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났어? 커피 한잔 할까? 내가 지금 갈게~’ 일 요일 아침, 눈을 뜨자 지인으로부터 문자가 와있었다. 유유하게 시작하는 아침을 선호하는 내게 갑작스러운 모닝커피약속이 선뜻 내키지는 않았다. 잠시 고민이 되긴 했지만 그녀가 이른 아침에 연락하는 일도 처음이기에 무슨 일일까 걱정이 되어 30분 후에 집 앞 카페에서 만나자고 답신을 했다.
정신을 차리고 간단히 씻은 후 근처 카페로 향했다. 아파트 모퉁이를 돌자 저만치 그녀가 보였다. 긴 머리에 검은색 점프 슈트를 입고 그녀는 상반신만 한 꽃다발을 들고 서있었다. 나를 보자 ‘서프라이즈~’ 하는 눈빛으로 활짝 웃으며 꽃다발을 흔들었다. 꽃 시장에서 바로 가져온 듯 길게 커트한 붉은 장미며 연노랑과 하양 보라가 섞인 리시안셔스, 보랏빛 스타티스 묶음들을 흰 종이로 둘둘 말아 그야말로 커다란 꽃다발을 한아름을 안겨주었다. 아무런 날도 아닌 일요일 아침 뜻밖의 꽃 선물을 받은 나는 정말 오랜만에 어린아이처럼 깡충깡충 뛰었다. 붕붕 날아갈 듯 좋아하는 내 모습에 그녀의 얼굴도 꽃처럼 활짝 피었다. “자기는 꽃 선물 할 맛이 난다니까. 이게 뭐라고 그렇게 좋아? 회사에 샘플로 들어온 꽃들인데 꽃 좋아하는 그대 생각나서 들고 왔어~” 그녀는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장을 보러 간다며 일어섰고 나는 싱싱한 꽃들을 품에 안고서 살랑살랑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찬장 가장 높은 칸에서 투명 유리 화병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장미용 다른 하나는 리시안셔스와 스타티스를 담을 요량이었다. 핏빛 장미들은 1미터는 됨직한 곧게 뻗은 줄기에 두 손으로 감싸야할 만큼 커다랗고 매혹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십 겹의 검붉은 벨벳 같은 꽃잎과 마호가니 색을 머금은 튼실한 줄기는 짙고 싱싱한 초록잎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식물에서 이런 관능미가 뿜어져 나오다니 볼수록 감탄이 나왔다. 목이 긴 유리 화병에 물을 담고 조심스레 장미들을 꽂아 창가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갑자기 거실에 생기가 도는 느낌이 들었다. 여리여리한 리시안셔스는 봄을 닮은 연노랑꽃과 보랏빛 테를 두른 하양꽃이 섞여있었다. 거기에 라벤더색 스타티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잘 어우러졌다. 스타티스의 한국어 이름을 찾아보니 ‘물결잎 해변 라벤더'라고 부른단다.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스타티스를 찰떡같이 표현하기도 했거니와 이름 자체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무튼 연노랑과 보라의 조합으로 완성된 싱그러운 화병은 피아노 위에 안착했다. 봄의 설렘을 담은 나의 작은 꽃들은 벽에 걸린 앙리 마티스의 플라워 마켓 그림 액자와도 잘 어울렸다.
집에 잠시 스쳐가는 꽃들이 들어왔을 뿐인데 일상의 변화는 작지 않았다. 우선 아침 리츄얼이 생겼다. 침실에서 나오면 꽃들에게 잘 잤는지 인사를 하고 화병에 시원한 새 물을 받아 넣어준다. 재미있는 건 내가 마음과 의미를 담아 꽃을 대하면 녀석들은 더 큰 에너지를 보내온 다는 사실이다. 스치듯 일별 하는 것과 가만히 응시하며 말을 걸어오는 상대를 꽃들도 알아차리는 것만 같았다. 두 손으로 탐스러운 장미의 얼굴을 닿을 듯 말 듯 감싸 안아본다. 여리한 리시안셔스들은 투박한 손놀림에 혹여 상처 입을까 만지기도 조심스러워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워낙에 막 피어나는 싱싱한 꽃들이었기에 며칠간은 화병의 물과 북향의 햇살을 받아 점점 더 해사해지고 풍성해졌다. 뿌리를 잃고 우리 집에 왔건만 여기서도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집안 작은 구석에 가만가만 호흡을 하는 생명체는 그렇게 집안의 에너지를 올리고 나의 마음도 정화해 주고 있었다.
