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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헤라자데 Jan 19. 2020

햇병아리 예비 간호조무사 이야기

1.간호조무사가 되려고 마음먹기 전에  

작년2019년 나는 점차로 피폐해 지고 있었다. 나이는 39세 ,미혼 ,보습학원 학원 강사를 마무리. 별다른 재주도 별다른 취미도 별다른 재능도 없었던 나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내가 생각한 인생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내 인생 내 마음대로 흘러가주지 않는구나'라는 탄식이 내 마음에서 절로 솟아나왔다. 


대학때 전공은 국어교육과 철학교육 .그리고 30대에 접어들어 심리 상담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심리학을 학점 은행제로 공부해 학사학위를 받았다. 또 사서가 되어 도서관에서 근무하면 나에게 딱 맞을 것 같아 대구에 있는 계명대 사서교육원까지 가서 준사서 자격증을 땄다. 

나름 열심히 살았고 또 박봉이지만 월급을 모으고 모아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했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취업은 어려워졌고 점점 나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70대로 접어드신 부모님, 공부한답시고 통장을 탈탈 버리고 , 결혼을 약속할 만한 연인도 없고 , 건강도 점차로 안 좋아졌다. 30대 중반이 되자 핑계를 대자면 나잇살이라고나 할까 20대때보다 10킬로그램 이상이 찌고 말았다.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여성병원을 찾아갔더니 자궁 선근증 , 내막증 진단을 받았다. 이 상태에서 더 심해지면 자궁을 적출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너무 무서워진 나는 그날밤 펑펑 울었다. 나는 여자로서는 끝인가? 지금 당장 어떡해야 하지? 돈도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건강은 나빠지고... 항상 이런 대목에서 나는 나 자신을 미워하고 증오했다. 


내가 죄를 많이 지었나봐... 왜 통증이 심해질때 어서 빨리 병원에 가 보지 않았지? 이 미련 곰탱아. 이러니까 내가 직업도 없이 이 나이에 요모양 요 꼴로 살아가지. 등등 수없이 나 자신을 탓했다. 

심적으로 고통스러워서 냉담 중이었던 성당에 찾아갔다. 미사도 드리고 기도도 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탓에 성당도 혼자서만 다니고 모임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결국 2019년 5월에 복강경 시술을 받기로 했다. 수술 전날 밤 나는 알라딘 ost중에서 존박과 박정현이 부른 '아름다운 세상'을 반복해서 들었다. 그렇게도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는 성당을 다녔기에 -나일롱 신자지만- 뭔가 하느님의 섭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다음날 2시간에 걸쳐 복강경 시술을 마치고 1인실로 들어갔다. 5일정도 입원을 한 후 퇴원을 했다. 


곧 여름이 다가왔다. 취업성공패키지로 컴퓨터 ITQ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폴리텍 대학에서 하는 편집 디자인을 배웠지만 나에게는 정말 어려운 과목이었다. 잘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서 배우기 시작했지만 점점 자신감이 떨어졌다. 그리고 취업이 잘 될지도 알 수 없었다 . 


여름이 거의 지나갈 무렵 나는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뭘 먹고 살아야 하지? 라는 대명제가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독서와 글쓰기였지만 초보 수준이었고 그것으로 먹고 살길은 딱히 당장 보이지 않았다. 

가을이 거의 되어갈 무렵 부모님으로부터 간호조무사를 해 보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우울함과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기에 뭔가 시도를 다시 해본다는 것도 힘들었고 간호조무사 일이 나에게 맞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또 있었는데 바로 나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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