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논다면 노는 인간. 돌발상난청 때문에 3주 휴가 쓰고, 쉬어야 하니까 일주일에 한 번만 사람 만나야지 결심해놓고는 딱 일주일 지켰다. 2주차부터는 하루에 한 번씩 노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하루에 3탕씩 뛰는 날도 있을 정도로 미친 듯이 놀았다. 이런 진심 한량 생활의 절정은 엠티였다. 지난달에 강원도 놀러 가서 만난 동생의 연애 얘기를 들으면서, 야! 나 같으면 헤어진다! 파혼해! 하고 일갈했더니 레알로 파혼하는 바람에 형이 잘못했어. 술 왕창 사줄게 하다가 주변에 실연당한 동생들이 여럿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이렇게 된 이상 엠티 가자고 양주의 펜션을 잡았다. 가재 잡는답시고 세숫대야에 고등어 대가리 넣어서 계곡 넣어둔 다음, 신나게 고기 굽기 시작해서 턱 근육이 며칠 동안 아플 정도로 먹었다. 목요일이라 펜션에 우리 말고 아무도 없어서 방에서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고 파혼과 실연의 아픔을 잊어가다가, 잘 노는 동생들을 버려두고 새벽 2시에 집에 돌아왔다. 왠지 모르겠지만, 진통은 새벽에 걸리는 게 국룰이더라고. 공교롭게도 그날 바로 진통이 걸리지는 않았는데 다음 날 새벽에 강력한 가진통이 찾아와서 비상 대기 상태가 되었다. 덕분에 친한 동생 결혼식도 못가고, 친구네 회사 구내식당에 밥 먹으러 가기로 한 계획 등등을 모두 접고 마누랭구랑 오순도순 일주일 지냈다. 가보고 싶었던 막국수 가게도 가고 스콘 가게도 갔다. 일주일 동안 강력한 가진통도 가끔 있었고, 배도 무척 내려왔고, 애기도 주수보다 잘 크고 있어서 당연히 예정일보다 일찍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자연 진통이 걸리지 않았다. 애기를 좀 일찍 낳고 싶은 산모들은 예정일 한 달쯤 전부터는 열심히 걷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데, 우리는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인 듯싶다. 35주 쯤 애기가 옆으로 있었다. 횡아라고 하는데, 이 때 진통 걸리면 수술해야 한다. 자연분만할 수 있으면 좋고 수술 하더라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하고 싶지 않아서 진통 걸릴만한 일들은 피했다. 애기는 35주에 횡아였다가 36주에 돌아왔다가 37주에 다시 횡아가 되었다가 38주에 다시 원래대로 돌았다. 산모가 함부로 나다닐 엄두를 못낼 빙글빙글이었다. 마지막으로 38주에 초음파를 봤을 때는 위치가 정상에다가 예상 무게도 3.5kg 정도 되어서 내 휴가의 끝물인 38주 5일차에 유도 분만을 잡았다. 그런데 애기가 5일 만에 또 빙글 돌아서 횡아가 되어있었다. 유도 분만일에 혹시나 횡아나 역아로 있으면 수술하기로 했는데, 애기가 분만법을 정한 셈이다. 둘째의 태명은 '뿌리'인데, 엄마한테 좀 잘 붙어 있으라는 뜻으로 지었다. 빙글빙글 도는 걸 보니 태명을 지은 보람이 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수술을 집도하신 의사선생님께 들어보니 자연적으로 내려올 기미가 전혀 없었다고 하셨다. 일주일마다 빙글빙글 돌 정도로 엄청 활동적인 태아였는데, 잘 붙어있으라는 부모의 염원을 잘 듣고 엄마 뱃속에서 떠날 생각 없이 지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대견했다.
