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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헤라자데 Jul 19. 2019

지금 이 순간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 내일은 태풍이 불어닥쳐 비바람이 더욱 거세질 거라고 한다.

그런데 태풍이 불어닥칠 내일 나는 소개팅이 잡혀 있다. 가족들은 모른다. 말 그대로 비공개이고 단지 언니만 알 뿐인데 언니의 조언은 이랬다.

" 남자가 소심하다고? 야 그러면 그만 둬라. 그게 잘 되겠니?"

정말 소심하신 분인 것 같다. 그저 주선자가 날짜와 만날 장소 시간을 알려줬을 뿐 난 아직 소개팅남의 이름도 연락처도 알지 못한다. 이런 경우도 흔치는 않은 것 같다.


전에는 소개팅이나 맞선 때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멋진 남자가 나와줄거라고. 물론 아가씨의 백일몽은 항상 내가 깨버리거나  상대방이 깨버리거나 둘 다 퉁치거나 하는 식이었다.

혼기를 훌쩍 넘긴 나는 비혼주의자는 아니다. 인연이 닿는다면 ... 나와 맞는 사람이 인연이 된다면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마지막까지 뭐랄까 희망의 끈은 놓지 않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진 점이 있다. 만약 둘 다 서로를 너무나도 싫어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상대방도 동의를 한다면. 서로 여자사람친구, 남자사람친구로 남아서 어쩌다 생존 신고를 하며 대화를 나눌수도 있고 생각에 공감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무리를 지어다니기 보다는 항상 일대일 관계를 중요시 했으며 숫기도 없고 낯도 많이 가렸던 나는 이성관계도 빵점이었다. 그래서 후회되는 점이 있다면 어렸을 때 -20대- 좀 더 많은 남자사람친구를 만들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이성간에 친구가 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아니 결코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신념은 확고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내 신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물론 사교성 좋고 마당발인 사람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나는 내심 그런 점이 부럽기도 했지만 나와는 딴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나만의 벽을 쌓고 살았던 것이다.


내일 나는 거의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나이는 안다. 나랑 동갑이란다-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언니의 조언처럼 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소심한 사람인걸. 소심남녀끼리 뭔가 통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물론 소심하다고 다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난 내일 남자사람친구 한 명 사귈 수만 있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상대방은 어찌 생각할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사람 사귀는 데 소극적이고 서툴렀던 나에게 내일은 하나의 모험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은 최근에서야 든 생각이어서 다른 때와는 달리 별로 부담이 없다. 과거 소개팅이나 맞선은 이건 이래야 해 저건 저래야 해 라며 결론은 해피한 결혼으로 끝나기를 바랐기에 스트레스도 엄청 받았으니까.


지금은 담담하다. 너무나도 담백해서 태풍이 온다고 하는데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내일 입을 치마자락이 비바람에 너무 펄럭거리면 어떡하지? 라든가. 머리가 부스스하면 어떡하지?라는 등등 옛날 같았으면 노심초사했을 그런 부분들이 그냥 술술 풀리는 것 같다.

과도한 상상도 하지 않고 정말 친구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미래는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있지만 그럼으로 인해서 무슨 일이든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태풍이 몰아칠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글쎄...

그저 고요히 미소를 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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