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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Nov 24. 2022

도서관에서 마주한 나의 민낯

옷차림보단 마음가짐

초등학교 시절, 나는 소위 패피였다. 엄코(엄마 코디)에 기반한 등교룩으로 사뭇 같은 반 여학우들에게 패션 센스를 인정받았다. 같은 반 여자 아이들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투표에서 나는 옷 잘 입는 부분 1위, 잘생긴 부분 4위(3위였던 것 같기도)를 차지했다. 투표 결과를 전달받은 11살의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꾹 누른 채 행복감을 누렸다. 여태껏 받았던 상장들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었다. 난 그렇게 교복을 입기 전까지 엄코를 받으며 남자 초등학생 등원룩을 꾸준히 가꿔갔다.


엄코의 근원은 나의 젖먹이 시절부터였다. 풍족치 않았던 부모님의 신혼시절, 외동아들인 나만큼은 어디 가서 꿀리지 않게 보이게끔 엄마는 자기가 쓸 생활비를 아끼시면서까지 날 예쁘게 꾸미고 입히셨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 어린 시절 앨범을 보면 엄마의 안목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중에 내가 아들을 낳으면 이렇게 입히고 싶을 정도로 세련됐다. 유아복도 브랜드는 때깔부터가 다르다며 엄마는 내게 좋은 것만 해주셨다. 유아기부터 이어진 엄코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쭉 이어진 것이다. 그 덕분에 옷 잘 입는 남학생 1위도 차지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고 엄코를 받을 시기를 지났을 무렵부턴 지난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만의 코디를 완성시켜왔다. 30대 중반인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예전에 비하면 엄마의 센스에 비견할 정도로 성장했다. 엄마는 내게 항상 옷차림을 정갈히 하라고 하셨다. 겉으로 보이는 게 다는 아니지만, 겉으로 보이는 사람의 모습이 중요하다는 걸 항상 강조하셨다. 엄마의 조기교육을 받은 덕분에 나는 옷을 잘 입는 편에 속하는 성인 남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옷을 잘 입게 되면서 부작용도 생겨났다. 다른 사람들을 볼 때 일견 겉모습만 보고 어떨지 판단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사람 됨됨이를 그저 '관상'이나 '옷차림'만을 보고서 저 사람은 저럴 것이다. 나와는 결이 맞지 않을 것이다. 등의 자체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다간 허울만 좋은 속 빈 강정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선 다른 사람들을 볼 때 최대한 직관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으려고 노력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판단하는 내 뇌의 자동반사는 거스르기 어렵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얼마 전 자격증 취득을 위해 퇴근하고서 공부를 잠깐 했었다. 동네 도서관에 종종 들러 열람실에서 공부를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내 시선을 확 끄는 옷차림의 아저씨가  나타났었다. 도서관'룩'에는 다소 맞지 않는 옷차림이었다. 공사현장에서 입는 주머니가 많이 달린 나일론 소재의 작업용 조끼를 입고서 열람실에 앉아계셨다. 아저씨를 보고선 '왜 여기 계시는 거지?' 의문이 생겼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나가는 동안 아저씨가 앉아 있는 자리를 슬쩍 쳐다보았다. 두꺼운 책이 놓여있었고, 아저씨는 검은 뿔테의 안경을 쓴 채 내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고 공부를 하고 계셨다. 아차 싶었다. 도서관에 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러 온 사람일 텐데. 난 그저 아저씨의 옷차림만 보고서 여기엔 있어서 안 될 사람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아저씨는 그다음 날도 똑같은 작업용 조끼를 입고 앉아서 공부를 하고 계셨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르시지도 않은 채 도서관에 와서 시간을 쪼개어 공부를 하고 계셨다. 아저씨가 붙들고 있던 두꺼운 책은 자세히 보니 기사시험 자격증 책이었다. 멀찍이서 아저씨를 바라보다 나는 그만 얼굴이 화끈해졌다. 내가 뭐라고 함부로 판단한 걸까. 부끄러워졌다. 일을 마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서 도수 높은 안경을 낀 채 뭉툭한 손으로 펜을 쥐어지고 묵묵히 공부하는 아저씨. '도서관 룩'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편협한 내게 아저씨는 조용히 일러주었다. 겉모습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옷차림보단 마음가짐을 더 가지런히 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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