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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oved Sep 06. 2021

님아, 내 침낭을 넘어오지 마오…

아프리카에 세스코보다 강한 녀석이 등장했다!

모든 사람들은 경험담을 늘어놓길 좋아한다.

(나도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겠지?)


좋은 제품의 간증글은 구매를 불러오고, 리뷰와 후기 알바생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아묻따(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구매각 리뷰어를 만나는 순간, 쇼핑 유목민에서 벗어나게 되기도 한다.


에티오피아를 방문하려는 사람이라면 준비해야 할 필수템이 하나 있다. 이건 수많은 경험자들의 간증에서 나온 이야기니 꼭 기억해 두길 바란다.


아이템명: 비오킬.

이걸 어디에 쓰냐고?


에티오피아에 도착하면 만나게 되는 손님과의 손절용이다.


눈에 잘 보이지 않아 피할 수도 없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 불청객.


바로 벼룩이다.


에티오피아를 다녀온 수많은 간증자들이 나에게 겁을 주었다.


“야..진짜 장난 아니에요!! 옷 솔기 라인을 따라 무는 거 있죠!”

“너무 간지러워서 피가 날 때까지 긁다가 지쳐 잠든다. 여기 이거 다 벼룩 물린 자국이야!”

“코끼리 다리처럼 부어올라서 신발이 안 들어갈 지경이었다니까요!”

“속담이 진짜야! 벼룩은 집을 불태우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더라.”


에티오피아에 세스코가 있다 한들, 벼룩에게는 당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에티 출장을 다녀온 열이면 열, 무자비한 벼룩 떼의 공격에 패전 소식만 가지고 귀국하던 어느 날,


우리 회사에 구세주가 등장했으니, 그녀의 이름은 L.


현지 사업장을 돕기 위해 수개월을 체류해야 했던 L은

초창기에 다른 간증자들과 같이 벼룩의 공격에 무참히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한국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지 않던가.

벼룩의 공격을 막을 다양한 약품을 공수하여 친히 본인의 삶에 임상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살신성인의 자세로 변수를 바꿔가며 테스트를 거듭하던 그녀는 어느 날 유레카를 외친다.


비오킬.

이 약품을 뿌리기 시작하면서 기세 등등하던 벼룩의 위세가 꺾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그녀는 치열한 전투의 훈장처럼 온몸에 수많은 벼룩 물린 흔적이 남았지만 이 기쁜 소식을 만방에 알려야만 했다.


비오킬 전도사가 된 그녀의 간증으로 에티오피아팀에게 비오킬은 필수템이 되었다.


그녀의 임상실험 출장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 팀도 무시무시한 벼룩을 필적하기 위해 1인 1 비오킬, 휴대용 비오킬, 차량 비치용 비오킬, 비상용 비오킬, 현지 선물용 비오킬 등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에티오피아에 도착하자마자, 팀 이동차량 시트에 일제히 비오킬을 기관총 쏘는 것 마냥 난사했다. 현지인 드라이버에게는 미안했지만, 엉덩이가 축축해지는 것보다 벼룩과 동승하지 않는 것이 더 나았기 때문이다.


숙소에서도 조금이라도 가려우면 벼룩일까 봐 깜짝깜짝 놀래기 일쑤였다. 벼룩은 어디에선가 나타나면 번지는 건 순식간이니까.


팀이 머물던 센터의 숙소는 기숙사처럼 침대가 있는 방이 여러 개였는데, 우리는 그 매트리스에 비오킬을 뿌리고, 말라리아 모기를 막기 위해 쳐둔 모기장에도 뿌리고 모기장 안에 있는 침낭에도 뿌려두었다.


약의 성분이 친환경이라 안심해도 된다, 안된다 말이 많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열흘 동안 얼마나 벼룩에 덜 물리느냐가 관건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공통의 룰을 정했다.


1. 한번 외부에 입고 나간 옷은 비닐에 밀봉해서 절대 꺼내지 않는다.

2. 의심 갈 만한 장소에 앉거나 만진 경우에는 씻기 전에 방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3. 자기 전에 무조건 모기장 > 매트리스 > 침낭 순서로 비오킬 분사를 실행한다.


별다른 문제없이 며칠을 보내는가 싶었는데…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팀원의 발목이 이상하다.

바지 옷 솔기를 따라 빨갛게 부어오르는 것이 수상한데…!


즉시 청문회에 회부되어 하루의 일정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아침에 방문한 곳은 뿌리고 앉았고,

이 때는 앉아 있지 않았으니 아닌 것 같은데…

.

.

아!


교육봉사활동 현장에서 만난 작은 꼬마 아이들과의 따뜻한 포옹…!

천진난만한 아이들©beloved



원인을 찾았다.

그러나 누구도 무어라 더 말할 수는 없었다.


사랑스러운 그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함께했던 그 시간.

벼룩에 물려도 안아줄 수밖에 없었을 그 시간.


그날은 그저,

벼룩님아, 이 침낭을 넘어오지 마오…

되뇌며 잠을 청해야 하는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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