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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Apr 20. 2021

매일 걷고 있습니다.

항상 혼자서요.

회사에서 점심시간이 되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산책하러 나간다. 3년 정도 된 습관이다. 주로 혼자 걷는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서 회사 근처의 천변 둘레길을 한 바퀴 돈다. 천변을 따라 쭉 펼쳐진 둘레길에는 다양한 코스가 존재한다. 그중 내게 맞는 최적의 코스를 약 3년에 걸쳐 개척해 걷고 있다. 중간에 벤치에 앉아 쉴 수 있고, 소음이 덜하고, 회사 사람들을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코스이다. 산책할 때만큼은 오롯이 혼자임을 느끼고 싶어서 지금의 경로를 애용 중이다.

 산책하는 게 습관이 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주변 환경 덕분이다. 도심지에 사무실이 있으면서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걷기 좋은 둘레길이 있는 건 축복이다. 걷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내가 처음 3년 전에 여길 왔을 때만 해도 둘레길 조성이 완벽히 이뤄지진 않았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걷기 좋은 환경이 됐다. 하천의 물은 깨끗해졌고 편의시설과 보도는 말끔해졌다.

 

 두 번째 이유는 운동이다. 바꿔 말하면 내 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다. 코로나 이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운동을 게을리했다. 점심시간에 가끔 이용하던 헬스장도 문을 닫았다. 퇴근 후에는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괜스레 몸을 움직이기가 귀찮아진다. 요즘 들어 이런 내 몸한테 미안하기도 하다. 나름의 채무감을 점심시간의 산책을 통해 풀고 있다. 약 40~50분간 4킬로 정도 걷고 나면 몸이 확실히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내 몸에게 미안한 기분도 조금은 해소된다.


 마지막 이유는 산책하는 시간 자체가 좋다. 가장 큰 이유다. 둘레길을 걷기 위해 나서면 매일 매주 매달 달라지는 계절의 변화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그 속에서 내가 존재함을 인식하게끔 해준다.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가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이 둘레길에 나와 걸으며 자연의 생동함을 듬뿍 느낀다. 봄이 무르익은 요즘 같은 때에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한껏 고양된 꽃들은 저마다의 색을 입고, 나무의 우듬지에는 푸르름이 깃든다. 무엇보다 봄볕을 머금은 나뭇잎의 색들을 가장 좋아한다. 빛에 따라 찰랑거리는 연둣빛 잎들이 내게 스며 들어온다. 귀한 순간이다.

봄기운이 완연한 천변에서 보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정겹다. 학교를 마치고 단짝 친구와 집에 가는 아이들, 가벼운 발걸음으로 총총거리며 뛰어다니는 반려견과 산책 나온 아저씨, 야채와 과일을 한가득 싣고 온 노상의 트럭에서 찬거리를 장보고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귀가하는 파마 부대 아주머니들까지. 단조로울 것 같은 평일 낮이지만 들여다보면 그 안은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안에서 나는 관찰자로서 자연의 풍광과 사람들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산책하며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 정겨움을 눈이 바쁘게 담는 동안 나의 귀 역시 쉬지 않고 있다. 산책을 하며 나는 주로 오디오북 어플을 이용한다. 어플 안에는 시사교양 팟캐스트부터 ASMR이 곁들여진 고전소설 발췌독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해 골라 듣는 재미가 있다. 대개 30-40분 정도 분량이라 부담 없이 듣기 좋다. 노이즈 캔슬링을 하고 오디오북을 듣다 보면 걸으면서도 꽤 몰입할 수 있다. 운동도 하고 책도 들을 수 있는 효율 높은 시간이 완성된다.

 이렇게 산책하며 나는 나로서 온전해진다. 관찰자가 되어 물 내음과 수풀의 푸르름이 가득한 길을 걷는 시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요즘이다. 끊임없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요즘 세상에 아주 귀한 시간이라 생각한다. 세상을 향해 펼쳐 둔 안테나는 잠시 접어둔 다음 한 발짝 물러나 나를 비움으로써 다시 채워나갈 힘을 찾는다. 오늘도 나는 나를 위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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