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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Dec 23. 2021

봄날

복순의 편지 

 복순은 발코니에 서서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고 있다. 햇살이 꽃잎에 닿아 반짝이며 부서진다. 춤추듯 빙글빙글 짝을 지어 날아다니는 하얀 나비 떼를 바라보는 복순. 그녀는 지금 검은색 무명치마에 흰 저고리 고름을 팔락이며 봄날의 꽃밭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9살 소녀다. 눈을 감자 풀꽃 향기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 어머니~ 봄바람이 아직 차요. 그만 들어오셔서 진지 드세요.”


 눈가에 깊이 팬 주름 사이사이 웃음을 가득 머금고 복순은 천천히 뒤돌아 본다.


   “으응 언니, 꽃향기가 참 좋아. 내가 꽃반지 만들어 줄게.”

   “네~ 어머니, 꽃반지는 다음에 저랑 만들러 나가시고 어서 식사부터 하세요.”


복순은 큰며느리 은영의 손에 이끌려 거실 식탁에 앉는다. 지친 듯 무표정한 은영은 고된 일상에 눈이 퀭하다. 은영은 복순의 목에 턱받이를 둘러준다. 소고기 뭇국에 밥을 말아 한 술 떠 입으로 솔솔 불어 복순의 입에 넣어준다. 이가 거의 없는 복순은 잇몸으로 오물오물해서 받아 삼키고 배시시 웃는다.


   “맛나다 언니야.”


 복순이 이렇게 어린아이가 된 것은 12년 전이다. 막내 딸네 집에 가서 하룻밤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딸이 엄마가 되었고 아들은 오빠로 보였다. 시집온 지 몇 해 되지 않아 남편을 잃고 평생을 줄담배를 피우며 살아온 그녀의 혈관이 더 이상 버텨주질 못 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늘 우울하던 복순은 치매가 걸린 후 입가에 항상 미소가 걸려있다. 그녀의 우울함이 가족들에게로 옮겨간 것이 비극일 뿐이었다.


 복순이 오늘처럼 9살 소녀일 때는 상황이 조금 나은 편이다. 그녀가 타임머신을 타고 더 어린 시절로 내려가는 날이면 은영은 그녀의 대소변을 치우는 일까지 도맡아야 했다. 며칠 전에는 흙장난을 치고 놀던 흙 강아지 시절로 내려갔는지 온 방에 손으로 그림을 그려 놓아 가족들을 경악시켰다. 그것이 흙이었으면 좋았으련만. 복순이 가지고 논 흙은 그녀의 기저귀를 비집고 나온 변이었다.


 은영은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고아로 자랐다. 복순은 그런 은영이 안쓰러워 시집온 첫날부터 그녀를 딸보다 더 아껴주었다. 복순 덕분에 태어나 처음으로 가족의 온기를, 엄마의 사랑을 느꼈다. 그런 시어머니가 쓰러졌을 때 은영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진심을 다해 복순을 돌봤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녀의 육신과 영혼을 태우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이제 그만 가셔도 괜찮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 그런 자신이 혐오스러워 세차게 도리질을 치곤 했다. 착한 은영도 이미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였던 것이다.

   

   “당신, 우리 어머니가 어떤 어머니인지 몰라서 이래? 홀어미로 얼마나 고생하며 살았는지 아느냐고! 어떻게 장남인 내가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데 어머니를 누님한테 맡길 수가 있어! 저 불쌍한 양반이 사시면 얼마나 사신다고, 당신 정말 그럴 수 있어? 당신한테 얼마나 잘하셨는지 다 잊은 거야?”


   "12년이에요. 나도 할 만큼, 아니 그 이상 어머니께 해드렸다고요. 우리 형준이 고삼인데 올 한 해만 좀 작은 형님네 집 가 계시라고…그 정도도 못해요? 당신은 나나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느냐고요. 나도 숨을 쉬어야 아이도 챙기고 엄마 노릇을 하죠.”


 올해 고삼이 된 큰아들은 매일 아침 첫 차를 타고 학교에 간다. 아침과 도시락을 챙겨주려면 은영은 새벽 네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잠이 없는 시어머니가 수시로 안방 문을 두드려 쪽잠을 잔 지 십 년이 넘었다. 그녀는 언제나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완강하게 반대하는 남편을 설득해 올 한 해 만이라도 시골에 있는 작은 형님네 집으로 모시기로 했다. 불평 한마디 없던 은영도 이번만큼은 목소리를 낸 것이다. 오늘 복순이 내려간다.


