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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Dec 31. 2021

삼신할매


 숲 속으로 난 좁은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숲이 뿜어내는 솔 향이 어찌나 강한지 코와 입을 통과한 청량함이 폐와 뇌를 깨끗하게 씻어내는 기분이 들었다.
발아래 이슬을 머금은 풀을 밟을 때마다 풀냄새와 흙냄새가 섞여 아지랑이처럼 피어 올라왔다.


     ‘그나저나 이 산은 흙이 왜 이렇게 붉은 걸까?’


     짙은 초록의 나무와 수풀에 대비를 이루며 이 숲의 흙은 빨간 벽돌을 갈아서 깔아 놓은 듯 진한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키 큰 나무들의 머리 깨로 안개가 두껍게 드리워져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신기한 숲이었다. 산책로에 사람이라곤 없고 난생처음 들어보는 새소리들만 나를 따라오듯 끊임없이 들려왔다. 숲이 내뿜는 신비로운 에너지에 취해 한참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쯤 걸어갔을까 전방에 피크닉 장소와 매점이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저기 가서 좀 쉬었다 가야겠다.’


     발걸음을 재촉하자 금세 다음 표지판이 보였다.


     “숲 속 쉼터 좌측 50미터”


 좌측으로 경사가 완만한 내리막길이 보였다.

길을 따라 들어갈수록 안개가 조금씩 짙어졌다.

드디어 작은 공터가 나왔고 간이 부스 같은 매점 앞에 야외용 피크닉 테이블과 의자 몇 개가 놓여있었다.


 나처럼 혼자 온 한 여인이 등을 보이고 앉아서 열심히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똑 단발을 한 여인의 뒤태가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매점은 메뉴판도 없고 실내도 보이지 않았다. 매표소처럼 작은 창구만이 열려있었는데 아치형의 창구 안에 점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얼핏 보니 하얗게 샌 머리를 쪽진 할머니였고 졸고 있는 듯 정수리의 가르마만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보였다.

     ‘여긴 뭘 팔지? 빵이나 커피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저 단발머리 여자가 먹는 걸 봐야겠다. 맛있어 보이면 나도 저걸로 달래야지.’


 나는 안보는 척 슬그머니 그녀의 옆 테이블에 다가가 앉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왼쪽에 앉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세… 상…에……’


      나는 소리도 나지 않는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곳에 앉아있는 단발머리 여인은 다름 아닌 새언니였다.


      “새언니???”


      새언니는 분홍색 잠옷 원피스 바람으로 그곳에 앉아 오렌지를 산더미같이 쌓아 놓고 까먹고 있었다.


     “언니 여기서 뭐해요?”

      

       그런데 그녀는 바로 옆에서 소리치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초점 없는 눈으로 열심히 오렌지만 입에 밀어 넣고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여긴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뒷걸음질을 쳤다. 마음은 뛰고 싶은데 몸도 발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내 손목을 낚아채듯 꽉 움켜 잡았다.


     “악!!!!!”


    고개를 돌리니 아까 그 백발의 쪽진 매점 점원이었다.


 등이 굽고 얼굴이 잔주름으로 가득한 그 할머니는 나를 보며 양쪽 입꼬리를 한껏 올려 웃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웃는 입과 달리 두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너무 무서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할머니의 아귀힘은 얼마나 센지 손목이 아플 지경이었다.


     “난 네가 여기 왜 왔는지 알지.”


      할머니의 목소리는 쭈글쭈글한 얼굴과 달리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내 눈을 뚫어 보는 듯 한 눈빛을 발산하며 선명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뱉은 그 한마디가 숲 전체에 메아리쳐 울렸다.  

그 순간 나는 번쩍 눈을 떴다.


 꿈이었다.


 한동안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눈만 깜박이며 누워있었다. 솔 냄새 흙냄새가 여전히 나는 듯했고 손목은 그 할머니에게서 방금 놓여 난 것처럼 얼얼했다.
이상한 꿈이었다.


 그로부터 몇 주 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언니가 둘째를 임신했는데 또 딸이라고… 장손이기 때문에 온 집안 어른들도, 큰오빠네 부부도 아들을 간절히 원해왔다. 새언니는 많이 울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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