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초보라는 단어가 날 수식하는 경우가 있다. 아바타를 생성하고 조작법을 알음알음 배워가던 게임 초보, 도로에서 클락션과 쌍라이트 세례를 받는 초보운전, 소문 듣고 주식을 샀다가 계좌가 온통 새파래진 주식초보 등. 어느 분야든 초보를 벗어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들여 기술을 익히고, 노하우를 터득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잘하게 되고 초보 티를 벗게 된다. 여태 경험했던 초보시절들은 그러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맞닥뜨린 ‘초보아빠’는 여태껏 겪어왔던 어떤 초보들과 차원이 다른 느낌이다. 초보아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영 쉽지 않을 것 같다. 안기, 재우기, 씻기기. 세음절도 안 되는 단어가 얼마나 어려운 지 요즘 호되게 깨우치고 있다.
1. 안기
아기가 태어나고 38일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조그맣게 태어났던 아기는 그사이 쑥쑥 자라났다. 태어날 때보다 1kg 정도 체중이 늘어 안았을 때 제법 묵직해졌고, 눈에 초점이 맞기 시작했는지 허공과 나를 빤히 쳐다보곤 한다. 호수처럼 잔잔한 눈동자를 바라보면 내 마음속엔 평화가 일렁인다. 하지만 그 평화는 잠시 스쳐 지나가기 일쑤다. 내가 안는 자세가 불편한지 내게 안기면 높은 확률로 아기는 뿌앵거린다. 아내의 조언에 따라 말도 걸어보고, 안는 자세도 바꿔보지만 쉽사리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 신생아는 배고플 때, 잠 올 때, 배변했을 때 정도 운다길래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빠에게 육아가 그리 쉬운 줄 알았냐고 혼내기라도 하는 듯 내게 안긴 아기는 대차게도 울어댄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초보엄마인 아내도 나보다 낫긴 해도 월등한 안기 스킬을 가지지 않다는 점이다. 초보엄마 초보아빠 선에서 해결이 안 되면 장모님께서 나선다. 자기한테 맞는 고급 매트리스에 눕기라도 한 듯 아기는 장모님 품에 안기면 금세 뚝 울음을 그친다. 우리 둘 다 그 모습을 보며 분명 똑같이 안는데 왜 그럴까 고민해 본다. 손의 위치, 안는 각도 등을 장모님처럼 따라 해봐도 시늉에 불과하다. 어머님과 똑같은 레시피로 음식을 해도 맛의 깊이가 달라지는 게 '손맛' 차이라면, 안는 데도 '품맛'이 있는 걸까 싶다. 아기 안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2. 재우기
아기를 재우는 건 안기에서 이어지는 연속동작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일단 아기가 편안히 안겨야 잠이 든다. 조리원 퇴소하기 3-4일 전부터 품맛을 봐버린 탓인지 안고 있을 땐 잠들어 있다가도 아기침대에 내려놓으면 이내 울음을 터뜨릴 때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 아기는 (아직까진) 순하다고 믿고 있다. 조리원 퇴소 후 열흘 간 아기를 봐주신 산후도우미 선생님은 우리 아기가 너무 순해서 자기가 할 게 없다고 하셨다. 다른 아기들이 어떤지 모르겠으나 10년 경력이시니 믿을 만하다 생각했다. 아기는 도우미 선생님 말대로 순한 편인 것 같다. 밤에 제법 잠을 잘 드는 편이다. 장모님께서 아기를 안아서 재워야 하는 게 단 한 가지 전제조건일 뿐.
엊그제는 아기 B형 간염 2차 접종을 맞고 왔다. 주사 맞을 때만 뿌앵거리고 금세 얌전해져 안심도 되고 기특했지만, 아기는 접종 후 이틀 밤 내내 잠드는 데 무척 애를 먹었다. 평소와 달리 장모님 품에서도 엄청 칭얼댔다. 두 시간 넘게 칭얼거리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아내와 난 어쩔 도리도 없이 그저 장모님께서 아기를 달래서 재울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나와 아내 둘이서였으면 밤새 잠들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3. 씻기기
안기보다 의외로 수월한 건 씻기기다. 조리원 퇴소 후 뭣도 모른 채로 할 때보단 일취월장했다. 조리원 퇴소일 당일 우리는 아기를 물온도에 적응도 안 시키고서 옷을 벗겨 냅다 욕조에 담가 물을 묻혀 씻겼다. 그러자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아기를 달래 봤지만 소용없었다. 등줄기에 땀이 났다.
우당탕탕 첫 목욕 이후 산후도우미 선생님의 목욕 교육을 습득한 아내는 제법 씻기기에 능숙해졌다.
가제 손수건, 목욕타월, 새로 갈아입힐 옷을 미리 세팅해 두고
머리-얼굴-다리-몸 순서대로 씻긴 뒤,
목욕타월로 감싸 체온을 유지한 채 새 옷과 기저귀를 입힌다.
이 과정들 하나하나가 어긋나지 않아야 아기가 편안히 목욕을 즐길 수 있다. 요 근래엔 이 과정들이 조금은 익숙해져 순조로웠다. 아기는 욕조 안에서 제법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목욕을 한다. 그러다 오늘 저녁 목욕땐 깜빡하고 새 옷을 세팅해두지 않았다. 목욕을 마치고서 목욕타월에 쌓인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 난 아기를 눕힌 뒤 허겁지겁 수납장에 새 옷을 꺼내 입혀 겨우 진정시키고 분유를 타 먹이며 미안함을 달래야만 했다.
안기, 씻기기, 재우기. 이 간단한 동사들에 수반되는 스킬과 과정들은 쉽지 않다는 걸 절절히 깨달아가는 요즘이다. 알파벳과 사물 그림이 그려진 표를 보며 단어를 익혀가던 어린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온몸으로 배워나가기 때문이다. 아기가 크면서 내가 배우고 익혀야 할 동사들은 더 늘어날 것이다. 새로운 동사들을 몸에 익히고 능숙해지면 언젠간 ‘초보아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닐 것 같다. 아빠의 영역에서 초보든 고수든 구별 짓는 건 중요치 않을지도 모르겠다(라고 위로를 삼아 본다). 누구든지 부모라면 서툴더라도 아기를 위한 마음만큼은 진심이니까. 그 마음이 아기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반복과 연습만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