첫째를 자연분만으로 낳을 때 마누랭구가 하도 고생해서 수술이 조금 반갑기도 했다. 흔히 자연분만하면 고통을 일시불로 겪고, 수술하면 할부로 겪는다고 얘기한다. 두 출산법에 고통 총량 차이가 별로 없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이왕 할부를 하게 되었다면 일시불보다 기술을 걸 여지가 많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즘은 일반적인 진통제뿐 아니라 페인 버스터 같은 신기술이 많이 출시되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덜 아픈 건 다 해달라고 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상처를 좀 더 잘 아물게 해주고 흉터도 덜 생긴다는 메디터치라는 제품이 있는데, 아래층 약국에서 사 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좋은 거면 그냥 알아서 써주면 안 되나? 암튼 사오라 하시니 사왔다. 물건을 간호사 선생님께 건네드리고 기다렸다. 수술까지는 두 시간 정도 기다렸는데 시간이 금방 갔다. 산모님 나오세요. 여태 아기 심장박동을 측정하는 기계를 달고 누워있었는데 막상 수술실에는 걸어들어갔다. 마누랭구가 점점 멀어지면서 수술실의 초록색 자동문이 열렸다. 안에선 이것저것 정리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문이 닫히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는데 수술대로 걸어가던 마누랭구의 뒷모습이 사진처럼 눈에 남았다. 밖에서 기다리라길래 나갔는데 병원 복도 인테리어 공사하고 있어서 엄청 시끄러웠다. 감히 화장실도 못 가고 긴장 타고 앉아있다가 애기 보러 오라고 할 때 오줌 마려울까봐 다녀왔다. 기다리는 동안 판타지 소설 읽는데 눈에 전혀 안 들어왔다. 공사 소리 때문에 정신이 산란해서 그런지 시간은 금방 갔다. 20분쯤 지난 거 같은데 애기 태어났으니 탯줄 자르러 오라고 불렀다. 탯줄 안 잘라도 된다고 했는데 전달이 잘 안되었나 생각하면서 들어갔다. 태지가 잔뜩 묻어있는 둘째 딸이 누워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탯줄 자르기 좋게 잡아주셨다. 애기가 이렇게 금방 태어난 게 믿기지 않았다. 현실감은 없었는데 탯줄 자르는 손은 조금 떨렸다.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는 좀 추워 보였고 울지 않았다. 애기 보여주시던 선생님이 순한 애기 같다고 하셨다. 손가락, 발가락, 눈, 코, 입, 쇄골, 척추 다 있는 거 확인하는데도 안 울었다. 건강하게 나와주어서 다행이었지만 큰 감동은 없었다. 나의 부성애는 왜 이리도 희미한가. 둘째와 정드는 데는 또 얼마나 걸릴까. 애정을 모으러 갈 마음이 까마득했다. 배를 가르고 누워있을 마누랭구가 계속 걱정이었다. 횡아 수술하면 배를 많이 째야 한다는데 괜찮을지. 회복은 또 얼마나 힘들지. 물어봤더니 애기를 안아보지도 못하고 잠들었다고 한다. 봉합 수술 중이고 괜찮을 거라고 했다. 지시대로 병실에 가서 기다렸다. 나름 좋다는 입원실을 잡았는데 문도 삐걱거리고 방도 좁고 집기도 충분하지 않았다. 한 시간 30분 정도 기다렸더니 마누랭구가 침대에 실려왔다. 뒤지게 아파 보였다. 아프고 힘 없어서 손가락 하나 까닥 못했다. 똑바로 누워서 베개도 못 베고 끙끙 앓았다. 코로나 시국으로 애기를 맘대로 못 보는데, 저녁때쯤 30분 정도 애기를 데리고 있을 수 있다고 해서 데려왔다. 마누랭구 옆에 눕혀줬는데 눈과 손을 못 떼고 30분 내내 너무 예쁘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예쁘진 않고 그냥 몹시 작고 귀여운 정도에 불과한데 모성애는 참 신기했다.
오늘은 애기가 태어난 지 이틀째인데 병원이 잘 관리해 준 덕분에 내가 할 일이 많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항생제 주사도 때마다 놔주고, 진통제 주사도 8시간마다 놔주고, 오로 패드도 3~4시간에 한 번씩 갈아주고, 혈압도 재고, 하는 게 많았다. 나는 궁금한 거 좀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심심할 때 말동무 해주고, 시설팀에 얘기해서 병실 문을 고친 정도로 별 일없이 느긋하게 지냈다. 그나마 좀 잘한 일은 협상을 잘해서 딸랭구를 자주 데려온 정도다. 병원에서는 코로나 때문인지 신생아를 입원실에 데려오는 걸 상당히 제한하고 있지만 모유 수유에 도움 된다면 그래도 협조해 주는 편이었다. 오늘은 마누랭구가 아픔을 참으면서 열심히 걸어 다녔다. 빠르게 회복하려고 무척 노력중이다. 횡아 수술해서 상처도 커서 많이 아팠을 텐데 너무 대견하다. 얼른 말끔히 나아서 하나도 안 아팠으면 좋겠다. 금요일에는 마누랭구랑 둘째를 조리원에 데려다주고 첫째랑 둘이서 여행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