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33분

by 김별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시각. 방안은 어둠이 짙게 깔려있다. 소리는 점점 커지다가 다시 작아진다. 세 번 반복되는 걸 보니 경찰차 세 대가 지나간 듯하다. 핸드폰 외부화면을 손끝으로 두드린다. 새벽 5시 33분. 이른 아침부터 무슨 사고라도 난 것일까 궁금해진다. 근방의 사건 사고를 알려주는 앱이라도 다운로드하여 찾아볼까 하다 귀찮음에 그만둔다. 다시 잠들기를 바라며 눈을 감는다. 점점 더 또렷해지는 의식. 오늘 하루의 컨디션을 위해 조금 더 자는 것이 좋다. 한참을 뒤척거리다 다시 시간을 확인한다. 정확히 30분이 흘렀다. 잠들긴 틀린 모양이다. 일어나 책상에 앉아 태블릿을 켠다.


매일 뭐라도 써보자던 새해의 결심대로 책상에 앉으면 일단 키보드에 손을 올려두긴 한다.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뒤죽박죽 엉킨 실타래의 가닥 끝을 잡아보려 애를 쓴다. 엉킨 목걸이 줄을 풀 때면 남보다 둔한 내 손을 탓하곤 하는데 생각의 실타래를 풀지 못할 때는 무엇을 탓해야 할지 모르겠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산책을 할 때도 글로 쓰면 좋겠다는 영감은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물고기처럼 불쑥불쑥 올라오곤 한다. 메모를 해두기도 하지만 막상 글로 써내려 하면 2,000조각 퍼즐 중 첫 조각을 들고 어디에 내려놓을지 모르는 사람처럼 당황스럽기만 하다. 이유가 무엇일까. 나 자신에게 수도 없이 물어본다. 마음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하나다. 용기. 솔직해질 용기, 내가 쓴 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용기. 나는 용기가 없는 것이다.


쓰려는 글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나를 드러내지 않고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글쓰기 초보일수록 자신의 경험과 감정이 글쓰기 주재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삶 속 아름다운 순간보다 아프거나 찌질한 시간 속에 더 많을 것이다. 그것을 거리낌 없이 꺼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글이 써질 것을 알지만 여전히 나는 부끄럼 타는 새색시 마냥 옹송그리고 있다. 자체 검열하여 어렵사리 꺼내 쓴 글도 누군가에게 보이려면 식은땀이 나곤 한다. 맨발에 잠옷바람으로 쇼핑센터에 걸어 들어가는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속살을 드러낼 용기만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 내 글을 받아들일 용기도 부족하다. 잘 쓰고 싶은 욕심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멋진 글들을 읽고 나면 나는 왜 굳이 재능 없이 글을 쓰려고 하나 의기소침해질 때도 많다. 걸음마 하는 아기가 뛰어다닐 생각을 하는 격이니 이런 욕심은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는 마음이다.


내가 애정하는 훌륭한 작가들은 대체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걸까?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어떻게 그렇게 농밀하게 포착할 수 있을까? 무엇을 읽고 어떻게 연단하여 자신만의 표현을 만들어 내는 걸까? 감탄과 감동의 독서 뒤에는 항상 쓰는 이의 자세에 대한 궁금증들이 밀려오곤 한다. 요즘은 조금 더 깊이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쩌면 그런 작가의 태도는 근본적 호기심이 필수 덕목일지 모르겠다. 그리고 호기심이란 자신 안의 세상과 외부의 세상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나는 나 스스로를 무심한 성향이라고 여겨왔다. 집중하는 것 외에는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내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것부터가 글쓰기의 시작점이 될 것 같다.


키보드 위에 올린 손은 몇 번 튕겨보지도 못하고 이렇듯 꼬리를 무는 생각에만 빠져있다 하루가 저무는 날이 다반사다. 오늘은 종일 무엇을 했던가 후회와 반성으로 점철된 밤이 많지만 쓰겠다는 의지만은 놓지 말자며 나 자신을 다독인다. 맛있는 장이 나오려면 숙성은 필수이니 아직 써지지 않은 내 글이 익어가는 시간이리라 여겨본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부으면 물은 모두 아래로 빠져나가 버리지만 콩나물은 분명 흘러 지나간 물로도 쑥쑥 자라난다. 내가 키우는 다육이나 호접난도 마찬가지다. 나도, 내 글도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물을 주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