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예뻐서,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by 이진

나는 작년 5월 결혼을 했다.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돌리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친구들, 직장 동료, 후배들, 선배들에 이르기까지 정신없는 릴레이였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동안 못다 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도 주인공은 결혼을 앞둔 새신랑이었기에 내게 집중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혼을 앞두고 모인 자리인 만큼 이와 관련한 이야기로 빼곡했다. 그중에서 빠짐없이 사람들이 내게 던진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뭐야?'

모임을 거듭할 때마다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내게 이 물음을 건넸다. 면접을 보러 가기 전 뽑아 놓은 예상 질문 1순위에 올려놓아도 무방할 정도였다. 나중에는 이 '결혼 결심 썰'을 단톡 방에 300자 이내로 정리해서 올려주겠다고 나는 말했다. 나는 이제 누군가가 위 질문을 남긴다면 이 글을 보여주려 한다. '여기 링크 타고 들어가서 읽어봐. 구독 버튼 누르는 것도 잊지 말고' 구독자 수도 늘리고 이야기할 수고도 덜고 일석이조가 될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약 2년 반 정도 연애를 하고 결혼했다. 첫 만남에 '이상형이다' '이 여자와 꼭 결혼해야지'라는 운명적인 상대는 아니었다. 둘만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서로에 대한 사랑이 두터워지고 결혼에 이르렀다. 확 끓어오르는 주전자처럼 사랑을 하진 않았다. 그래도 모닥불에 땔감을 넣어주듯 내가 결혼을 결심하게끔 지펴준 순간은 분명 존재한다.


한겨울의 문턱에 한껏 가까워진 12월 초엽이었다. 여느 때처럼 출근하여 일을 보던 중 경조사 알람을 받았다. 같은 부서 과장님의 부친상. 발인은 바로 다음날이었고 빈소는 충남 아산. 찾아뵙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 당일만 가능했다. 인천 부평의 사무실에서 퇴근을 한 뒤 바로 출발하면 빈소에 들러 조문하는 시간까지 포함해 4시간 정도는 걸리겠다 싶었다. 퇴근하고 데이트를 하기로 했던 터라 여자 친구(현직 아내)에게 연락을 줬다. 오늘 장례식장에 좀 다녀와야겠다고. 데이트는 미안하지만 다음으로 미루자고.

그녀는 이야기를 듣더니 같이 아산에 가겠다 한다. 나는 그녀의 반응에 적잖이 놀랐다.


'꽤 걸릴 텐데 괜찮겠어?'

'괜찮아~ 오빠랑 같이 가는 건데 뭐. 가면서 이야기도 하고 좋지'


그녀는 그렇게 일면식도 없는 우리 회사 과장님의 빈소에 동행했다. 퇴근 무렵의 중동 IC는 언제나 그랬듯 차들로 만석이었다. 혼자서 이 길을 거쳤다면 아마 조금은 짜증 났을 테고 꽤 피곤했을지 모르겠다. 조수석에 타 있는 여자 친구가 옆에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든든한 동행이 되어주어 짜증과 피곤함은 사르르 녹아 없어졌다. 그녀는 대뜸 내게 말을 꺼낸다.


'뭔가 어렸을 때 아빠랑 드라이브 가는 기분이 들어. 좋다.'


꽉 막힌 고속도로를 통해 장례식장에 가는 길이 그녀 덕분에 평일 저녁 드라이브 코스가 됐다. 제대로 된 표현은 못했지만 그녀에게 무척 고마웠다. 만약 내가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선뜻 같이 가자고 하지 못했을 것이다. '평일 저녁의 드라이브'에 신이 나서 재잘거리는 여자 친구의 손등에 내 손을 포갰다. 차창 한가득 뿜어져 들어오는 노을빛은 12월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참 예뻤다. 라디오에서는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난 운전을 하면서 생각했다. 이 여자와 결혼을 해야겠다고. 우리 둘이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겠다고. 나의 생은 네가 있을 때 빛날 수 있겠구나, 라고.


어느 평일 저녁 노을이 예뻐서, 난 그렇게 결혼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