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예정일보다 10일 빠른 날짜로 유도분만일을 잡았다. 분만일 당일 아침 일찍 병원에 입원했다. 아내는 환복 후 유도분만 촉진제를 맞았다. 촉진제를 맞고서 8시간의 기다림에도 아내의 뱃속은 고요했다. 아내는 아랫배가 싸르르 아프다 했다. 의사 선생님께선 그 정도론 분만이 어렵다며 우리에게 용단(勇斷)을 권했다. 오래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산모, 태아 모두에게 좋지 않다 했다. 조금 더 기다려보는 대신, 우리 부부는 제왕절개를 하기로 결정했다. 결정 후 절차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병실로 간호사들이 들어와 제반 준비를 마쳤고, 마취과 선생님께서 수술과 관련된 내용을 일러주었고, 나는 아내를 대신해 수술에 대한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담당 주치의가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내게 아이는 5~10분 후면 나온다고 알려줬다. 거짓말 같았다. 그렇게 빨리 나온다고? 하지만 거짓말이 아니었다. 주치의가 들어간 지 5분 정도 지났을까. 불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아기의 울음소리가 와락 들려왔다. 산모 보호자를 부르는 간호사의 호출에 벌떡 일어나 아기를 만났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팔다리를 휘저으며 힘차게 울고 있었다. 옆에서 신생아실 선생님이 빠른 속도로 뭐라 말씀하셨지만, 아기의 첫 순간을 눈과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느라 들리지 않았다. 가슴이 쿵쾅댔다. 30초 채 남짓한 시간의 짧은 첫 만남은 덜컥 끝나버렸다.
아기가 신생아실로 올라간 뒤 회복실에 누워있는 아내를 만났다. 난 아내에게 고생했다 말을 건넸고, 아내는 내게 아이가 건강하냐, 이쁘냐고 물어봐 그렇다고 답했다. 아내도 나도 잠시간 눈물을 흘렸다. 난 아내의 다리를 주무르며 아내에게 이제 진짜 엄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줬고, 나 스스로에겐 진짜 아빠가 됐다는 걸 인지시켰다. 아기는 체온 유지를 위해 2시간 정도 인큐베이터 안에 있다가 우리 곁을 찾아왔다. 바퀴가 달린 원목 아기침대에는 하늘색 천이 뒤덮여 있었다. 천을 걷어낸 침대에는 아기가 누워있었다. 배냇머리는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병실침대에 누워있는 아내 곁에 아기가 살포시 누웠다. 아내와 아기는 첫인사를 반갑게 나누었다.
병원 입원 기간 동안에는 오전, 저녁 총 두 번 면회가 가능했다. 아기가 태어난 날 당일 저녁, 양가 부모님께 영상통화를 걸었다. 태어난 지 4시간 밖에 안된 새 생명에게 자그마한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할머니, 할아버지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기와 첫인사를 나누고서 7일이 훌쩍 흘렀다. 7일 간 아이와 아내의 곁을 지키며 새로운 생명은 내게 많은 걸 일러주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며 여기저기 부은 아내는 3시간마다 유축을 위해 새벽에도 일어난다. 위잉 위잉 유축기가 내는 무미건조한 기계음에는 숭고함이 담겨있다. 모유 수유를 위한 몸으로 변화하며 아내는 젖몸살이 오기 시작했다. 이제 고통의 시작이라며 걱정하는 아내를 보며, 엄마들 모두가 이런 과정을 거치며 아이를 키워냈다는 사실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출산 후 아내는 다행히도 회복이 생각보다 빨라 하루 일찍 퇴원해 조리원으로 들어왔다. 아기는 시시각각 자라나고 있으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바로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다. 분유를 먹은 지 이제 곧 3시간이 돼 간다. 칭얼거리며 깰 때가 임박했다. 아내는 마사지에 갔기 때문에 아기가 깬다면 내가 분유를 먹여야 한다. 적당한 온도로 분유를 중탕하고, 아기의 머리를 받치고 알맞은 각도로 아기를 안아야만 한다. 분유를 다 먹이고선 내 가슴팍에 아기를 받치고서 적당한 강도로 등을 두들겨줘야 한다. 오늘 오후엔 처음으로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입히는 데 성공했다. 살면서 가장 많은 '처음'을 겪은 7일이었다. 앞으로 아기와 함께할 모든 처음이 더 많이 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