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의 커피 부심
카페에서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를 마셔본 사람?!
나는 흔한 아메리카노도 마시질 않았던 사람.
대학생 때, 박카스 두병에 이틀을 꼬박 새우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했던 나는....
이 두근거림이 박카스를 건네준 동아리 선배 때문이 아니라 카페인이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안 뒤로 커피를 아예 끊고 살았다.
에티오피아를 가기 전까지는.
에티오피아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센터로 가는 길은 약 N시간이 걸렸다. 중간중간 쉬어주면서 가야 했기 때문에 현지 드라이버는 우리를 휴게소 비슷한 곳에 내려주었는데 거기 카페가 있었다.
카페에서 현지 스태프인 K가 마끼아또를 주문했다.
아니, 아메리카노도 없을 것 같은 시골 카페에 마끼아또가 있다고?
이윽고 카페에서 작은 잔에 마끼아또를 내왔다.
에스프레소잔 크기의 유리잔에 우유와 커피, 황설탕을 그득 넣어주는 에티오피아식 마끼아또.
커피를 안 먹는 나는 5초간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커피의 본고장에 왔는데, 한 잔은 마셔봐야겠지?'
와..... 이건 뭐지?
엄청 달달한 에티오피아 마끼아또는 정말 맛있었다.
가격은 우리나라 돈으로 500원이 채 안 되는 돈이었지만, 뭐랄까, 원산지의 존재감이 느껴지는 커피맛과 순수한 우유맛(사실은 설탕을 아주 많이 넣어서인지도 ㅎㅎ).
한 잔 먹고 난 팀원들은 다들 맛있다며 더 주문을 하고 싶어 내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내가 환전한 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하)
에티오피아의 첫인상이 이리도 맛있는 커피라니...!
아직 인젤라를 맛보기 전이라서(하하) 커피 애호가들은 에티오피아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센터에 도착해서, 짐을 대강 정리하고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온 현지 관계자를 만나러 또 다른 카페를 방문하였더니, 커피 세러모니가 준비되어 있었다.
에티오피아서는 손님을 대접할 때 이 세러모니를 볼 수 있는데, '분나'라고 부른다.
이 분나는, 꽤나 정성스럽다.
1. 먼저 연둣빛 생두를 솥뚜껑처럼 생긴 무쇠판에 볶는다.
2. 생두가 다크 초콜릿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원두를 절구에 넣고 빻는다.
3. 빻은 원두가루를 물과 함께 입구가 좁은 전통 주전자인 제베나에 넣은 뒤 화로에 올려서 끓인다.
4. 팔팔 끓은 커피물은 가루가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위의 물만 작은 잔 여러 개에 따라서 설탕과 함께 대접한다.
제대로 하는 분나 세러모니는 시작할 때 풀잎을 깐 위에 화로를 올리고 송진을 태워서 향과 연기를 피운다. 송진향과 연기는 무언가 근사한 서막을 알리는 신호 같고, 생원두를 볶고 빻는데서 나는 커피 향은 참으로 향긋하다.
이 과정을 보여주는 링크가 있어서 올려본다.
http://getabout.hanatour.com/archives/607152
이런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으니, 에티오피아는 커피에 진심인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늘 눈이 크고 빼짝 마른 아이들이 황무지에서 처연히 앉아있는 구호단체 광고만 보다 왔으니…
차를 타고 가면서 펼쳐진 푸르른 나무가 가득한 산과 찰진 진흙길은 우리의 예상을 한참 빗겨나간 풍경이었다.
특히나 에티오피아는 커피가 처음 발견된 곳.
산등성이 고산지대에는 커피나무들이 가득했다.
어떤 맛일지 궁금해서 커피 생두를 따서 살짝 깨물어보았다. 음, 그냥 쌉쌀한 풀 맛이군. ㅎㅎ
커피농장에서 듣게 된 이야기들.
푸르른 산에 자라는 커피콩들은 가공 공정을 거쳐서 대부분은 수출된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페셜티 원두들은 현지인은 구경도 할 수 없다며, 에티오피아인들은 커피농장에서 뼈 빠지게 일해도 벌이는 너무나 작다고 했다.
괜히 공정무역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 게 아닐 게다.
고산지대는 생각보다 쌀쌀했다. 더울까 봐 냉장고 바지에 얇은 반팔티를 입은 우리는 저녁이 되자 축축한 한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커피에 진심인 이 나라에게, 그 긍지를 빼앗아버린 어느 소비국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예상하지 못한 이 날씨만큼 마음이 스산하고 눅눅해졌다.
에티오피아의 가장 맛있는 원두를 이들이 먼저 음미하는 날이 오게 될까?
휴게소 작은 커피잔에, 향기로운 분나 안에 있는 이들의 진심과 자부심의 값어치.
그 값을 지불할만한 나의 진심과 존중이 있는지 마음의 지갑을 열어보게 되는 아프리카 깊은 산 속, 깊은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