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오렌지를 위한 사랑12
오렌지 나무 아래서 기다리는 거 알아.
-스물세 번째 날1-
수사관이 사진 한 장을 건네준다.
바르셀로나의 한 아파트먼트 발코니에서 찍은 것이다.
빛바랜 사진 속에서 아내와 내가 비에 잠긴 도시를 배경으로 벤치에 나란히 앉아 웃고 있다.
법무협력관이 아내가 여기 와 있다고 귀띔을 해 준다.
수사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내의 접견 허락을 조건으로 수사에 협조하겠냐고 제안한다.
나는 선뜻 응한다.
그러자 접견인의 신원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면서 아내의 이름을 묻는다.
내 시선이 편광 유리창에 박히고 그 너머에 있을 아내를 찾는다.
“내 아내의 이름은”
그러나 먹빛 유리 위엔 내 모습만 불안하게 어른거린다.
“혜인, 윤혜인입니다.”
-스물세 번째 날2-
얼마간 침묵이 흐른다.
의자 끄는 소리와 문 여닫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수사관이 커피 잔을 내민다.
“출입국기록을 보면 아내 분과 15일 전에 입국하셨더군요.”
나는 “예”하고 분명하게 대답한다.
“언제는 부인을 잃어버리셨다면서요?”
법무협력관이 피식 웃음을 흘린다.
또 나는 “네!” 한다.
“이거 보세요. 저는 이런 헛소릴 듣자고 앉아있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말투에는 노골적인 경멸이 가득하다.
나는 맞받아치려다가 그만둔다.
아직은 앳된 티가 남아 있는 그에게 운명은 친절할 테다.
“형식적이지만 아내 분한테도 선생님의 신상확인이 필요합니다. 성함이.”
수사관이 내 여권에 적힌 이름을 요구한다.
“아내는 내 이름을 모릅니다.”
-스물네 번째 날1-
아내와 만남은 하루 뒤로 미루어졌다.
주말은 모든 정부 기관이 휴무라서 경찰서도 사실상 쉬어야하기 때문이었다.
말라가 이민국에서 지정한 시내의 한 호텔방에 들어왔을 때 레기지렉 위에 아내의 캐리어가 놓여있었다.
나와 동행한 이민국 관리의 말에 의하면 아내를 근처 병원의 보호병동에서 관찰 중이라고 했다.
빈 방에 혼자 남아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모든 것이 막막했다.
무엇인가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냥 나는 아내의 가방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까맣게 잊고 있던 손수건을 찾았다.
아내가 내 이니셜을 자수로 새겨 넣은 것이다.
그것은 반듯하게 접힌 쪽지를 소중히도 품고 있었다.
“어디 있는 거야?”
쪽지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스물네 번째 날2-
“난 돌아갈 수 없잖아.
왜 그러고 있어?
오렌지 나무 아래서 기다리는 거 알아.
아련하게 남아 있을지 모르는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오래된 사진을 꺼내 지난 이야기를 뒤적이고 있겠지.
아무 기억도 없는데 또 추억하고 또 그리워하고 있을 거야.
바보같이 오지 않는 나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기다리겠지.
오렌지 나무 아래 혼자서,
당신이니까.
나는 그 자리에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