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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Dec 20. 2021

가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마구 두드려 댄다. 마치 문을 열라는 아우성처럼 들리는 듯도 하다. 작은 구슬들은 유리창을 강타하고는 힘 없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그 모양새를 구경하고 있는 게 퍽 재미있다. 어쩐지 내가 안전한 곳에 있는 것 같아 으쓱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슬슬 배가 고파온다. 엄마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매일 거기서 거기인 메뉴를 내놓지만 엄마는 끼니때를 좀처럼 놓치는 법이 없다. 


 밤 운전이 어설픈 엄마가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하려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왜 이제 왔냐며 엄마에게 볼멘소리를 하려고 달려 나갔다. 현관문이 열렸다. 엄마가 나를 향해 웃고 있다. 그런데 진회색 원피스 차림에 손이 새하얗고 코가 발그레한 여자아이와 함께였다.


   “인사해, 오늘부터 얘가 네 동생이야.”  

   “네가 오빠니까 앞으로 잘 돌봐줘야 한다.”  


 엄마에게 배신감이 밀려왔다. 갑자기 동생이라니. 동생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단 말인가? 어떻게 나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동생을, 그것도 여동생 따위를 데려올 수 있단 말인가. 갈색 빛을 띤 눈동자에, 발그레한 얼굴, 나만 보면 방긋거리는 그 아이의 모든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저 녀석에게 나는 달착지근한 냄새도 싫었다. 나는 충격으로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나는 강제로 오빠가 된 것이다.   동생이란 녀석은 눈치도 없고 막무가내였다. 내가 가는 데만 졸졸 따라다녔다. 내가 방으로 들어가면 방으로 따라오고, 거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꼭 내 옆에 와서 앉았다. 내가 먹는 건 뭐든 자기 입에 넣어야 직성이 풀렸다. 내가 아끼는 물건들도 함부로 가지고 놀았다. 나는 엄마가 안 보는 틈을 타 녀석을 때때로 쥐어박아 주었다. 가끔은 아프게 깨물어서 울리기도 했다. 이 녀석은 확실히 훈육이 필요해 보였다.   


 나는 사실 외동인 것이 좋았다. 커다란 창밖으로 하늘, 새, 구름처럼 흘러가고 움직이는 것들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적막한 우리 집도 좋았다. 엄마가 사주는 장난감, 맛있는 음식 모두 다 내 차지였다. 나만 보면 엄마는 행복해서 어찌할 줄 모르는 미소를 짓곤 했다. 이제 그 모든 것을 저 시끄럽고 귀찮은 녀석과 나눠야 한다. 제일 화가 나는 건 엄마가 나보다 저 녀석을 더 챙길 때이다. 어제저녁 메뉴는 내가 제일 애정 하는 연어회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생선회 앞에선 사족을 못썼다. 엄마도 그런 나를 생각해 한 점도 먹지 않고 내게 주곤 한다. 그런데 이 꼬마 녀석이 내 생선회에까지 손을 대는 게 아닌가. 나는 당연히 엄마가 못 먹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는 웃으며 내 몫의 생선회를 먹기 좋게 잘라 녀석의 밥그릇에 담아주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집을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엄마가 저녁 설거지를 하는 틈을 타 말없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그냥 발길이 닫는 대로 돌아다녔다. 땅만 보며 이리저리 걸었다. 발에 걸리는 것은 걷어차고 발아래 보이는 벌레들은 모두 짓밟아 버리며 화풀이를 해댔다. 두 시간은 흐른 것 같았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팠다. 엄마가 나를 걱정하며 울고 있을지도 몰랐다. 마음 약한 엄마가 울고 있을 걸 생각하니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새 나는 우리 집 문 앞에 서 있었다. 귀를 기울여 보았다. 조용하다. 엄마는 내가 집을 나간 것도 모르는 걸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쓰레기봉투를 양손에 든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마는 쓰레기봉투를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소리를 지르며 나를 번쩍 들어 안았다.


 “사피야!!!!!”


 나는 눈물을 참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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