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헤라자데 Feb 22. 2020

햇병아리 예비 간호조무사의 이야기 6

아니 이게 뭔 소리야. 

이론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공부를 하면서 -정말?- 애를 많이 먹었다. 

두꺼운 이론책이 5,6권이 있었고 백과사전 두께의 문제집도 받았다. 수업 방식은 선생님이 이론 설명해 주시고 우리가 해당 과목 문제집을 풀고 정답과 오답정리 해주시면 체크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어휴...

나는 해부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학창시절에도 나는 문과생이었다. 국어, 사회, 영어(?)는 좋아했지만 특히나 수학, 과학등등은 머리가 아파오고 이해도 잘 안되고 흔히들 말하는 이과생은 아니었다. 그런데 해부학이나 다른 과목들도 뭔가 딱딱 떨어지는 그런 느낌의 과목들이었다. 


처음이라 이럴거야 . 조금 지나면 나아지겠지. 했는데... 초반에는 이게 뭔 소리야 하는 소리가 절로 -마음 속으로 - 나왔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ㅎㅎㅎ ㅠㅠ

그리고 다른 과목들도 하나 둘씩 해 나가면서 안 하던 공부를 하려니 머리가 아팠다. 

수업 시간은 오전 9시 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였다. 그 중에 점심시간이 12시 50분 부터 오후 1시 30분이 있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이 짬짬이 있었지만 ~ 맨땅에 헤딩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내가 결심한 것은 수업시간만큼은 졸지 말자였다. 커피를 워낙에 좋아하기도 해서 몇잔씩 마시기도 하던 나였다. 다행히 학원 휴게실에 커피 머신이 있어서 커피를 마음껏 마실 수 있었다. 

그래. 일단 이론 설명해 주시는 것 졸지 말고 빠짐없이 적고  나중에 막판에-언제 할라구 ㅜㅜ- 바짝 공부하자가 나의 계획이었다. 어차피 실습 갔다오면 다 잊어버리지 않을까? ㅋㅋ 라는 안일한 생각과 함께~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판이었다. 내 옆의 짝꿍 언니도 절대 졸지 않으셨다. 50대 초반의 배려심 있고 상냥한 분이셨는데 정말 정신력으로 오후 시간에도 절대 졸지 않으셨다. 옆분단의 40대 초반의 언니도 절대 공부를 놓지 않으셨다. 매일매일을 복습하고 질문을 하는 등 우리반의 진정한 에이스였다. 한마디로 나는 양 옆으로 좌청룡 우백호를 두고 든든하게 공부할 환경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놓치는 것은 언니들에게도 물어보고 선생님들에게도 여쭤 보았다. 그렇다고 내가 모범생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 나는 무늬만 모범생이었다. 


복습은 하지도 않고 수업시간에만 집중하자라는 것이 나의 결심이었는데... 솔직히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과거 학창시절에도 중간 정도 성적이었고 항상 그래왔다. 그나마 대학교 들어와서 조금 정신을 차렸던 것이지. 그래도 총 학점 평균이 4.0을 넘지 못했으니 뭐 나는 학구적인 머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20대 때는 조금 기억력이라도 있었는데...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정말 헷갈리고 놓치는 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니었다. 거기다 체력도 어찌나 방전이 되던지 오후 시간에도 수업을 듣다가도 유체이탈을 하기 일쑤였다. 몸은 의자에 영혼은 저 안드로메다 행성으로 ~~~ 헤드뱅잉을 하지 않기가 다행이었다.


웃픈 이야기지만 담담히 고백한다. 공부도 때가 있음을... 나는 미혼이기에 살림도 하고 육아도 하면서 공부도 하는 언니들이 대단했다. 그리고 더 어린 친구들도 나름 열심히 집중력 있게 바짝 공부하는 모습도 보면서 대견했다. 한마디로 나만 제일 못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ㅜㅜ


그러면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데 학원에서 3시 30분에 끝나면 재빨리 집으로 오거나 아니면 다른 일처리를 했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인간관계가 협소해서 " 나 약속있어서 공부 못해"란 새빨간 거짓말을 죽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렇다. 공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거였다. 그래도 주변의 귀감이 되는 언니들과 동생들을 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9월 중순에 시작하고 가을이 깊어지고 서로들 친해졌다. 

마침 내 앞의 20대 어린 친구가 있었는데 귀여운 아이가 두명이나 있는 주부였다. 그런데 아직 결혼식을 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나는 짝꿍언니 , 에이스 언니, 그리고 우리반에서 가장 활발하고 쾌활한 20대 초반의 어린 친구랑 같이  10월에 있는 앞에 앉아 있는 그녀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기로 했다. 

ㅎㅎ 우리반에서 가장 활발하고 쾌활한 그 어린 친구가 축가를 불러주기로 했고 나머지 세명도  하객으로 청첩장 받고 하객으로 참석해서 늦게나마 올리는 결혼식을 축하해 주었다. 아 왜 내가 감동이었을까? 

다른 사람을 꽃길만 걸으시라고 축복해 주는 것은 정말 마음이 따뜻해 지는 느낌이다. 아이들도 귀여웠고 웨딩 드레스를 입은 어린 친구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녀는 일주일간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우리가 일주일간 필기를 잘 해 놓을 테니 걱정말라고 말했고 -그런데 분량이 너무 많아서 어린 그녀는 나중에 필기 쓰느라 힘들어 했다 - 그렇게 우리들은 서로 친해졌다. 


나는 일단 공부는 뒷전이었지만 그래도 사람들과 서서히 친해지면서 정을 나누는 것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또 그게 사람 사는 맛이 아닐까 싶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이지만 내가 융화가 될 수 있었으니 다른 저 같은 분들도 혹시 이 글을 보시고 간호학원 망설이신다면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내가 꼭 이 구역의 마당발이 되겠다는 과욕만 부리지 않는다면...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무조건 입조심!!!!을 잘 한다면 잘 지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렇다. 상대방에 대한 불평불만 그리고 비밀은 꼭 지켜줘야 한다. 나는 그냥 뭔 소리를 듣더라도 내가 돌부처니라 나는 아무것도 들은 것도 없고 본 것도 없으니 말할 것도 없습니다라는 자세로 지냈다. 편견일 수도 있지만 여자들만 있는 곳이라 소문이 빨리 돌고 또 눈덩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불어나서 말이 도는 때도 있다. 그런 것만 조금 조심하면 문제 없다. 문제는 공부다 ㅎㅎㅎ.


작가의 이전글 햇병아리 예비 간호조무사의 이야기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