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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헤라자데 Jul 15. 2021

블랙스완으로 부활하다

어느 오리의 날아오르는 꿈의 이야기.

“어이구 , 그 좋은 머리로 왜 그렇게 일처리를 못하는 거야? 다시 해와. 이번엔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거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가져와. 알았어?!”

 여기는 간호조무사 실습중인 한 요양병원의 병동. 나는 여전히 서열 2위인 한 간호조무사에게 혼나고 있었다. 정말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꾹 참고 목의 잠김도 눈치채지 못하게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거지? 검체실에 제대로 심부름을 갔고 검사 결과가 안 나왔다는데 어쩌라는 것인가. 내가 임상병리사 선생님 대신 검사를 해가지고 와야 한다는 것인가? 벌써 다섯 번째 병동과 검체실을 왔다갔다 해서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뻐근하다. 

  다른 간호사 선생님, 간호조무사 선생님들은 각자 자기일을 하느라 바빠서 이 일에 참견할 겨를이 없어 보였다. 항상 이런 식. 서열 2위 간호조무사는 성격이 매우 강하다. 항상 ‘매의 눈’으로 나를 지켜보다가 특히 조금이라도 버벅거리거나 실수를 하면 비꼬거나 핀잔을 주고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태움’이라는 것일까? 

 간호사 밑에 간호조무사, 간호조무사 밑에 실습 학생 이라는 말을 버젓이 하고 다니는 성격 강한 ‘그녀’는 다시 한번 더 나를 윽박질렀다. 

내 나이 마흔이다. 스무살이었다면 좀더 창피함과 굴욕감이 덜했을까? 도대체 왜 이리 나를 싫어하는 거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커피도 ‘그녀’의 사물함에 몰래 넣어두고 최대한 비위를 맞춰봐도 나에 대한 싸늘한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했다. 더 이상 상종하지 말자. 어차피 나는 실습만 끝나면 된다. 그런 ‘못된(?)’ 마음을 먹은지 오래 되었다.

 다시 한번 검체실에 가 보았다. 임상병리사 선생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 왜 내려왔어요?”한다. 내가 “ 000환자 결과를 알아가지고 오라고 하셔서요. 아직 결과가 안 나왔나요?”라고 공손히 물어보자 임상병리사 선생님은 “ 000환자가 아니라 *** 환자 결과라고 전화가 왔어요. 그건 병동에 전화로 알려 줬어요 .”

 뭐? 뭐라고? 순간 온몸의 열이 얼굴과 머리로 뻗치는 것이 느껴졌다. 2인자 ‘그녀’가 환자 이름을 잘못 가르쳐 놓고선 나에게 윽박지른 거야? 뭐 이런!

 병동으로 다시 올라가서 ‘그녀’얼굴을 마주보니 으이구...‘그녀’가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 어.그거 내가 아니라 다른 간호사 선생님이 잘못 알려준거야. 내가 아니야. ”그러면서 갑자기 냅다 자리를 뜬다. 살찐 엉덩이를 뒤룩뒤룩 거리면서. 꼭 오리 같다. 미운 뚱땡이 오리. 꽥꽥 거리며 소리지르는 것도 미운 뚱땡이 오리랑 똑같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하면서 나에게만 눈을 흘긴다. 퇴근하기 위해 평상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병원 문을 나섰다. 눈물 방울이 툭. 왜 이래 못나게. 그래도 난 오늘 최선을 다했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보지만 그래도 서럽고 슬펐다. 나는 미운 오리새끼다. 혼자 실습생으로 와서 한 병동의 바이탈과 BST, 드레싱 세트 설거지, 소독 , 물품 정리 , 그 외 잡다한 일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의 존재감은 없다. 나중에 취업해서도 그럴까? 낯을 가리고 내성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묵묵히 내 할 일을 하고 있는데... 

 그래. 처음 실습 들어 왔을 때부터 조짐이 있었다. 간호학원에서 나랑 스무살 동기 한명이 같은 요양병원으로 실습을 나가게 되었고 그 어린 동기와는 다른 병동에 배치됨으로서 잘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간간이 들려 오는 소문에 의하면 “ 예쁘고 ” “상냥하며” “싹싹하고 ” “일도 잘한다”여서 “여간 이쁨 받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에 반해 나는 첫날에 들어왔을 때 선생님들끼리 쑥덕거리는 소리를 들었는데 “ 늙은 애가 왔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 그 어린 애가 왔으면 분위기도 더 밝고 좋았을텐데”란 말까지 덧붙여서 들었다. 미운 오리새끼 정도가 아니라 미운 늙은 오리였던 것이다. 

