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오렌지를 위한 사랑13
산타와 마리아를 찾아왔다.
-스물다섯 번째 날1-
조사실에는 아내가 와 있었다.
초록색의 린넨 환자복을 입었다.
그녀의 창백한 피부와 대조되어 오히려 이지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혜인아!”하고 이름을 불러 본다.
대답이 없다.
무표정한 얼굴의 그녀는 되레 눈동자를 불안하게 굴리며 내 눈치를 살핀다.
나는 그녀와 멀찍이 떨어져 앉는다.
눈도 못 맞추고 책상만 멀거니 내려다본다.
첫날 증거물로 제시된 수면제와 자물쇠가 달린 도난방지 와이어가 그대로 있다.
“디멘시아로 진단이 나왔더군요.”
수사관의 말에 대답 대신 와이어를 집어 내 허리와 아내의 허리를 연결해 단단히 동여맨다.
그제야 안심이 된 듯 굳었던 아내의 얼굴에 잠시 미소가 스친다.
-스물다섯 번째 날2-
“디멘시아는 말 그대로 정신이 삭제되는 겁니다.”
처음 아내의 병명을 알았을 땐 그래도 행복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날은 주황색 오렌지 향기가 상큼한 나무 아래서 혜인을 만났던 봄날이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프리지아가 노랗게 핀 그런 날이었다.
“다시 아기가 되는 병이라잖아. 늦둥이 딸을 얻은 셈이지 뭐.” 하고 진심을 담아 농담처럼 웃었다.
그러나 망각은 아내의 고운 회백질의 골수에 머리를 처박고 기억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오렌지는 발렌시아 오렌지, 프리지어는 프리지어 이본느야.”
아내만 알던 오렌지와 프리지어의 이름까지 송두리째 삼켜버렸다.
-스물여섯 번째 날-
나는 나약했다.
스릴 넘치는 영화를 보듯 컴퓨터 화면 속에서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아내의 뇌 신경세포를 유린하는 장면을 지켜만 봤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부인한테 해외여행이 말이 된다고 생각했습니까?”
뒤늦게 조사실로 들어선 법무협력관은 힐난했지만 나는 그래야만 했다.
아내의 텅 빈 뇌 속은 헛된 망상으로 채워 갔다.
아내는 산타와 마리아가 만나야 한다고 우겼다.
나는 그것을 믿었다.
망상은 아내의 기억이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여자는 누구란 말인가?
그래서 내 아내,
혜인이 기억하는 산타와 마리아를 찾아왔다.