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5년 4월부터 11월까지야간 콜센터 상담원으로 근무했다. 취업준비를 하던 막학기라 이수과목이 적어 여유가 있었다. 비어 있는 시간을 메꾸고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친구의 소개를 받아 야간 콜센터 상담원 일을 하게 됐었다. 여기서 근무하기 전까지는 콜센터가 야간에도 운영되는지 몰랐었다. 내 상식으로는 오후 6시가 넘어가면 콜센터는 떠나간 연인처럼 철벽을 치는 곳이었다.
'상담 업무가 종료되었습니다’
아쉬움 가득 담은 ARS 멘트가 나오고 다음날을 기약하는 게 상식이었다. 하지만 6시 이후에는 다른 세계가 펼쳐져있었다. 6시 이후의 콜센터는 환하게 밝아있었다.
당시 내가 다녔던 곳은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전자제품 콜센터였다. 6시 이후 전화를 걸면 다른 콜센터와 마찬가지로 ‘상담 업무가 종료되었습니다.’라는 멘트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이 멘트를 듣고서 조금 기다리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클래식 음악이 이어지다가 ‘야간 상담원’이 닥터스트레인지처럼 짠하고 나타나 응대한다.
내가 하던 일은 비교적 간단했다. 전문지식이 없기에 매뉴얼대로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비롯해 노트북, 스마트폰 등의 문의사항에 간단한 답변을 하고, 수리가 필요한 제품들의 서비스센터 예약접수를 도와주는 일이었다. 4인 2개 조로 구성되어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근무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땐 무척 흡족해했다. 4대 보험도 되고, 급여도 야간수당이 붙어 당시 최저임금과 비교하면 아주 만족스러웠다. 저녁 6시 이후로 전화가 얼마나 올까 싶어서 이 일 완전 개꿀이라며 콧노래를 불렀다. 콧노래가 곡소리로 바뀌는 데는 채 1달이 걸리지 않았다.
저녁 6시 이후 전화를 걸어 안내멘트가 나오면 보통 사람들은 대개 전화를 끊기 마련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바꿔 말하면 야간 상담원에게 연결될 정도라면 ‘보통사람’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술에 취한 사람부터, 다짜고짜 반말을 하거나 욕지거리를 하는 사람들 등 악다구니 대환장 파티였다. 이런 전화를 받으며 얻는 스트레스와 야간근무에서 비롯되는 육체적 피로가 겹겹이 쌓여갔다. 새벽시간에는 4명이서 교대로 의자에 누워 쪽잠을 잤긴 했지만 새벽 2-3시에도 드문드문 들어오는 전화에 깨기 일쑤였다. 혹여라도 새벽시간 대 들어오는 콜을 놓치기라도 하면 담당자에게 된통 깨졌기 때문에 맘 놓고 자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특히 요즘같이 더운 시기에는 새벽에도 전화가 쏟아졌다. 에어컨 때문이었다. 주로 모텔 같은 숙박업소에서 걸려오는 전화였다. 장사하시는 입장이니 투숙객들이 묵는 방에서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다면, 내가 모텔 사장이었어도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어 잠긴 목을 풀고서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했다.
네 고객님. 주소지가 어떻게 되실까요. 기사님 방문 가능일 확인해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주소를 확인하고 그 지역에 할당된 기사님들의 스케줄을 확인한다. 역시나 꽉 차 있다.
‘고객님.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죄송하게도, 요즘 에어컨 고장접수가 많이 들어와서요. 가장 빠른 방문 가능 날짜는 다음 주 0요일이세요.’
응대를 마치며 마음의 준비를 한다.
'셋, 둘, 하나… 땡!’
카운트가 끝남과 동시에 수화기에서 귀를 살짝 뗀다. 돌아오는 건 반문, 고성, 욕설이기 때문이다. 에어컨 수리 인력은 한정돼있는데 여름철엔 고장접수가 몰리다 보니 방문점검이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2주가 넘게 걸리는상황이었다. 나 같아도 우리 집 에어컨이 고장 났는데 콜센터에서 2주 뒤에나 온다 하면 분명 열불이 났을 것이다. 그렇게 난 욕이 바람에 스치우는 여름밤을 보내야만 했다.
