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받느라 앉아만 있었는데 대뜸 존경받게 된 썰
지난주 회사에서 ‘양성평등’을 주제로 교육을 받았다. 사내 강당에 모여 직접 받는 교육이었다. 거의 3년 만의 대면교육이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강당으로 들어서는데 낯설었다.
교육은 한 시 반부터 시작했다. 내가 강당에 들어섰을 땐 이미 많은 타 부서 직원들이 꽤 자릴 잡고 있었다. 정시가 되자 교육을 주최하는 담당 부서 차장님께서 간단히 강사님을 소개해주셨다. 젠더이슈와 관련한 교육 및 컨설팅을 담당하는 외부기관에서 초빙한 강사님은 화사한 스카프를 두르고, 말끔한 정장을 입고 계셨다. 강사님의 힘찬 인사말과 직원들의 박수소리와 함께 교육이 시작됐다.
교육내용은 주로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성추행 등 성비위와 젠더평등에 관련한 것이었다. 중간중간 흥미로운 동영상과 열정적인 강사님의 강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심식사 후 진득하게 쏟아지는 졸음에 무방비상태가 돼버렸다. 7년째 직장을 다니지만 이렇게 교육을 받을 때마다 졸음에 속수무책이 되버리는 건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다. 나른해진 분위기를 눈치챈 것인지 강사님은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10분 간 쉬는 시간을 주셨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강당을 떠났다. 나도 그 무리에 섞여 나와 사무실에 올라왔다가 쉬는 시간이 끝날 때쯤 다시 내려왔다.
불과 10분 사이, 강당은 몰라보게 휑해졌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강사님께서 다시 교육을 시작하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리에 돌아오지 않았다.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것 마냥 썰렁해진 공간에 난파선 조각에 표류하듯 띄엄띄엄 남아있는 사람들, 그걸 지켜본 채 강의를 이어가는 강사님. 이루 말할 수 없는 난감함과 적막이 강당을 덮쳤다. '다들 많이 바쁘신가 보다…' 싶으면서 이러면 안 되는 게 아닌가. 괜스레 자릴 떠난 분들에게 야유를 보내고 싶어졌다.
사람들이 많이 없다보니 중간에 나가기도 애매해진 상황이 돼버렸다.. 게다가 강사님은 확 줄어든 수강생들(강사님은 우릴 ‘선생님’들이라 불렀다.)을 아이컨택하며 교육을 하시다 보니 졸음도 확 가셨다. 꼼짝없이 교육을 끝까지 들어야만 된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전투에서 최후의 전장을 지휘하는 장군에게 발탁된 정예병사처럼 마음을 먹었다. 결연한 의지로 꼿꼿히 앉아 교육에 집중해 보았다.
두 번째 쉬는 시간이 지나자 사람은 조금 더 빠져나갔다. 강사님과 남겨진 우리들은 가히 예수님과 12제자를 방불케 했다. 이제부터 본 게임이다. 나가는 사람이 유다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어느샌가 강사님의 우직한 제자가 되어 교육을 듣고 있었다.
두 번째 쉬는 시간이 끝나고, 교육을 다시 시작하시며 강사님께선 우리들에게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 계신 선생님들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그 누구도 중간에 나간다고 뭐라 하지 않고, 앉아계실 의무도 없는데 이렇게 자릴 지켜주셔서 감사드려요.”
옅은 눈웃음을 지으며 강사님은 진심 어린 감사를 우리에게 전했다. 강사님의 말 한마디에 복잡한 감정이 차올랐다. 강사님의 눈을 마주치기 미안해졌다. 당장이라도 중간에 나간 분들을 데려와 다시 앉히고 싶었다. 내가 만약 강사님이었다면, 비어버린 강당에서 표정관리부터 안됐을 것 같다. 뭐 이런 경우없는 회사가 있냐 불만을 갖고 강의도 대충대충 했을 테다. 편협한 나와 달리 강사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열성적으로 교육을 진행하시고 남은 우리에게 존경까지 표하셨다.
교육이 끝나기 10분 정도 남았을 때쯤 나도 결국 업무상 전화를 받느라 강당을 빠져나와 강사님께 인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양성평등을 주제로 한 교육이었지만 강사님께선 그 이상의 교훈을 주시고 가셨다. 상황이 좋지 않아도 주어진 일에 흐트러짐 없이 임하는 프로정신과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하고 표현할 줄 아는 강사님의 태도는 사회생활하는 어른의 올바른 모습 그 자체였다. 다른 회사에서도 이런 교육을 많이 하실 텐데 부디 그곳에선, 그저 가만히 앉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존경을 받는 사람이 적길 바란다. 존경심과 부끄러움을 담아 이 글을 강사님께 바치고 싶다. 좋은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강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