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그녀

by 이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어렸을 적 엄마의 책장에 꽂혀 있던 강렬한 제목의 책이다.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갔다. 다른 행성에서 온 것처럼 남녀의 '다름'에 대해서 쓴 글이겠구나. 초등학생조차 책 내용이 어떨지 짐작이 갔다. 책의 제목은 이제 내게도 현실로 다가왔다. 결혼 만 1년 차, 화성에서 온 남자 역할을 맡고 있는 남편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주변 사람들에게 둘이 정말 잘 맞는 것 같다 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 편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말이다. 이 정도로 잘 맞을까 싶은 것은 음식 취향이다. 우리 둘 다 딱히 가리는 음식 없이 잘 먹는다. 훌륭한 음식을 만나면 둘 사이의 대화도 줄어들고 먹는 것에 집중한다. 코스요리나 술집이 아닌 이상 대개 음식이 준비되는 시간보다 먹는 시간이 덜 걸리는 편이다. 반주도 좋아한다. 애주가 부부다 보니 반주할 구실을 어디서든 만들어낸다. 날씨가 좋아서, 비가 와서, 운동을 하고 왔으니, 기분도 꿀꿀하니, 목 좀 축일 겸... '금주(禁酒)'는 화성에서나 금성에서나 멀리 떨어진 해왕성 같은 개념이다. 이제 곧 아내가 비염 때문에 한약을 1달 이상 먹어야 하는데 한의사께서는 약 먹는 동안엔 술을 멀리하라 하셨다. 한의사의 말을 듣고 아내는 탄식을 내뱉었고 나도 덩달아 쓴 침을 삼켜야만 했다. 당분간은 나도 '덜' 마셔야겠구나. 걱정이 앞선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우리 부부 둘 다 사람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면서 인간관계도 어느 정도 많이 정리되고 좁아졌지만 아직까지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사이는 깊어졌고, 그들과 보내는 시간은 즐겁다. 아내도 나 못지않게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가장 주된 교류 수단은 바로 '집들이'다. 코로나 시국에 회사도 반 강제로 쉬게 되면서 집에 있는 날이 많아져 집들이를 주로 하게 됐다. 우리 집에도 친구들을 자주 초대하고, 아내도 마찬가지로 그 친구들의 집에 가서 자주 시간을 보내고 온다. 나는 잦은 집들이를 치르는 아내에게 '연쇄집들이마'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우리의 성격은 화성과 금성만큼 떨어져 있다. 나랑은 정반대의 성격이라는 걸 아내를 처음 만난 날부터 알게 됐다. 어느 평일 저녁, 회사 동기 형의 주선으로 아내와 아내 친구, 나, 회사 형 이렇게 넷이 술자리를 가진 게 첫 만남이었다. 아내는 나보다 두 톤 이상 높은 텐션으로 재잘거리며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넸다. '이 친구 텐션이 장난이 아니네' 속으로 생각했다. 평소에 나는 감정 기복이 크지 않고 리액션도 적다. 바다로 치면 잔잔한 동해 같은 성격이다. 아내는 감정에 충실하다. 밀물 때와 썰물 때가 확실한 서해 같은 성격이다.


그런 아내는 우아하다. 부잣집 사모님, 여배우의 '우아한' 이미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아내가 감탄사를 뱉을 때 들리는 소리를 일컫는다. 그녀는 '우와'라기보다는 '우아~' 라고 말하는 편이다. 톡을 주고받을 때도 아내는 '우와' 대신 '우아'를 쓴다. 그녀의 '우아'를 들을 때마다 우리가 다르다는 걸 느낀다.


'우아, 하늘 이쁘다.'

'우아, 맛있다.'

'우아 꽃 냄새 좋다.'

'우아 좋겠구먼~'

'우아 저게 뭐야?'

'우아... 알려줘라~'


아내는 보고 듣고 맡고 느끼고 만지며 우아하게 세상을 받아들인다. 그녀의 우아함이 내게도 닿아온다. 나는 아직까지 우아함을 입 밖으로 내뱉을 정도는 아니지만 아내처럼 매 순간순간 보고 듣고 맡고 느끼고 만지며 세상을 이전보다는 더 충실하게 받아들여가고 있다. 조금은 더 쉽게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아내 덕에 터득했다.


금성에서 온 그녀 덕분에, 화성에서 온 남자는 지구에서 우아한 삶을 누리게 됐다.









매거진의 이전글노을이 예뻐서, 결혼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