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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Feb 26. 2022

 '선 넘는' 단톡방에 화난 사람들

우리 집은 징세권이다. 매주 2번, 싱싱한 산오징어를 포함해 제철 생선을 한가득 봉고에 싣고 오는 사장님이 한분 계시다. 합리적인 가격에, 질 좋은 회를 집 앞에서 포장해 먹을 수 있게 됐다. 생선을 좋아하는 나는 '오징어사장님'이란 이름으로 전화번호를 저장해뒀다.


사장님은 오실 때마다 문자를 주셨다. 작년 3월부터 문자를 받은 기록을 쭉 훑어보니, 산오징어를 필두로 철마다 다른 횟감을 가져오신다. 요 근래는 대방어 숭어회가 눈에 띄었다. 사실 작년 여름에 마지막으로 사장님에게 회를 산 이후엔 이용하지 못했다. 매번 오는 문자가 당연히 올 거라 생각해서, 괜스레 광고 문자처럼 느껴졌다. 어느샌가 사장님의 문자에 벽을 두게 됐다.


이제는 더 이상 사장님의 문자가 오지 않는다.


한창 사무실에서 일하던 지지난주였다. 대뜸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이 톡 알람에 뜨길래 뭔가 싶어 확인해보니, 오징어 사장님이었다. 우리 아파트 입주민들 중 문자를 받는 사람들을 단톡방에 초대한 것이었다. 사장님은 앞으로 이 톡방에 언제 오는지 안내드리겠다며 인사를 건네셨다. 톡방엔 어림잡아 80명 정도는 있었다.


톡방을 만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대개 부정적이었다. 톡방을 나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중엔 가시 돋친 말을 뱉는 사람도 있었다. 선을 넘었다는 둥, 이건 좀 아닌 거 같다는 둥. 냉랭함과 정적이 흐르는 톡방을 잠시 훑어보다 나도 아무 말 없이 톡방에서 나왔다.


'선을 넘은' 톡방 개설 해프닝 후 다음 날, 오징어 사장님이 문자를 보내오셨다.



겸연쩍어졌다. 사장님은 최소한 자신이 문자를 보내던 고객들을 초대한 것이었고, 기저에는 과다한 전화비를 줄이기 위해서였던 것이었다. 대출, 주식 투자 권유, 텔레마케팅도 아니고 적어도 한 번씩은 사장님께 회를 구매했을 텐데, 아무 말 없이 톡방을 나간 나를 포함해서 사람들이 보였던 날 선 반응에 사장님이 느꼈을 심정은 복잡다단했을 테다.


처음 방을 만드실 때 사유를 먼저 언급해주셨다면 다른 반응이 나왔을까 싶다. 그랬으면 적어도 '선을 넘었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려나. 모를 일이다. 우리는 너무도 쉬이 판단한다. 너무도 바쁘고 각박한 세상인지라, 이해의 반경은 점점 좁아져만 간다. 최근에 들은 말이 떠오른다.

판단을 통해 우리는 분열한다. 이해를 통해 우리는 성장한다.


딱딱한 기준으로 타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판단하기보다는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팍팍한 삶의 구김살이 조금은 펴지지 않을까 싶다. 굳이 성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장님의 대(對) 입주민 사과 문자를 받고서야 이해를 한 나도 결국은 팍팍한 인간군상 중 하나일 뿐이었다. 톡방에선 아무 말 없이 나왔지만, 이 문자를 받고선 가만히 있기 어려웠다. 상심하셨을 사장님께 짤막하게 답장을 보냈다. 네모난 스마트폰 속에서 모났던 내 모습이 조금이라도 둥글어지길 바라면서. 사장님께서 앞으로도 좋은 횟감을 전화비 부담을 덜하시고 가져오시길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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