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오렌지를 위한 사랑10

아내를 잃었습니다.

by Hugo

-스무 번째 날1-


공항터미널이 그리 붐비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내 딴엔 체크인 카운터가 한산한 틈을 타서 다음날 항공편까지 상세히 알아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얘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졌다.

항공사 직원이 내 캐리어가방에 도난방지 와이어로 혜인의 배낭을 연결하고 자물쇠로 채워 둔 이유를 물었다.

물론 불안해서라고 했다.

낯선 여행지에선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어떤 관계냐고 캐묻기까지 했다.

우릴 비꼬는 것이 틀림없었다.

분에 못 이겨 버럭 고함을 질렀다.

혜인은 울음을 터뜨렸다.

이번엔 보안요원이 왔다.

더 이상은 말하기 싫었다.

난 그길로 바르셀로나를 떠났다.


-스무 번째 날2-


방향도 계획도 목적도 없다.

무모하게 도망하고 있다.

아내를 피해 달아나려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

지독한 아이러니다.

애초에 공항 직원에게 정중한 사과를 했어야 했다.

그리고,

“이름은 혜인, 윤혜인입니다. 이 여자를 부탁합니다.”하고 맡겼으면 될 것이었다.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말을 잃었다.

지루한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접어들어서야 차창을 내다보는 그녀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흐른다.

혜인에게 아무 미련은 없다.

더는 동행해서는 안 된다.

처음 만났던 날,

그녀는 산타와 마리아가 있는 곳으로 가길 원했다.

내게는 마지막 남은 것은 말라가로 가는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그곳에 가려면 산타마리아 마을을 지나쳐야 한다.


-스물한 번째 날-


겨울석양이 떨어지는 산타마리아는 핏빛 선연한 적막에 잠겨 있다.

오직 혜인과 나,

단둘이서만 말라붙은 피딱지 같은 길을 버석거리며 걷는다.

산기슭을 덮쳐오는 어둠의 추격을 피해 황급히 마을 중앙에 보이는 황토 흙의 헐벗은 성당 뜰로 숨어든다.

그곳엔 오렌지나무 대신 차가운 빗돌들이 지상의 바람에 쓸려 처량한 울음을 흐느낀다.

문은 잠겨 있고 혜인은 두려움과 추위에 떨고 있다.

다급하게 문을 두드린다.

다시 두드린다.

그제야 허리가 굽은 늙은 신부가 문을 열고 우리 두 사람을 찬찬히 뜯어본다.

주름 사이로 반기는 웃음이 그의 입가에 번진다.

“신부님, 아내를 잃었습니다.”

참았던 슬픔이 울음으로 터진다.

문 밖에선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마을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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