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의 꼬순내

by 김별


장이 서는 날은 어김없이 눈치 작전이 시작되었다. 어떻게든 나를 떼어놓고 가려는 엄마와 무슨 일이 있어도 따라가려는 철부지 막내딸의 대결이었다. 장에 가면 작은오빠는 엄마 손을 놓고 사라지가 일쑤였고 나는 완구점 앞에서 장난감을 사달라며 생떼를 써댔다. 말 그대로 우린 장에 데려가면 안 될 요주의 인물들이었다. 그렇다 해도 세상 재미있는 곳에 엄마 혼자 가게 둘 순 없었다. 얻는 게 없더라도 신상 인형 옷을 구경할 수 있고 운이 좋으면 순대도 천 원어치쯤 손에 들고 올 수 있을테까.



엄마가 언제 출발할지 모르니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다. 집에 있으라며 단단히 호통을 치고 엄마는 장바구니를 들고 초록 대문을 나섰다. 순순히 물러날 내가 아니었다. 문설주 뒤에 숨어 엄마가 적당히 멀어질 때까지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잰걸음으로 따라나선다. 바삐 걸어가던 엄마는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며 확인하는 걸 잊지 않았다. 재빨리 몸을 숨겨 발각되지 않는 게 중요했다.



스릴만점 007 작전은 시장 입구에서 끝이 났다. 엄마가 갑자기 뒤돌아 서더니 내 쪽을 바라보고 서있는 게 아닌가. 나는 할 수 없이 내 발로 엄마 앞에 나 섰다. 혼날 각오를 하고 눈을 질끈 감았건만 따뜻한 손이 내 손을 꽉 잡았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고 시장으로 들어섰다.



장날은 어린 내게 마법과 같았다. 한적하던 읍내 거리에 파랑, 노랑, 주황 색색의 천막 지붕이 생겼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수많은 사람들로 흘러넘쳤다. 흥정하는 소리, 좌판의 음악소리, 다채로운 먹거리와 음식냄새들, 그야말로 오감을 자극하는 감각의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곳이었다.



엄마는 언제나 싱싱한 과일부터 골랐다. 정신이 아찔할 만큼 단내가 나는 복숭아, 햇살을 머금은 사과, 송이가 실한 포도, 마치 식품 검사관처럼 살펴보고 신중하게 골랐다. 무거운 수박만큼은 맨 마지막에 사곤 했는데 주인장 아저씨가 세모나게 구멍을 내어 떼어주는 조각으로 꼭 맛을 보고서야 값을 치렀다. 맛이 없으면 구멍 난 수박은 어떻게 될까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언제나 수박은 합격이었다.



들깻잎, 고구마순, 참나물 등 아빠와 할머니가 좋아하는 찬거리들을 사고 나면 다음은 생선장수 차례였다. 비릿한 냄새에 나는 코부터 틀어잡고 멀지 감치 떨어지는데 엄마는 생선 꼬리를 거침없이 집어 들고 요리조리 살폈다. 내겐 조금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살이 탄탄한지 보려고 손가락으로 생선을 꾹꾹 눌러볼 것이었고 생선장수가 기분이 썩 좋지 않은 날이면 큰소리로 화를 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날은 장사가 잘 되었는지 아저씨는 “ 오늘 고등어 물 좋습니다~” 하고 기분 좋게 소리쳤다. 아저씨는 엄마가 고른 고등어를 큰 칼로 척척 내리쳐 머리를 잘라내고 소금을 리듬 있게 뿌린 뒤 흰 종이에 휘리릭 말아 건네주었다. 이제 기다리리던 마지막 목적지로 갈 차례였다.



모퉁이를 돌자 꼬순내가 물안개처럼 밀려들었다. 내 몸에 붙어오는 비릿한 냄새는 이 진동하는 강렬함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묵직하게 대기를 가득 채우며 밀려든 꼬순내는 떡방앗간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짙어진다. 훗날 어느 포구로 밀려드는 짙은 안개를 보며 이 꼬순내를 떠올린 적이 있었다. 어린 내게 보이지 않는 진한 냄새는 그런 형상으로 남았던 것이다.



오후의 찐득한 온기를 실은 그 냄새가 그리도 좋았던 건 방앗간 옆에 동네 유일의 완구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떡이나 기름을 사는 동안 나는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눈부신 장난감들을 실컷 구경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나의 방앗간, 완구점은 유리창 너머로만 구경할 뿐 들어가진 않았다. 그건 나와의 약속이었다.



주 전 장 날 나는 새로 나온 인형옷 ‘미미의 웨딩드레스’를 사달라고 울며불며 졸랐었다. 엄마는 여느 때처럼 단호하게 안 된 다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양팔 가득 짐을 들고 앞 서 걸어가는 엄마의 뒤를 가짜 울음소리를 내며 걷는 둥 마는 둥 따라갔다. 저만치 걸어가던 엄마가 내게로 다시 걸어왔다. 이번엔 정말 혼나겠다 싶어 바짝 긴장이 되었다. 엄마는 나를 그대로 지나쳐서 장쪽으로 향했다. 엄마가 뭘 빠뜨리셨나 생각하며 뒤따라간 나는 완구점으로 들어가는 엄마를 보았다. 금방 되돌아온 엄마 손에는 하얀 미미인형 드레스가 들려있었다. 심장이 쿵쾅대던 순간이었다.



질질 끌던 운동화를 고쳐 신고 나는 한 걸음에 두 번씩 발을 튕기며 엄마를 따라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한 번씩 짐을 내려놓고 두 손을 허리에 짚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인형옷에만 정신이 팔려 마냥 즐거웠던 나는 엄마가 왜 하늘을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다. 집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인형 옷부터 갈아입힌 나는 이것 좀 보라며 신이 나서 주방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장바구니도 풀지 않고 식탁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손바닥을 위로 한채 무릎 위에 올려둔 구부정한 엄마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처참하게 눌린 손가락은 피가 통하지 않아 마디마디가 노랗다 못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엄마의 손을 보자 나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어쩐지 장난감 가게에 들러서 떼를 쓰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그건 나와의 약속이 되었고 다행히도 나는 그날의 약속을 잘 지켜내고 있었다.


꼬순내를 병에 가득 담아 온 엄마는 이제 집에 가자고 했다. 아쉬운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내게 엄마는 짠하며 따끈한 순대 봉투를 내밀었다. 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참을 수 없는 즐거움으로 붕붕 뜨는 발걸음을 조절하며 나는 엄마 뒤를 따라 집으로 향했다. 앞서가는 엄마에게서 폴폴 꼬순내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