 손을 가진 아내에게 감사해 왔는데, 요즘 들어 미안한 경우가 많았다. 처가로 들어오면서 너무 많은 허드렛일을 해야 됐기 때문이다. 올해 3월 출산 이후 아내가 회복한 뒤 처가로 들어오기 위해 이사를 하려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지난 12월에 서둘러 이사를 했다. 뜻하지 않게 임신 7개월 차 아내는 무지막지한 허드렛일을 감당하게 됐다.
살림이 있던 집에 살림을 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처가에서 쓰던 각종 가전 가구를 덜어내고, 그 자리를 신혼집에서 쓰던 것들로 채웠다. 곧 태어날 아기짐부터 우리 부부의 짐까지 들일라 하니 공간이 남질 않았다. 결국 처갓집에 팬트리와 부엌 수납장을 새로 구성하는 부분 리모델링을 하게 됐다.
어찌어찌 새롭게 단장한 처갓집과 우리 신혼집의 합가를 작년 12월 말에 이르러 마쳤지만, 본격적인 일은 이사 이후부터였다. 포장이사를 했지만 우리 부부가 갖고 온 짐 대부분을 넣어둘 데가 없다 보니 온 집안이 박스에 싸인 짐으로 그득했다. 이걸 언제 다 정리하나 싶어 한숨이 나왔다. 다행히도 장모님과 아내의 진두지휘 아래 집은 제 모습을 찾아갔다.
짐정리를 마치자 세부적인 허드렛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커튼과 블라인드, 그리고 조명 설치였다. 만삭인 아내에게 천장에 나사 박는 일까진 시킬 수 없다는 의무감 덕분인지 예전보단 작업 결과물이 준수했다. 베란다 조명등 설치만 빼고 말이다. 브라켓을 잘못 박았는지 전동드릴을 써도 나사가 들어가질 않았다. 결국 아내가 나서서 드릴질을 했다. 의자를 딛고 올라서있는 아내를 지탱해 주기 위해 있는 힘껏 아내의 다리를 붙들고 하염없이 위를 쳐다봤다. 안타깝게도 조명 갓은 제대로 고정이 안된 채로 작업을 마무리했다.
처가살이를 시작하며 치른 한 달여간의 대분투는 마무리됐다. 그 사이 아내의 배는 더욱 볼록해졌고, 나는 점차 데릴사위로서의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 아마 한동안은 아내가 허드렛일을 할 상황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오지 말아야만 한다. 손재주가 없는 남편을 만나 만삭에도 전동드릴을 쥐어야만 했던 아내는 내게 원더우먼이다. 이제는 원더우먼 히어로직에선 잠시 은퇴하고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아내를 위해서 난 훌륭한 사이드킥*이 되어야만 한다. 손재주보다는 다른 재주를 활용해서 말이다.
*사이드킥 : '조수'라는 뜻을 가진 영단어로 주로 슈퍼히어로 장르의 작품에서 많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