 은영이 꼼꼼하게 챙긴 짐가방을 트렁크에 싣는다. 현관에 서있는 복순에게 새 신을 신겨주고 옷깃을 단단히 여며준다.
   

“언니야, 같이 가자.”

   “어머니, 잘 다녀오세요. 형님네 가면 마당 안에만 계시고 혼자 밖에 나가시면 절대로 안 되세요. 형준이 수능시험 끝나면 모시러 갈게요.”

   “언니는 안가?”

 

복순은 두 눈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은영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는다. 은영은 시어머니에게 잡힌 손을 살며시 빼내며 복순을 차에 태운다. 복순은 차창 밖으로 은영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본다. 은영도 남편의 차가 골목을 벗어날 때까지 바라보며 서 있다.


 은영은 묘한 감정에 빠져있다. 그녀의 원대로 잠을 더 잘 수 있었고 세 아이들을 더 살뜰하게 챙길 수 있었다. 마트에서 장 보는 손길도 여유로워졌고 집안일을 하며 허둥대는 일도 없어졌다. 그런데 뭔가 빠져있다. 집안에 감도는 텅 빈 느낌. 은영의 가슴에도 구멍이 생긴 듯 바람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뒷짐을 지고 콧노래를 부르며 서성이는 복순이 보이지 않아서 일까. ‘언니야’를 수도 없이 불러대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일까…


 은영은 까치발을 들고 선반에서 손님용 접시 세트를 꺼낸다. 오늘은 먼지 쌓인 찬장을 반짝반짝 닦아볼 요량이다. 시원찮은 손목으로 여러 장 포개어진 접시를 내리려니 쉽지 않아 그녀의 팔이 떨린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쨍그랑’

 핸드폰 벨 소리에 놀란 그녀가 휘청하면 접시들이 손에서 그대로 미끄러져 조리대 위로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다.

   “아얏.”

발꿈치를 딛자마자 깨진 조각에 찔려 피가 흐른다. 조심조심 발을 옮겨 겨우 안전한 장소까지 빠져나왔다. 은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식탁 위에 핸드폰을 집어 든다. 작은 형님이다. 은영은 잠시 서늘한 느낌에 숨을 고른다.

   

   “형님, 전화하셨어요?”

   “올케!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어떻게 해 엄마가 없어졌어.”

   “네?” “아니 어쩌시다가요?”

   “분명 마당에 있었는데… 잠깐 부엌에서 불 좀 보다가 나왔는데 안 보여.”

   “온 동네를 다 찾아봐도 없어.”

   “경찰에 신고했어. 형준 아범 전화를 안 받으니까. 올케가 회사에라도 얼른 연락해봐.”


 복순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은 동네와 인근 야산까지 뒤졌고 근처 도시에도 협조 요청을 보내고 전단을 배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은영은 복순이 사라진 것이 자신 때문인 것만 같아 한 달째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있다. 휴직을 신청하고 시골에 내려가 어머니를 찾아 헤매던 남편은 입술이 부르튼 채로 올라왔다. 손에는 은영이 들려 보낸 가방과 어머니의 신발 한 켤레가 들려있었다.


 은영은 시어머니 방으로 들어가 자신이 쌌던 복순의 가방을 열었다. 옷들을 모두 꺼내 한 벌 한 벌 정성스레 손으로 다시 곱게 개켜 서랍에 넣는다. 빈 가방을 장롱에 넣으려는 순간 살짝 열린 앞주머니 사이로 접혀있는 종이 끝이 보인다. 은영은 종이를 꺼내 펼쳐본다. 은영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복순이 쓴 편지였다.



아가

울지 말아라.
이 편지를 보고 있다면 너는 벌써 눈물부터 차오르겠지.

여리고 착한 우리 며느리.

이 말은 해주고 싶었다.

네 탓이 아니다.

그러니 울지 말고 웃으며 살아라.

무뚝뚝한 아범에 온전치 않은 나까지

시집와서 네 편 하나 없이 고생만 한 우리 며느리

내가 진즉 가야 했는데

이제야 가는구나.

나는 이제 여한이 없다.

나 홀로 자식들 다 키워 손주들도 보았고

온전치 않은 세월도 은영이 네 덕분에 호강하고 살았다.

고맙다 아가.

아범에게도 네 형님들한테도

더 이상 나 찾지 말라고 전해라.

은영아.

네 손 한번 잡아주고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

아가

울지 말고

웃으며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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