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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an 06. 2022

벚꽃

영혼의 목소리

     “형님!!! 형님!!!!” 안에 계세요?

 

     이모부가 현관 문이 부서져라 두드린다.  쾅! 쾅쾅 쾅!  


    “형님!!!” “형님!”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처형, 아무래도 창문으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나의  엄마였다.


   “그 인간, 또 술 퍼마시고 인사불성이겠지. 제부가 고생이네. 고마워요.”  


    건물 밖으로 나가 안방 창문 쪽으로 다가간다.  


   “아~ 이거 무슨 냄새지? 아후~ 나 원 참… 쓰레기를 방 안에서 썩히시나.”  


코를 잡으며 창문을 연신 두드린다.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버지는 열흘이 넘도록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니 받을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구라도 아버지를 찾아와 주길 기다렸건만 이제야 와주었다. 엄마도 동생도 아닌… 이모부가… 길 가 쪽으로 난 안방 창문은 잠겨있었다. 다행히 방범 창살은 없었다. 이모부는 주변에서 주먹만 한 돌을 찾아와 유리창을 내리쳤다.  쨍그랑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창이 깨졌다. 이모부는 손을 안쪽으로 넣어 창문을 열고 방 안으로 넘어 들어갔다. 방안에는 코를 찌르는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바닥에 엎드려 누워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형님??? 아니 왜 전화를 안 받으십니까!!! 많이 편찮으세요?”  


     이모부가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으~~ 아악~~~!!!”  


아버지는 이미 여러 날 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얼굴엔 벌레가 들끓고 있었다.  나는 우리 집의 미운털이 자 아픈 손가락이었다. 영특한 동생은 특별한 사교육 없이도 좋은 대학에 한 번에 척 합격했다. 군대에 다녀와서는 S 기업에 곧바로 입사해 우리 집 자랑거리가 되었다. 어머니는 무능력한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 속에서도 악착같이 우리 둘을 건사했다. 특히 장남인 나를 위해 없는 살림에 과목별로 과외를 시켜가며 뒷바라지를 했다. 나는 삼수 끝에 겨우 사대문 안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지만 졸업 후 행정고시 준비만 십 년째였다. 낙방이 거듭될수록 아버지는 나에게 폭언을 일삼았고, 동생 집에 얹혀사는 나는 점점 쪼그라들어 소멸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올 들어 잦은 두통과 코피에 시달렸다. 그날도 극도의 피로감과 두통으로 공부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화장실에서 동생이 전화로 여자 친구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못난 형 때문에 집에 여자 친구 한 번 데려오지 못하는 동생에게 미안했다.  


     ‘형 집에 내려갔다 올게. 주말에 친구들도 좀 불러서 재밌게 보내라.’  


 동생에게 쪽지를 써 놓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침부터 코피가 멈추지를 않았다. 고속버스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람에 난분분하는 벚꽃잎들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흐드러지게 피어 사람들의 마음에 아지랑이를 피우더니 떨어지는 자태마저도 곱디고웠다.


     ‘차라리 벚꽃으로 태어났으면 좋지 않았을까…… ‘  

     어지러웠다. 두통이 점점 심해지고 머릿속에 하얀 벚꽃잎들이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다.  


 집에 들어서니 아버지가 마루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눈빛에 반가움이 아닌 울화가 비친다.


     “야 이 새끼야, 공부 안 하고 뭐 하러 내려왔어? 내가 동네 창피하니까 합격할 때까지 오지 말라고 했지!”     


     “아… 아버지. 몸이… 좀 안 좋아요. 머리도 아프고 코피도 계속 나고…”  


     아버지는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집어던졌다. 술잔이 내 머리칼을 스치며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네가 정신 상태가 그 모양이니까 맨날 낙방인 거야!! 공부하는 놈이 머리도 좀 아프고 코피도 나는 게 당연하지 그게 대수라고 집에 기어 내려와?!!!”  


      이번엔 나도 참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허구한 날 술만 마셔대는데 내 머리가 멀쩡하게 태어났겠어요? 알코올 중독자 아들이 언감생심 행정고시가 가당키나 합니까?”

 

      “뭐야 이 새끼야?”  


  번개가 번쩍했다. 아버지의 손이 내 귀뺨을 때리는 순간 나의 세상은 그대로 암흑이 되었다.  나는 뇌종양 말기였다. 이미 손쓸 수 없이 부푼 종양 중 하나가 아버지의 손찌검에 터져버렸고 나는 뇌사 상태에 빠져들었다. 뇌사에 빠지면 뇌가 죽은 거나 다름없다는데 나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일주일 동안 병실에서 가족들이 나누는 모든 이야기가 들렸다. 나의 뇌기능이 일부 작동하여 들린 건지 이미 육체를 떠날 준비를 한 나의 영혼이 들은 건지 알 수는 없었다.  


     “여보, 우리 장남이 이렇게 잘생겼소. 세상에 천사가 따로 없지. 우리 아들. 착하고 잘생긴 우리 아들, 허허허.”


 아버지는 물수건으로 극진하게 나를 닦아가며 어머니에게 내 칭찬을 했다. 아버지의 웃음소리를 얼마 만에 들어보는지 몰랐다.  


     “여보, 우리 아들이 다 듣고 있어. 이것 봐요. 웃고 있잖아. 기억 나오? 우리 아들이 얼마나 착하고 효심이 깊었는지? 왜 그 초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인가? 어버이날 우리 준다고 카네이션이라며 함박꽃을 잔뜩 꺾어가지고 온 날?”  


 아버지는 반쯤 넋이 나가 대답조차 없는 엄마에게 독백처럼 끊임없이 떠들어 댔다. 한 번도 내게 보여준 적 없는 온화하고 자상한 미소를 가득 담고. 병실에 누워있는 나에게서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보고 계시는지도 몰랐다. 일주일 후 산소 호흡기도 더 이상 나의 숨결을 잡아 두지 못했다.  


 언젠가 기분 좋게 술에 취한 아버지는 시인이 꿈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평생 시 한 편 쓰지 못하고 술독에 파묻혀 살았다. 그리고 술만 마시면 어머니와 우리들에게 손과 발을 휘둘러 댔다. 그런 아버지를 나는 미워했는지 사랑했는지 모르겠다.  나의 장례식이 끝나자 아버지는 곡기를 끊었다. 마치 술로 몸을 채우려는 사람처럼 술을 부어 넣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구토에 기도가 막혀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나는 홀연히 육신을 빠져나와 스러지듯 하얗게 비산하는 아버지의 영혼을 지켜보았다. 그 경쾌하고 가벼운 부서짐은 흩날리는 벚꽃잎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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