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여름이 좋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복숭아다. 싱그러운 복숭아를 먹을 수 있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여름엔 복숭아다. 복숭아는 탕수육처럼 논쟁거리의 음식이기도 하다. ‘부먹’ 파와 ‘찍먹’ 파가 나뉘듯, ‘물복’ 파와 ‘딱복’ 파가 팽팽히 나뉜다. 내게 탕수육은 찍먹이고, 복숭아는 딱복이다. 눅눅하고 무른 식감보다는 바삭하고 아삭한 게 좋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는 그런 식감이 좋다.
물복이냐 딱복이냐 이 해묵은 논쟁은 결론에 도달할 수 없고, 도달할 필요도 없다. 물복이든 딱복이든, 복숭아는 사랑이다. 사랑에 대한 논쟁은 가정법원에서나 다룰 일. 여름이 왔으니 물복이든 딱복이든 복숭아를 즐기면 그만이다. 물렁하게 또는 아삭하게.
출처 : 에펨코리아
최근 커뮤니티에서 (결혼정보회사에서 선호하는) ‘육각형 남자’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역삼각형 몸매의 남자도 아니고 육각형 남자? 수학 잘하는 남자를 말하는 건가? 찾아보니 위 조건들을 고루 갖춘 남자를 흔히 '육각형 남자'라 부르고, 이 육각형 남자를 결혼 적령기 여자들이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외모면 외모, 학력이면 학력, 직업이면 직업, 자산이면 자산… 과연 현실에서 이 육각형을 가진 남자가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 사람들이 찌그러진 육각형을 갖고 있을 텐데. 혼인율이 떨어지는 이유를 수긍하게 해 준 육각형 이론이다.
이런 웃지 못할 도형 남성상이 횡행하는 세상 속 안식처가 필요하다. 사람은 꽉 찬 육각형을 찾기 힘들지만 과일은 아니다. 복숭아는 꽉 찬 육각형 과일이다. 당도, 색깔, 크기, 질감 등등 과일로써 모든 자질을 꽉 찬 육각형으로 갖추고 있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파스텔 톤 핑크빛에 그립감 좋은 크기, 복숭아털을 만질 때의 부드러운 질감과 물복 딱복으로 골라 즐길 수 있는 물컹하고 부드러운 식감까지. 혼인율은 계속 떨어지겠지만 여름철 가정 내 복숭아 보급률이 떨어질 일은 요원해 보인다.
완벽한 육각형 과일인 복숭아도 가끔 우리를 실망시키고 배신할 때가 있다. 사람도 만나봐야 안다고, 부푼 마음으로 산 복숭아를 깨끗이 씻고서 잘라먹어보면 너무 무르거나 너무 딱딱하거나 또는 단맛이 안나기도 한다. 육각형 과일인 만큼 비싼 돈을 주고서 샀는데 이렇게 배신을 당하면 상실감이 몰려오곤 한다. 당도와 식감의 상실은 뼈아프다. 그래도 괜찮다고 토닥여본다. 복숭아는 복숭아니까. 복숭아는 육각형 과일이니까.
아파트 단지 상가에 자주 들르는 과일가게가 있다. 취급하는 과일, 야채들의 상태가 좋고 사장님들도 친절해 자주 이용한다. 얼마 전 가게 앞을 지나가다 가판대에 놓인 복숭아가 눈에 들어왔다. 딱복이었다. 아내는 곧 죽어도 딱복
파라 냉큼 집어 들고 가게 안으로 계산하러 들어갔다. 계산대 앞에는 아주머니 두 분이서 사장님과 언쟁 중이셨다.
"아니 이런 걸 복숭아라고 갖다 놓고 파시는 거예요? 먹어봤는데 아무 맛이 안 난다니까요?"
복숭아에게 배신을 당해 찾아오신 것으로 추정되는 대화였다. 사장님은 난색한 표정을 지으며 응대하시려 했지만 이내 아주머니들께 말꼬리를 잡혔다.
"사장님이 한 번 드셔 봐요 예? 이런 걸 팔면 안 되지! 당장 환불해줘요."
둥근 복숭아들 너머로 모난 말이 쏟아졌다. 사장님은 그분들께 복숭아 박스와 카드를 건네받고서 환불처리를 해주셨다. 연신 죄송하다 사과하시면서. 아주머니들은 도저히 복숭아의 배신을 납득할 수 없다는 듯 계속해서 화난 표정이었다. 항의하는 아주머니들 뒤에서 딱복 한 봉지를 들고 있던 나는 쭈뼛쭈뼛댔다. 얼른 계산하고서 집에 가고 싶었다.
복숭아의 배신은 뼈아프다. 뼈아픈 만큼 화가 날 법도 하지. 근데 이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싶었다. 과일가게 사장님도 복숭아가 배신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이렇게 의도치 않은 남의 배신과 실수에 필요 이상으로 감정이 치솟곤 한다. 자신에겐 관대하면서 남의 실수와 잘못은 눈에 불을 켜고 밝혀내고 시시비비를 가린다. 메마른 사회라고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예외다. 복숭아의 배신에 한껏 실망한 아주머니는 자신의 미뢰를 위해서라도 목청껏 항변하고 환불받아야 했을 것이다. 미뢰는 소중하니까.
집에 돌아오자마자 과일가게에서 사 온 복숭아를 씻고 껍질채 깎아먹었다. 아삭하고 달달했다. 몸과 마음은 둥그러졌다. 다행이었다. 우리의 복숭아는 배신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여름이 많이 남았다. 그 말인즉슨, 복숭아는 언제든 우릴 배신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혹여 복숭아에게 배신당해도 여름마다 나를 둥그렇게 만들어준 복숭아를 떠올리며 너그럽게 넘어가고 싶다. 꽉 찬 육각형을 가진 사람도, 과일도 때로는 실수하는 세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