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와 불면
아침 7시에 잠이 깼다. 기록적으로 잠을 설쳤다. 딸랭구랑 싸우느라 마음이 많이 상해서 그런가부다. 딸랭구의 앵앵 우는 모습이 아른아른하고 꿈에도 잠깐 나온 것 같다.
캠핑 다녀온 덕분에 푹 자고 일어났다. 딸랭구도 아침부터 에너지가 넘쳤다. 파주에 또 놀러 가자고 난리였다. 세상에서 파주가 제일 좋단다. 파주는 너무 머니까 좀 가까운 곳으로 가자고 했더니, 아빠랑 점프점프하는 곳에 가서 우와우 하자고 했다. 예전에 동네 카페에 있는 트램펄린에서 뛸 때, 딸랭구가 누워 있으면 그 옆에서 우와우 하면서 뛰었다. 그러면 딸랭구는 내가 뛸 때마다 누운 상태로 튕겨 올라오는데, 트램펄린 위에서 튕겨 다니는 느낌이 재미있었나 보다. 그 놀이를 우와우라고 부르면서 자꾸 해달라고 한다. 아침 간단하게 챙겨 먹고 딸랭구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딸랭구랑 트램폴린 하는데 힘이 많이 달렸다.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놀았다. 마누랭구가 잠깐 교대해 주어서 커피를 마시고 에너지를 보충했다. 커피는 무지막지하게 맛없었다. 밀크티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날씨가 좋아서 아이 데려온 엄마들이 많았는데, 그 누구도 나처럼 애랑 미친 듯이 뛰고 있지 않았다. 애들은 대부분 친구들이나 형제들과 놀고 있었고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놀았다. 부러웠다. 우리 딸랭구는 이사 온 데다가 코로나의 여파로 어린이집 친구들과 교류하기도 힘들어서,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했다. 그 때문에 요새 딸랭구의 사회성 발달이 좀 걱정이다. 세 살짜리 애기가 엄마한테 안겨서 트램펄린에 들어왔는데 반갑다고 미친 듯이 뛰어 댕기는 우리 딸랭구가 무서워서인지, 엄마 품에서 내려보지도 못하고 돌아갔다. 도저히 못 뛰겠다 싶을 때쯤 마누랭구가 밤 주워보라고 꼬셔서 딸랭구랑 같이 트램펄린을 벗어났다. 씨알이 굵은 밤들만 주웠는데도 딸랭구 두 손 가득하게 모았다. 점심 먹을 때도 되었고 밤도 다 모았으니 집에 가자고 데려갔다. 그때쯤엔 카페에 손님이 아주 많았다. 힙한 엄마들이 여유롭게 의자에 앉아서 맵시 있게 선구리 끼고 커피 한 잔 홀짝이고 있으셨다. 마누랭구가 보면서 부럽다고 했다.
점심땐 마누랭구가 끓여준 된장찌개를 먹었다. 차돌박이가 한 움큼 들어가 있어서 아주 맛있었다. 딸랭구는 반찬 투정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딸랭구의 반항은. 딸랭구는 낮잠 자고 일어나서 본격적으로 지랄을 틀기 시작했다. 매사에 말 안 듣고 화내고 짜증 냈다. 하도 사사건건 지랄해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딸랭구를 호되게 혼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밥을 잘 먹겠다고 약속해놓고서는 김을 가져다 달라느니, 뭐가 있어서 싫다느니, 엄마가 먹여달라느니, 엄마 요리하지 말고 이리 와! 어쩌고 저쩌고 짜증을 내길래 식판을 치워버렸다. 그랬더니 밥 잘 먹겠다고 난리 쳤다. 가만히 앉아서 밥 잘 먹기로 약속하고 다시 줬더니 또 지랄 떨어서 다시 치웠다. 그랬더니 의자에서 쿵쿵거리면서 소리 지르고 난리를 피웠다. 쿵쿵거리지 말라고 했더니 쿵쿵거릴 거야!! 하면서 더 뛰길래. 그냥 강제로 의자에서 꺼내서 방으로 데려갔다. 세상 무서울 것 없이 날뛰다가도 나랑 둘이 방에 들어오면 무서워한다. 딸랭구, 너는 아빠랑 밥 잘 먹기로 약속한 거 안 지켰지만, 아빠는 네가 짜증 내면 밥 치운다고 약속한 걸 지킬 거야. 아빠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야. 그래서 넌 오늘 저녁밥 없어. 무표정으로 조용조용하게 말해줬다. 딸랭구가 훌쩍훌쩍하면서 잘못했어요. 짜증 안 부릴게요. 밥 잘 먹을게요. 원래 화도 못 참고 짜증도 못 참는 애기가 참는 모습을 보니까 맴이 찢어졌다. 아빠는 약속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런데 랭구한테 밥을 주면 아빠는 약속을 지킬 수 없어. 랭구가 아빠 대신 약속 지킬 거야? 했더니 약속 지킨단다. 그래서 아빠가 약속 어기면서 밥 주는 거니까 너는 약속 꼭 지켜야 한다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엄마한테 먹여달라고 하지 않고 반찬 투정 않고 먹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밖에 나가서는 엄마 붙잡고 쪼끔 앵앵 울고 내 눈치 보면서 의자로 올라갔다. 올라가서도 내 눈치를 보면서 엄마한테, 아직 짜증이랑 화가 많이 있어. 짜증이랑 화를 안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면서 울지도 못하고 울상만 지었다. 그 모습이 너무 맘 아파서 잠들기 전에 계속 생각났다. 나도 화가 많은 타입이라 가끔 못 참고 화낸 다음 비슷한 자책에 빠지는데, 우리 딸랭구도 그랬다. 우리 딸랭구는 아직 어려서 감정이 뭔지도 잘 모르고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는 더더욱 모를 텐데 혼만 내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주지도 못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 랭구는 약속을 잘 지켜서 혼자서 밥을 잘 먹었다. 마누랭구는 애기가 기특하기도 하고 가엾기도 했는지, 밥도 본인이 조금 먹어주고 반찬도 조금 먹어줬다. 그랬더니 슬슬 엄마가 먹어줘 어쩌고 하려는 기미를 보여서 눈을 부릅떴다. 혼내서 맘 아프긴 하지만, 한 번 혼냈으면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딸랭구 낳았을 때 내가 악역 안 하기로 했는데, 우리 마누랭구에 비해서 내가 압도적으로 악당 얼굴이라 어쩔 수 없나부다.
밥 먹다가 갑자기 '아빠는 엄마를 사랑해' 했다. 그 말을 하면서 말갛게 웃었다. 너무 예뻤다. 아빠는 딸랭구도 많이 많이 사랑한다고 해줬다. 예쁘고 사랑하는 딸랭구 혼냈다가 지옥같이 잠 설쳤다. 어쩌면 낮에 마신 맛없는 커피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