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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Dec 26. 2021

엄마가 사라졌다

     “엄마!!! 나 상 받았어!!!”

     “엄마!!!” “엄마???”


 학교 글짓기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날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자랑할 생각에 신이 나서 한 손에 노란색 상장을 팔랑거리며 한쪽 발에 두 걸음씩 콩콩 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하굣길 참새 방앗간인 떡볶이 리어카나 문방구 앞 뽑기에도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곧장 집으로 왔다. 그런데 '우리 딸 장하네~~' 웃으며 나를 반겨줘야 할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낯선 정적만이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이보리색 이중 커튼 사이로 오후 햇살이 스며들어 거실은 옅은 안개가 낀 것 같았다. 괘종시계 소리만이 맥박처럼 적막을 깨고 있었다. 안방 문을 열어젖혔다. 언제나 그렇듯 말끔하게 정돈된 안방에도 엄마는 없었다. 오빠들 방도 건넌방도 텅 비어 있었다.


 엄마는 집 그 자체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이 그 자리에 있듯 엄마도 당연하다는 듯 그곳에 있었다. 장이 서는 날에도 엄마는 우리 삼 남매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서둘러 장에 다녀와 우릴 맞아주곤 했다. 학교에서 집까지 30분은 족히 걸어와야 하는 거리기에 엄만 항상 간식부터 챙겨 놓고 우릴 기다린다. 여름에는 얼굴이 발그레해져 들어오는 우리에게 얼음을 동동 띄운 미숫가루 사발을 내밀었고 겨울에는 시간 맞춰 달콤한 호박 고구마를 쪄서 한 김 식혀 내어 주는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 하필이면 내가 상을 받아온 날 집에 없는 것이었다. 식탁 앞에 오도카니 서 있자니 싱크대에 씻다 만 설거지 거리들이 비눗물에 잠겨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수도꼭지에선 물방울이 똑 똑 떨어지고 있었다. ‘어? 엄마가 집에 있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안도감이 밀려왔다. 집안에 없다면 옥상에서 빨래를 널고 있을지도 몰랐다. 가방을 내려놓고 날 듯이 옥상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빨랫줄에 뽀얀 빨래들만 바람에 분분(芬芬)한 춤을 추고 있을 뿐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우당탕탕거리며 계단을 내려와 다시 현관에 들어섰다. 공기마저 멈춰 있는 듯한 고요함. 집이 낯설게 느껴지다 못해 점점 무섭기까지 했다.


 실낱 같던 희망이 무너지자 나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흐윽... 음마...앙... 흑...”

그때였다. 어디선가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아가~ 엄마 여기 있어.”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잘못 들었나 싶었다.

    “엄마?”

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여기야… 아가… 엄마 다락에 있어.”

엄마였다. 작은 소리지만 분명히 엄마 목소리다. 오빠들 방으로 뛰어 들어가 다락으로 통하는 벽장문을 열었다. 엄마다! 엄마가 벽장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양손에 고무장갑을 낀 채로.

    “엄마? 여기서 뭐해???”

엄마가 입술에 검지를 올려 조용히 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할머니 집에 계시디?”

대답 대신 엄마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아니 안 계셔, 집에 아무도 없어. 엄마 왜 여기 있는데?”

엄마는 “아이고” 얕은 신음을 뱉으며 허리를 펴고 일어나 벽장에서 내려왔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그날의 전말을 이러했다.

    “아이고~~~ 동네 사람들~~~!! 내 말 좀 들어보소. 이 육시랄 년이 시애미 굶어 뒤지라고 해가 중천에 뜨도록 밥도 안 주고는… 시방 나가 밥을 묵었다고 속여 싸소. 등짝에 붙은 내 뱃가죽 좀 보소.”


 우리 할머니는 치매였다. 온전한 정신일 때도 서슬 퍼렇게 시집살이를 시키던 할머니는 자신의 이름도 아들의 얼굴도 다 잊었지만 며느리 미운 것만은 잊지 않으셨다. 20대에 사별하고 홀로 키운 장남이 각별했던 만큼 며느리에 대한 미움도 유달랐다. 얄궂은 치매란 놈은 애중한 아들은 그리운 친정 ‘오빠’로 바꾸어 놓았으면서 며느리만큼은 무얼 해도 꼴미운 '아들 도둑'으로 남겨두었다.


  엄마는 할머니의 하루 세 끼만큼은 냉장고에 들어간 적 없는 새 국과 반찬으로 뜨신 밥상을 지어 드렸다. 그런데 그날은 점심을 드시고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마당에 나가 개 밥그릇을 발로 차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던 것이다.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내지르는 할머니의 분노가 쉬 가라앉지 않자 엄마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집 밖으로 나가셨다. 빨간 고무장갑을 낀 채 동네를 한 바퀴 돌고 할머니 몰래 벽장으로 숨어 들어가 상황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셨다고 한다. 엄마가 보이지 않자 할머니는 화냈던 사실을 잊으셨고 곧 쑥을 캐러 들로 나가셨다. 그 사실을 모르고 내가 집에 들어갈 때 까지도 엄마는 벽장에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12년간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 증세가 깊어질수록 엄마가 벽장에 숨는 일도 잦아졌다. 나는 가끔 상상하곤 한다. 캄캄한 벽장에 홀로 쪼그리고 앉아있던 엄마를 따뜻하게 안아드리는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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