혹독했던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었다. 야간 콜센터 근무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됐을 무렵 공채 준비로 바빠지기 시작하며 내 자리를 채울 대타를 구한 뒤 일을 그만두었다. 7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야간 콜센터 근무는 내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1.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콜센터 수화기 너머 사람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지 않은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이었다. 반말하는 사람은 애교 수준이었다. 욕하는 사람, 한국 근현대사를 일장연설 늘어놓던 사람, 새벽에 전화를 걸어 노트북이 고장 났다고 얘기하다 자신의 결혼생활 불화를 이야기하는 분에 이르기까지… 수화기 너머로 천태만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야간 상담원들은 나를 포함해 전부 남자여서 겪지 못했지만 주간에 근무하는 여자 상담원분들께선 성희롱적 발언을 듣는 경우도 꽤 많았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어 콜센터 상담원들의 권익을 보호하곤 있지만, 여전히 상담원분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단지 수화기 너머로 권력을 쥐었다는 알량한 갑의 의식으로 자신들의 품위를 뚝뚝 떨어뜨리던(애초에 없는 사람이겠지만) 사람들을 상대하며 깨달았다. 이런 사람들은 원래 이렇다는 사실을. 일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냥 이런 사람이다를 디폴트 값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이런 사람들에게 굳이 감정 소모를 하지 않기 위해 한 귀로 흘려들으려고 노력했다. 무척 어려웠지만.
2. 어떤 경험이던 삶의 양분이 된다.
콜센터 상담원 일은 순전히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했었다. 대학교 졸업이 다가올수록 사람 구실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짜고짜 시작했던 일에 불과했다. 거창한 목적이 없었음에도 내 삶에 큰 도움이 됐다.
콜센터를 그만두고 한 달여 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최종면접이 있었다. 공기업 특성상 민원응대 업무가 수반되는데, 나는 이미 야간 콜센터에서 거친 민원을 받아보았다는 사실을 면접관들에게 어필했다. 웬만한 욕지거리에는 흔들리지 않는 멘탈을 갖췄음을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콜센터 다닌 경력만으로 합격을 한 건 아니었을 테지만 무튼 최종 합격을 했다. 면접관들에게 이야기한 대로 콜센터에서의 경험은 지금도 민원을 응대할 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상담원으로 일하며 기틀을 닦은 마음속 ‘사리’는 이제 공사감독이 되어 제련과정을 거쳐나가고 있다. 퇴사할 때쯤이면 동그랗고 밝은 사리가 몸속에서 나오지 않을까 싶다.
3. 신체 리듬은 정말 중요하다.
야간 근무를 하면서 세상의 모든 교대근무 직장인들에게 존경을 품게 되었다. 인간은 낮에 일하고 밤에 자야 한다는 명제를 가슴 깊이 새겼던 시간이었다. 아침 8시에 일을 마치고 구내식당서 밥을 욱여넣은 뒤 자전거로 자취방까지 퇴근했는데, 자전거 바퀴에 돌이라도 매달아 놓은 것처럼 페달질 하는 나의 육신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무거운 몸으로 낑차낑차 자전거를 끌고서 자취방에 돌아와선 쓰러지듯 잠들었다. 오후에 자고 일어나면 항상 몽롱하고 찌뿌둥했다. 구석구석 몸에 들러붙은 피로가 잘 떨어지질 않았다. 야간근무를 버텨낼 체력을 기르기 위해 킥복싱 체육관까지 다녔다. 덕분에 체육관에 매달린 샌드백처럼 대롱대롱 간신히 7개월의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 육체적인 피로뿐만 아니었다. 민원전화를 받는 스트레스는 차치하더라도 남들이 출근할 때 퇴근하고 퇴근할 때 출근하는 데서 오는 묘한 이질감도 스트레스의 한 요소였다. 신체 리듬의 유지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온몸으로 절절히 깨달았다.
요즘같이 더운 날이면 욕지거리를 받아내던 상담원 시절이 떠오른다. 그리고 어느 날 출근하며 봤던여자 상담원 분이 떠오른다. 주간 상담원들이 다 퇴근하고 우리가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까지 그분은 고객의 끊임없는 클레임 때문에 수화기를 붙든 채 퇴근하지 못하고 계셨다. 상냥한 목소리와 대조되게 고개를 푹 떨구고 계시던, 그분의 굽어있던 실루엣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콜센터에서 오랜 시간 근무한 분들에 비하면 나의 경험은 정말 사소하다. 야간에 근무했던 특수성을 제외하고는 상담원분들이 겪는 고초를 나는 어쩌면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단지 지금도 어디선가 무더운 밤을 지새우고 있을 야간 상담원들에게 전화가 덜 오기를, 고객에게 수시간째 붙들려서 전화를 받던 여자 상담원분께서 지금은 진짜로 웃을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기를, 에어컨이 고장 좀 안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