일주일쯤 지나자 '물결잎 해변 라벤더'와는 먼저 작별을 고해야만 했다. 드라이플라워로도 즐기는 꽃이기에 물 없이 둔다면 더 오래 보았겠지만 이미 물에 닿은 줄기가 빨리 상해서 다른 꽃들에게도 해가 될 수 있었다. 아쉽지만 그동안 행복을 주어 고맙다며 떠나보내 주었다. 풍성한 스타티스가 가고 길고 얇게 뻗은 리시안셔스들만 남았지만 듬성한 여백의 미 또한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경이로운 것은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봉우리로 있던 아이들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수돗물에 영양이 부족했는지 하얀 리시안셔스의 보라색 테두리는 희미한 연보라에 가까웠고 송이도 아주 작았다. 색이 옅은 어린 꽃송이들은 막 태어난 아기처럼 나긋하고 청초했다. 자주 바라보았건만 가만히 있는듯한 봉오리들이 언제 움직이고 꽃잎이 벌어졌을까? 꽃이 피어날 때 소리가 들린다면 참 재미있을 것이다. 처마에 걸린 풍경이 산들바람에 살며시 흔들릴 때 나는 맑은 정동 같지 않을까? 물과 빛만으로 숨 쉬고 자라는 생명력이 놀라우면서 한편 꽃으로 태어난 이상 내 할 일을 다 하고 간다는 기특한 일념이 이 생명이 가진 의식인지 모른다 여겨졌다.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생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나는 내 할 일을 잘 해내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꽃을 보며 나 혼자 말을 거는 듯 보이지만 녀석들은 오히려 내게 질문을 던져왔다.
거실의 다른 한편에선 장미 화병이 전혀 다른 에너지를 내뿜으며 나를 사로잡았다. 사람이라면 우아하고 고혹적인 여신 같은 미모를 가졌을 것이었다. 꽃송이를 둘러싼 짙고 깊은 초록색의 꽃받침은 검붉은 장미를 더욱 돋보이게 했고 중세 유럽풍 드레스의 목장식을 닮아있었다. 곧고 반듯한 줄기에 돋은 가시는 뮤지컬 마타하리의 ‘내 맘을 조심해'라는 곡이 떠오르게 만들었다. 나의 아름다움은 꺾으라고 있는 게 아니라며, 조심하지 않으면 널 다치게 할 거라는 경고처럼. 이런 치명적인 매력이 장미가 가진 미덕일 것이다. 짝사랑에 빠진 남자처럼 나는 자꾸만 장미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가가 더욱 화려하게 피어나는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그러다 보니 장미의 느린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챘다. 일주일이 지나면서 조금씩 쇠락의 그늘이 드리우고 있는 것이었다. 가장 겉잎의 끝은 미세하지만 조금씩 검게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꽃잎에 혈관처럼 그려진 꽃맥들이 점점 도드라져 보였다. 마치 손가락엔 고랑이 파여가고 손등에는 자잘하고 불규칙한 마름모무늬가 짙어지는 나의 손을 보는 느낌이었다. 감정이입이 되어서일까 처음엔 그 변화가 애잔하여 더욱 자주 다가가 바라보았다. 그럴수록 불현듯 일어나서 점점 선명해지는 생각이 있었다. 시들어가는 장미지만 여전히, 그것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사실이었다. 온전히 살아내고 있는 장미의 생이 아름다웠고, 변할 수 없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스러웠다.
꽃들이 들어온 지 열 하루가 지나고 있다. 나의 아기 리시안셔스들은 마지막 힘을 다해 얼굴을 키우며 피어나고 있고, 야수의 아름다운 장미는 벨이 돌아오길 기다리듯 아직은 위엄과 자태를 잃지 않고 버텨내고 있다. 꽃이 땅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숨이 끊어질 만큼의 큰 시련이건만 기특하게도 제 몫을 단단히 해내고 있다. 그들의 제 몫이란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도 뽐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자라고 피우고 살아내는 것이다. 그것 만으로도 자연의 일을 하는 것이며 바라보는 인간에게는 행복과 힐링까지 선사해 주니 덕을 쌓는 존재라 할 것이다. 꽃을 화병에 이렇게 오래 두고 보는 일도 드물긴 했지만 더욱이 그로 인해 일렁이는 생각들이 이렇게나 다채로운 건 처음인 듯하다. 나이가 들면 꽃을 좋아하게 된다고 했던가. 이제는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젊음에 대한 노스탤지어도 있겠지만 꽃이 주는 진정한 위로의 메시지들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화병에 새 물을 갈아주며 아침을 시작했다. 부디 녀석들이 오늘을 힘껏 살아내기를 응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