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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oved Sep 11. 2021

크레파스 한 ‘개’의 행복

크레파스 36색을 끝까지 써본 적이 있나요?

크레파스가 집에 없었던 사람이 우리 중에 있었을까?


어릴 때도, 각자 나름의 사정이 있었던지라...


어떤 친구는 18색, 어떤 친구는 24색...


어느 날, 반 아이가 가져온 크레파스가 36색이라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금색, 은색 크레파스가 있다는 것에 두 번 놀라며 신기해했던 기억.


그래도, 크레파스가 없는 아이는 없었던 것 같다.

있는 색도 다 쓰지 못한 채 천덕꾸러기처럼 집안을 굴러다니다가 버려지기도 했었던,

크레파스에 대한 기억.




에티오피아 봉사활동 전 사전모임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활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름 봉사팀의 교육활동은 주로 아이들이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 활동을 함께 하거나, 몸으로 재미있게 놀아주는 시간일 때도 있고, 사업장의 필요에 따라 이벤트성의 교육을 실행하기도 한다.(위생교육: 예를 들자면, 손씻기, 칫솔질하기 등)


놀이터나 놀잇감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시골의 아프리카 아이들에게는 생전 처음 보는 외국인을 만나는 것도 신기하고, 그 외국인들이 가져온 신문물(?)은 더 신기한 일이었다.


준비한 활동들은...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게임, 신나게 춤추며 놀 수 있는 율동들.

함께하는 줄넘기, 공차기,

그리고 자신의 꿈을 그려보는 미술시간.


크레파스가 생각보다 부피와 무게가 많이 나갔기 때문에, 수량을 넉넉히 가져갈 수가 없었다. (종이도 현지에서 공수했다.) 그리고 활동할 때 쓰고 남은 크레파스를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기는 조금 미안해서 고민이 되기도 했다.

결국 미술시간에 사용한 크레파스는 아이들과 활동을 마치고, 수업에 쓰도록 학교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미술시간을 준비하며 꿈꾸던 장면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몇 명이 손을 들고,
손을 든 몇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기대감을 나눈다.
앉아있는 아이들에게 종이를 나눠준 다음 그림을 그려보게 하고, 십여분이 지난 뒤 잘 그린 아이들이 그림에 대한 설명을 발표하며 서로의 이야기에 박수를 친다.


와 같은 어느 국제구호단체 홍보영상에 나올 법한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질서교육이라는 것을 받아보았을 리 만무한 이 아이들은...

이민가방에서 꺼낸 이 신문물이 눈앞에 펼쳐지자, 갑자기 흥분하면서 백여 명이 서로 먼저 가지려고 앞다투어 몰려들기 시작했다.


팀장도 처음이라 이럴 줄은 몰랐던 우리 팀.


달려들어 크레파스를 너도 나도 손에 쥐고 달아나는 아이들을 보며 멘붕에 빠진 우리를 보더니,

급기야 현지 학교 선생님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을 통제하기 시작해서 겨우 진정을 시켜주셨다.


현지 학교 선생님이 우리에게 요청했다.


"Just one crayon for one!"


엥? 크레파스를 1개씩 주라고?

여러 색을 써보고 싶을 아이들의 마음을 실망시킬까 봐 5초 정도 망설였지만, 그것 외에 답이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학교 선생님의 말이 옳다는 건 이미 10분 전의 상황으로 체감이 되었다.


여러 개 쥐고 있던 아이들의 손을 펴게 해서, 1개씩 공평히 쓰게 하고 종이도 한 장씩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곧 조용해지며 하얀 종이 위에 자신들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자기에게 준 한 가지 색만으로 그림을 그리며 서로의 그림을 구경하다 키득키득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여러 색을 바꿔가며 그리는 우리의 어린 시절 모습과 비슷하고도 많이 달랐다.  


아이들이 본 직업 자체가 많지 않아서, 꿈은 대부분 의사, 경찰, 운전사, 목사 등이었던 것 같다.

네 꿈은 경찰관이로구나! :) ©beloved

그림 그리기를 마친 후에 학교 선생님은 가지고 있던 크레파스 1개를 '선물'로 주었다.

간혹 큰 아이들이 빌런이 되어 작은 아이들 것을 뺏는 모습도 보이긴 했지만...

마치 크레파스 48색(18색이 아니다...) 세트를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손에 쥐고 돌아가는 아이들.


아마, 이 아이들 생에 처음 가져보는 크레파스일 것이다.


크레파스 1개로 저렇게 행복해할 수 있을까?


빈곤의 삶보다 더 악한 것은 행복해하지 않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비교하며 느끼는 그런 행복 아니라,

그 순간과 그 자체를 만끽하고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순수한 행복.


에티오피아 시골 학교에서,

그런 행복한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우리 팀이 오히려 배워야 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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