그래도 일을 성실하게 하면 인정받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특히나 2인자 ‘그녀-뚱땡이 오리-’는 자신의 파워를 과시하며 나를 미워했다. 점점 주눅이 들다 보니 긴장이 되어서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어서 빨리 실습이 끝나는 날만을 기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양병원에 계시는 어르신들에게는 최대한 친절하게 해드리려고 노력했다. 치매 걸리셔서 계속 소리지르시는 어르신 , 나를 예뻐해 주시는 어르신 , 나를 배려해 주시는 어르신, 식사 보조때마다 한숟갈이라도 더 떠먹여 드리고 싶어 있는 아양 , 없는 아양을 부렸더니 눈물을 흘리시면서 진지를 드시며 고맙다고 하시는 어르신, 사탕과 과자를 한움큼 쥐어주시면서 “학생 훌륭한 간호사 선생님 돼어야 해”라면서 용기를 주시는 어르신 등등이 계셔서 이 “ 미운 늙은 오리”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셨다. 

 2인자 뚱땡이 오리 그녀는 그런 것도 탐탁치 않아했다. 어느날은 한 할머니께 바이탈을 재 드리면서 “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 곳은 없으세요?”라고 여쭙자 “응. 여기 저기가 아픈데 특히 다리가 아파”하며 고마워 하시며 말씀해 주셨다. 그 사실을 간호실로 들어와 말을 하자 2인자 뚱땡이 오리 그녀의 왈“ 다시는 환자들에게 그런말 쓸데없이 물어보지 마.”라고 내뱉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뚱땡이 오리 너, 나 계속 구박하지. 하지만 난 당신같은 간호조무사는 되지 않을거야’라고.

  어느 순간 부터는 내 소신 껏 어르신들을 대했고 간호사, 간호조무사 선생님들을 도울 수 있는 깜냥껏 일을 했다. 성실하게 일을 하자 “보잘 것 없는 미운 늙은 오리”에서 조금씩 나를 달리보는 선생님들이 많아졌다. 칭찬도 가끔씩 들었고 어쨌든 일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병원일이 돌아가는 흐름을 배웠다.

  ‘난 오리가 아니야. 겉으로는 별볼일 없이 보여도 난 오리가 아니야.’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딱히 우아한 흰 깃을 날리는 백조처럼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기사 백조도 수면위의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기 위해 수면 속에서는 정신없이 발로 물길질을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 노력없이 되는 것이 어딨겠어. 세상에 공짜란 없는거야. 다 나 하기 나름이지. 이런 식으로 나를 다독이며 조금씩이라도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실습 마지막 날 모든 선생님들의 수고 많았다는 소리를 들으며  배웅을 받았다. 그리고 실습 인정서에 병원도장 직인과 실습일지 싸인을 받아야 해서 간호과장님께 갔다. 간호과장님은 나에게 실습 점수 100점을 당연히 주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코멘트도 칭찬받는 훌륭한 학생이었다고 적어주셨다.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드렸는데 간호과장님께서 간호대를 가 보는 것은 어떠냐고 하셨다. 그러면서 한 대학 실명까지 거론하시면서 그 쪽 대학을 가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간호대를 가라는 말씀에 갑자기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다. 정말 ? 내가 ? 허당에 맨날 혼나기만 한 내가 간호사를? 그러나 이미 오리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오리의 꿈이랄까. 오리도 그 존재자체로서 빛이 난다. 하지만 난 오리로는  지겹도록 있어봤다. 그렇다면? 좀 더 나 자신을 사랑하면 어떨까? 용기를 내면 어떻게 되는 걸까? 

 1년이 시간이 흘렀다. 나는 현재 간호과장님이 말씀하신 그 대학의 간호학과 만학도 신입생이 되어 벌써 한학기를 마쳤다. 41세 만학도 신입생. 정말 내가 나 자신을 보기에도 ‘맨땅에 헤딩하기’는 용감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1학기 성적이 좋아서 다행히 성적 장학금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살벌한 경쟁에서 생존한 것이다. 나는 오리가 아니다. 특별한 백조다. 그렇다.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모든 것을 이겨낸 특별한 존재 바로 흑조이다. 흑조는 완벽한 존재는 아니지만 그 자체로 온전하다. 그러면 된 것이다. 흑조는 힘차게 날아오를 날개도 갖고 있으며 우아하게 자태를 유지하며 수면 아래로는 노력하는 외유내강의 용기있는 특별한 새이다. 미운 늙은 오리에서 흑조로 다시 부활하다니 정말 나 자신이 대견하다. 하지만 누구나 이렇게 될 수 있다. 진정성 있는 태도와,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용기를 갖고 있다면 말이다. 오늘도 이 흑조는 멋지게 하늘을 비상해 본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말이다. 블랙스완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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