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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oved Sep 26. 2021

동그란 꿈을 꾸는 아이들

희망을 차올리는 아프리카의 “꿈”들

에티오피아 동네로 들어가면, 남자들이 하릴없이 길거리를 서성이거나 반쯤 풀린 눈으로 삼삼오오 모여서 무언가를 질겅질겅 씹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로 환각성분이 강한 카트 잎.

https://www.yna.co.kr/view/AKR20190829146600009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는지 모른다.


"아니, 멀쩡한 사지를 가지고 뭐라도 해서 먹고살지, 왜 일을 안 하고 그렇게 다들 놀고만 있어?"

"일은 안 하고 원조만 바라고 있으니… 이러니까 아프리카가 못 사는 거야~!"


거기에 먹고살기 위해 쉴 새 없이 집안일과 소일거리를 하는 여자들을 보게 되면 부아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

.

.

허나,

일하고 싶어도 일이 없다.


자원이 풍부해도 그것을 가공할 산업이 없고, 그나마 있는 자원도 각종 외국 자본들로 인해 헐값에 빼앗기고 있는 실정이었다.


무엇이라도 해서 먹고살고 싶어도, 먹고살 길이 없는 곳이 바로 아프리카였다.




그랬던 에티오피아 작은 동네에 생긴 기이한 일을 들려주고 싶다.  

(아래 내용은 예전에 했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이다.)


어른들을 따라 흐리멍덩한 눈으로 카트 잎을 씹던 동네 청소년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줍는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


동네의 사고뭉치였던 아이들이 갑자기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겠다고 하는 소문을 듣고 시에서도 이 아이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는 어떻게 된 일일까?


시작은, 이 작은 동네에 찾아온 한 한국 청년의 마음이었다.  


봉사팀으로 방문했던 에티오피아의 이 지역 소년들과 마지막 날 치른 축구시합을 통해, 아이들이 가진 열정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을 위해서 자원봉사로 코칭을 하고 있던 현지 감독의 헌신에 깊은 감동을 받았던 것.


아무런 지원 없이 아이들을 훈련하던 현지인 코치의 열정에 마음이 움직인 청년은 무엇을 도울 수 있을지 물었고, 코치는 운동하는 아이들은 발육이 중요하니 훈련을 마친 후 식사라도 제공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3개월 뒤 다시 휴가를 내어 방문했을 때, 청년은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다.

그저 매주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해 주었을 뿐인데, 아이들은 그 한 끼의 지원에 충분히 만족해하며 아무도 보지 않지만 훈련을 쉬지 않았다고 한다.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초점도, 꿈도, 희망도 없는 인생의 쳇바퀴를 돌던 어른들을 따라가지 않고,

희망을 차올리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은 동그란 꿈이 되어서 청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청년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현지 담당자와 함께 유소년팀을 꾸려 아이들을 훈련하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팀이 가진 목표는 아이들이 단순히 축구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게 하는 것이기에, 훈련 프로그램에 마을을 청소하는 봉사활동을 준비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본 어른들도 깜짝 놀랐겠지만,  

아이들 스스로도 생애 처음, 다른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을 것이다.

그 경험은 아이들의 자존감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아이들은 이제 커서 좋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 대학에 가서 좋은 코치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아이들은 더 이상 카트를 씹지 않는다.


이 축구팀의 이름은 테스파, 에티오피아 암하라어로 '희망'이라는 뜻이다.




내가 인솔한 팀에게 한국본부가 준 미션은 이 테스파 팀 아이들과 함께 친선경기를 하고, 축구팀 장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만남의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정말 날래다! 날아다닌다! ©lorday

처음 축구장에서 아이들의 경기를 보니 에티오피아인들은 피지컬 자체가 축구를 위해 태어난 것 같았다.


긴 다리, 날랜 몸, 스피드, 집중력... 말해 뭐하랴.

게다가 커피가 자라는 지역들은 고산지대가 많아서, 푸르른 산과 언덕들도 많다.

높은 곳에서 달리며 살았으니, 폐활량도 이미 축구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이다.


처음 만나보는 외국인과의 경기인지라, 아이들은 텐션이 오르고 신이 나서 더 펄쩍펄쩍 뛰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온 아저씨, 청년, 청소년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지만, 다리 길이가 거의 2배인 아이들과 승부를 겨루기는 무리수였다.


이후 축구팀 장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하면서, 굽이굽이 산길을 제대로 된 신발조차 없이 걷고 있는 아이들의 발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거의 무너질 것 같은 낡은 집안에서 만난 가족들.

우리를 향해 너무나 환하게 웃어주셔서, 안쓰러움과 반가움으로 마음이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했다.  

어머니 판박이었던 축구팀 주장 :) ©lorday


'우리 아들을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눈가가 촉촉해지는 반가운 얼굴이 말해주는 깊은 감사.


축구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아드님이 최고였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어두컴컴한 세간살이는 이제 보이지 않고,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미소만 환하게 마음에 남았다.




축구팀 아이들은 지금 다시 보아도 감동이다.

사진 속의 아이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있겠지.

이 중 얼마나 그 꿈을 이뤘을까 생각해본다.


'꿈'

생각만 했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꿈"

입 밖으로 뱉어내기 시작하고 두드리기 시작했을 때 열리는 기적을 경험했기를 바란다.



그런 기적을 경험해서, 내가 아프리카에 갔던 것처럼.







- 에피소드 1. 에티오피아 마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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